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안동김씨라고 하면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를 떠올린다. 그러나 세도정치 혈족과는 무관한 안동김씨가 8배나 더 많다. 안동김씨는 크게 선(先) 안동김씨와 후(後) 안동김씨로 나뉜다. 관향이 같은 안동이라도 혈연 관계는 거리가 멀다. 후 안동김씨들이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주인공이다. 후 안동김씨는 2000년 기준으로 1만5000여가구 약 4만8000명에 불과하다. 조선후기에 세도 정치를 편 안동 김씨는 놀랍게도 현재 후손이 5만명도 채 안된다. 후 안동김씨 종중은 광화문 인근의 한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반면 선 안동김씨는 1978년 중랑교 인근에 빌딩을 구입해 안동김씨 회관으로 사용 중이다. 선 안동김씨 인구는 13만여 가구, 42만여명에 달한다. 스카이데일리가 선 안동김씨 가문에서 소유한 안동김씨 회관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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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랑교에서 3분가량 걸어가면 인동김씨 회관이 나온다. 안동김씨 회관을 소유한 주체는 안동김씨 충렬공파대종회이다. 충렬공 김방경은 고려후기의 명장으로 모든 선 안동김씨의 중시조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후 안동김씨의 시조인 김선평은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견훤을 토벌한 삼태사(三太師) 중의 한 사람이다. 반면 선 안동 김씨는 신라계 김씨로 분류된다. 선 안동김씨의 중시조(中始祖, 시조 이후 쇠퇴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을 자손들이 추존해 모시는 시조)는 일본 정벌을 지휘한 여몽연합군의 김방경 장군으로 신라 경순왕의 10대손이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백범 김구 선생 등을 배출한 선(先) 안동김씨 종중은 서울 지하철 1호선 회기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35억원 가치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지난 1978년 9월 토지를 구입해 그해 12월에 건물을 완공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안동김씨 회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대지 면적 370㎡(약 112평), 연면적 995.55㎡(약 301평) 규모다.
선 안동김씨 회관의 등본상 소유주는 안동김씨 충렬공파대종회다. 충렬공은 고려 후기의 김방경 장군 시호다. 장군은 고려 때 여몽연합군으로 일본 원정을 맡았던 명장 중의 한명이다. 즉, 모든 선 안동김씨는 충렬공 김방경의 후손이다.
선 안동김씨 대종회 사무실은 안동김씨 회관 4층에 자리 잡았다. 2층과 3층에는 치과의원 3곳이 들어섰고, 1층에는 식당·슈퍼·약국·헤어숍 등이 입점했다. 지하에는 미용용품 전문매장이 있다.
휘경동 일대의 빌딩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대교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이 일대는 3.3㎡ 당 3000만원 선”이라며 “안동김씨 회관의 시세는 약 35억원 안팎"이라고 추정했다.
경순왕 10대손 김방경 장군이 중시조…조선시대 부침 겪어
▲ 충무공 김시민 장군
선 안동김씨는 김알지를 시조로 하는 신라계 김씨 중 하나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김은열과 그의 아들인 평장사 김숙승으로 이어지는 계보에 속한다.
중시조인 충렬공 김방경 장군은 경순왕의 10대손이다. 김방경 장군은 고려후기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 때 활약했다. 당시 중군장으로 출정해 약 2만5000명의 여몽연합군과 함께 쓰시마섬(對馬島)를 친 다음 본토로 향하는 도중, 풍랑을 만나 패하고 돌아왔다. 향년은 89세였다.
조선시대에 접어들면, 선 안동김씨는 다양한 부침을 겪는다. 선 안동김씨의 가장 유명한 후손으로는 임진왜란 때 명장인 진주목사 김시민을 비롯해 역적으로 처형된 김자점,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는 백범 김구선생 등이 있다.
김시민 장군은 김방경 장군의 12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 목사였던 그는 3800명의 병사로 하세가와의 2만의 군대를 맞아 진주대첩을 이끌었다. 전쟁 중 총통 등을 제조했고 탁월한 용병술을 발휘했으나 전투 마지막 날 적의 탄환을 맞았다.
선 안동김씨가 크게 번성하지 못한 이유는 인조반정 후 1등 공신에 올랐던 김자점 일족 때문이다. 뇌물, 삭탈관직, 유배 등 우여곡절을 겪은 김자점은 인조의 외척이 되고 영의정까지 올랐다. 하지만 인조 사후 6일만에 광양으로 유배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우리 조상 중 한분인 김자점 부자가 역적으로 몰려 처형 당했고, 결국 온 집안이 도망쳐 해주에 정착했다”면서 “멸문지화를 피하기 위해 양반 행색을 감추고 평범한 농사꾼으로 지내 왔다”고 기록했다.
백범 김구 선생, 선 안동김씨 가문 빛내…전국에 15개파 42만명
▲ 백범 김구 선생
김구 선생은 지난 1893년 동학에 입교해 해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지휘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했고, 1928년에는 이시영·이동녕과 한국 독립당을 조직해 당수로 항일 무력 활동을 펼쳤다.
이봉창, 윤봉길 등의 의거를 지휘한 이후 일제가 60만원(현재 가치 약 200억원)의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해방이후에는 반탁 운동을 펼치다 1949년 6월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42만 인구의 선 안동김씨는 21개 파로 분류되는데, 15개 파만이 현존하고 있다. 제학공파와 안렴사공파, 익원공파가 신 안동김씨 전체 인구의 60~70%를 차지하는데 통칭 ‘제안익 3파’라고 부른다. 이어 군사공파, 문온공파, 도평의공파 등의 3파가 뒤를 잇고 있다.
요즘 뜨는 선 안동김씨 인물로는 ‘아이리스’로 유명한 배우 김소연과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선수인 김승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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