[조희문의 영화세상] 대한민국을 뒤흔든 한 해 ‘Th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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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26 00:02:50

제대 군인들이 고향에서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1946)는 개봉 당시에는 주목 받은 작품이고 지금은 고전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참전했던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마주한 현실은 적진을 돌파하며 전선에서 싸울 때보다 더 힘들다.

두 손을 잃은 상이군인은 자신의 처참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걱정에 주눅 들어 있다. 전쟁 중에는 부대원을 지휘하던 장교 퇴역자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한숨을 쉰다. 남편의 그런 사정을 몰라라 하면서 사치에 정신이 팔린 아내와는 이혼 직전이다. 전쟁 중에는 하급 병사였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는 명망 높은 은행가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늙은 군인은 자신의 딸이 상이군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걱정한다.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믿었지만 저마다의 현실은 또 다른 전쟁터가 된다.

이 영화의 원제는 ‘The Best Years of Our Lives’. ‘최고의 해’는 말 그대로 최고가 아니라 ‘최악의 해’를 상징하는 역설이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정관사 The를 붙인 대목이다. 평범한 한해가 아니라 특별히 기억해야 할 한 해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정관사 the를 붙이는지 부정관사 a를 붙이는지에 따라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우리 말에는 그와 비슷한 표현이 없지만 영어를 조금이라도 아는 경우라면 듣는 순간 서로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a는 여러 개(명) 중의 하나라는 뜻이고, the가 붙는 순간 그 대상은 단 하나뿐이거나(only) 아주 특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A Study…’ 라면 여러 연구들(주장들) 중 또 다른 연구라는 걸 나타내지만 ‘The Study…’ 라고 하면 자신의 연구(주장)만이 맞고 다른 사람들의 연구는 다 무시한다는 뜻이 들어간다.

이 영화 제목의 경우처럼 best와 같은 최상급 표현에는 그래서 the를 붙인다. 생각없이 the를 사용하거나 그게 뭐 중요하냐며 무시했다가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오만하거나 무례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A Year라면 평범한 한 해를 가리키지만 올해 2024년은 The를 붙여야 할 한해로 남아야 마땅하다. 예년에 볼 수 없었던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의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의 무차별 폭주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처음 보는 현상이다. 여야가 서로 다수당을 차지했을 때가 있었고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입법 취지에 벗어나는 법을 무한정 제정해 휘두르거나 행정부 각료급 인물들에 대한 무차별 탄핵, 검찰에 대한 악의적 비난, 사법부에 대한 겁박 등 대한민국을 총체적으로 뒤흔든 경우는 없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재난안전법 위반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를 들어 탄핵했지만 헌법재판소(헌재)의 재판관 9인의 전원일치 기각 판정이 났고 이 장관은 업무에 복귀했다. 명백한 사유의 법 위반이 없었는데도 여차하면 야당 마음대로 탄핵할 수 있다는 ‘힘 자랑 탄핵’으로 판명난 것이다.

이후 각료급 기관장에 대한 탄핵은 헌재의 기각 결정이 예상되는데도 헌재의 심리기간이 5개월 전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악용,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둔갑했다. 헌재에서 기각되거나 각하될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몇 개월이라도 직무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이룬다는 계산이다. 행안부 장관의 뒤를 이어 손준성·이정섭 검사를 탄핵했고 올해에는 강백신·김영철·박상용·엄희준 검사를 비롯해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성제 법무부 장관·조지호 경찰청장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까지 탄핵을 밀어붙였다.

대통령이 직접 담화를 발표하며 다수 의석 야당의 무차별 탄핵·민생 예산 삭감·입법 폭주 등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범위 안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야당은 ‘내란’ 운운하며 위법한 조치였다고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도 올해의 큰 뉴스였다.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작가들을 제치고 비교적 젊은 편에 드는 국내 작가가 권위 있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의 편향된 작품 세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제주 4.3사건이나 광주 5·18 사건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게 그의 작품에 반영되어 있어 현대사 왜곡 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들 모두는 어쩌다 하나씩 생긴 일이라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터인데, 모두가 2024년 한 해 동안 생긴 일이니 그야말로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한민국이 흔들려도 다수 야당의 폭주는 멈출 줄을 모른다. 현대사에 남을 만한 2024년이다.

조희문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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