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36] 위장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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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04 06:30:45

입사 면접은 준비한 것에 비해 너무 싱겁게 끝나서 서운할 정도였다. 세 명의 면접관은 모두 ‘안전제일’이라는 패치 밑에 ‘일월산업’이란 노란 자수 로고가 새겨진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회색 공장의 회색 점퍼는 노동 현장 분위기만큼이나 우울해 보였다. 하기야, 공장 유니폼으로 회색만큼 경제적인 색은 없지 싶었다. 때가 묻어도, 오래 입어도 티가 덜 날 테니까.

왼쪽에 앉은 대머리 면접관은 볼펜을 손가락 사이에 넣고 재주를 부렸다. 볼펜을 새끼손가락에서부터 튕겨 검지까지 건너오게 하는, 아주 쉽지만 산만한 동작이었다. 오른쪽 반백의 면접관은 볼펜의 누름쇠를 눌렀다 놨다 반복하며 건성으로 이력서를 만지작거렸다. 가운데 앉은 남자는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앉은 자리로 보나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자세로 보나 누가 봐도 그가 주심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력서를 훑어 내려가는 그의 눈길이 멎을 때마다 희숙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어느 대목일까,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이력서를 덮은 그는 희숙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몸에 밴, 느긋하지만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시선이었다. 희숙은 배운 티를 안 내려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뒤 뽀글이 파마를 했다. 며칠 세수를 안 했고 얼굴에 올라온 뾰루지도 방치했다. 이력서에 적힌 이름은 당연히 가짜였다.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평창동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고 있는 국민학교 동창의 이름을 가운데 남자가 느린 속도로 불렀다. 고금화 씨. 비단 금에 꽃 화라, 비단 꽃이네. 고금화, 고금화, 고금화. 같은 단어나 문장을 반복하는 말 습관인 것 같았다. 대머리와 반백이 키득거렸다.

“이름은 예쁜데 성과 함께 부르니 고구마가 되네?” 가운데 남자가 손끝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남의 예쁜 이름 갖고 그렇게 놀리면 씁니까. 주의를 주는 건지 같이 즐기는 건지 구분이 어려운 묘한 말투였다. 희숙은 대머리와 반백을 도와줄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았다.

“괜찮아예. 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이름 가지고 많이 놀려서 익숙합니데이. 앞으로도 쭉 고구마, 고구마 그렇게 불러 주이소.” 희숙의 명랑한 대꾸는 대머리와 반백에게 용기를 주었다. 둘은 곁눈질로 가운데 남자의 동의를 구하며 연신 고구마를 연발했다. 가운데 남자도 그제야 따라 웃었다. 희숙은 웃음에도 하사품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렇게 명랑한 아가씨가 들어오면 우리 공장 분위기가 아주 환해지겠는데요” 하며 대머리가 빚을 갚았다. 반백이 장단을 맞췄다. “초보긴 하지만 일이야 뭐 천천히 배우면 되고, 전무님 보시기에는 어떠십니까?”

전무. 서른 중반의 남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직책이었지만 가운데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마치 전무였던 것처럼 하나도 어색해 하지 않았다. 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 의견이 그러시면 뭐 그러지요.”

금화로의 빙의는 성공적이었고 그렇게 면접은 끝났다. 세상의 걱정과 염려는 사소한 것에서 발화되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연소된다는, 사소한 진리가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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