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34] 민정, 민주와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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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31 06:30:10

김태주는 손바닥 장단으로 자진모리와 휘모리의 차이를 알려 주었다.

“기·닥은 타법의 기교가 아니고 호흡의 파생이야. 기는 음가가 없어. 호흡으로 인한 몸의 움직임으로 저절로 닿거나 놓아져 접촉으로 겹이 생기는 건데, 이건 아직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고, 오래 하다 보면 알게 돼. 사물놀이는 4명의 인원이 연주하고, 풍물놀이는 집단형태로 된 다수가 연주하지. 사물놀이는 주로 실내에서 공연하고, 풍물놀이는 마당과 같은 야외에서 공연하고.” 김태주는 설명이 끝나자 궁채를 잡았다.

회장과 민주농반 여학생이 휘모리장단에 맞춰 농악 퍼포먼스를 시연했다. 셋은 숙달된 손놀림으로 호흡을 맞춰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김태주의 얼굴에 땀이 배었다. 기순이 태주의 모습에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셋의 연주가 끝나자 세 명의 관객은 허리 아픈 건 잠깐,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아는 게 많네, 김태주.

수업이 끝나면 바로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는 승연이였지만 그날따라 김태주랑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혹시 윤희숙 선배 봤어요? 승연이 장고를 방 한쪽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는 태주에게 말을 걸었다. 태주는 뒤돌아서 승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엇인가 대답하려다 말았는데 윤희숙을 내가 어찌 알아, 라는 뜻인지 다른 의미인지 몰랐다. 김태주는 승연의 질문에 다르게 답했다. 버스 안 타? 승연은 태주를 따라갔다. 딱 한 시간만 허락했다. 그것은 승연이 아닌 김태주의 허락이었다.

아름식당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태주가 가는 방향은 아름식당 반대편이었다. 학교 앞 신축 건물 세 개 중 가장 최근에 벽돌로 지어진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간판이 작아서 술집이 있는 줄 몰랐다. 조그마한 간판에 더 조그마한 글씨로 ‘민정’이 새겨져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한참 내려갔다. 식당 문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홀 중앙엔 조선시대 주막을 흉내 낸 볏짚 처마와 평상이 놓여 있었다. 도시 빌딩 숲에 뜬금없이 펼쳐진 민속촌 느낌이었다.

문 오른쪽 계산대에 있던 남자가 태주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남자가 태주 어깨를 툭 치는 걸로 봐서 태주 단골집인 듯했다. 남자는 메뉴판과 물통을 들고 자리를 안내했다. 태주는 그를 신학과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아직 저녁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두세 테이블 빼고 홀은 꽉 차 있었다.

“가게 이름이 ‘민정’이던데 민정이는 따님 이름인가요, 부인 이름인가요?” 남자와 태주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아, 저 장가 안 갔어요, 내가 늙어 보이나. 민정은 민주, 정의!” 주전자 입구에서 우윳빛 동동주가 폭포처럼 흘렀다. 색깔로 동동주와 막걸리를 구분할 순 없었다.

태주는 자기 잔에 동동주를 따르고는 승연의 잔에 자기 잔을 갖다 대었다. 오늘 수고했어요. 한 번에 목구멍 속으로 술을 넘겼다. 승연도 태주처럼 한 번에 잔을 비웠다. 승연이 술을 자주, 많이 마셔 본 적은 없었다. 절친 현주네 집에서 맥주 서너 캔, 소주 한 병 마셔 본 게 전부였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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