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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은 우리 역사 이래 최대 치욕인 일제의 강점기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1905년 일본은 당시 대한제국을 강제로 위협하면서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는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강요했다. 나라의 국운이 송두리째 빼앗기던 그 당시 한 교육 선각자는 조용히 국가의 동량을 키우는 일에 나섰다. 그것도 여성을 국가의 인재로 키우고자 한 발걸음이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어윤적 초대 교장은 1908년 당대의 권문세가라고 하는 양갓집과 대갓집 여식(여성)들을 일일이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어린 여학생들이 주축이 돼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에 학교가 세워진다. 학교는 번듯한 교정이 아닌 작은 한옥이었다. 1908년 4월 초라하게 출범한 당시 학교명은 관립 한성고등여학교(경성여자고등학교→경기여고)였다. 무엇보다 순종의 칙령에 의해 개교한 ‘관립’이라는 데 의미가 컸다. 학교는 개교 2년 만에 각지에서 몰려드는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해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1911년 2월에는 제1회 졸업생 31명이 배출됐다. 경기여고 동문회가 모임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다. 동문회는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경운회’로 재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고봉경 동문(12회)을 선임한다. 이후 경운회는 지금의 제34대 김자경(52회) 회장에 이르고 있다. 경운회라는 이름은 과거 교정이 종로구 경운동에 소재한데서 지어졌다. 경기여고는 해방직후 15년간 후학교육에 전 인생을 쏟아 부은 박은혜 전 교장의 가르침으로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를 이뤘다. 경기여고는 교훈처럼 진·선·미를 갖춘 여성인재의 산실이 되면서 유명인사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대표적인 유명인사로는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씨(43회),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46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부인 유순택씨(49회), 두산 박용성 회장 부인 김영희씨(50회), 삼성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51회), 현대 정몽헌 전 회장 부인 현정은씨(60회), 강지원 변호사 부인 김영란씨(63회) 등이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이들 동문조직을 이끌고 있는 ‘경운회’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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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겨례 귀한 뜻, 이 나라 힘으로 높이 이룩한 배움의 전당~” 경기여고의 교가 첫 소절이다. 교훈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라는 진·선·미다. 경기여고는 지난 2008년 개교 1세기를 맞았다. 동문회 ‘경운회’에는 내노라하는 여성 명사들이 즐비하다. ⓒ스카이데일리
“정복되지 않은 네모(경기여고 배지모양)의 신비/그녀(경기여고)는 네모/자를 대어도 굽은 데가 없는 그녀/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천원지방(天圓地方)/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한 구석 결함 없고 경계가 확실한 그녀”
경기여고 출신 부인을 아내로 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자신과 같이 경기여고 출신 여성을 부인으로 둔 남편들에게 던진 메시지다. 학교 배지를 형상화 해 경기여고 출신 여성들의 이미지를 걸출하게 표현해 냈다. 이 전 장관은 이렇게 뜻을 풀었다.
“모든 남자들이 네모꼴의 아내를 얻기 위해 열심히 꿈을 꾼다. 현실을 지배하는 엽전의 몸과 이상을 실현하는 영혼의 연(緣)을 얻기 위해서 가위에 눌릴 필요는 없다. 튼튼한 끈을 잡으면 된다. 그리고 그녀와의 끈을 발전하기 위해서 먼저 남성이 둥그런 원이 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오늘도 그녀는 초록색 모양을 한 네모꼴로 당신 머리맡에 앉아 있을 것이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처럼…”
국내 첫 관립 여학교…학교장이 여학생 찾아나서
▲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소재한 경기여고 전경(위)과 ‘탐구의 여인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교정 안의 동상이다. ⓒ스카이데일리
1908년 5월. 어윤적 초대 교장은 당시 촉망 받던 권문세가의 집, 고관대작의 집, 양갓집 등으로 소문이 난 곳은 빼놓지 않고 일일이 찾아 다녔다.
좋은 집안의 여식(어린 여성)들을 학생으로 모집하기 위한 발품이었다. 어 교장의 설득과 입소문으로 몇 달 뒤 10대의 어린 소녀들이 서울시 종로구 당주동에 있는 작은 한옥으로 모여들었다.
이날의 모임이 우리나라 정부에서 세운 첫 관립여학교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초라하게 출범한 당시 관립 한성고등여학교(경성여자고등학교→경기여고)는 순종의 칙령에 의해 개교했었다. 학교는 개교 2년 만에 각지에서 몰려드는 학생들을 수용하지 못해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경기여고는 선교를 목적으로 국내에 온 외국인들이나 개인 독지가에 의해 세워진 사립학교가 아니라 ‘국내 최초의 관립여학교’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당시만 해도 국가나 사회는 여성을 교육시키는 데 대단히 인색했다.
사회 각계각층서 수많은 유명 인사 배출
경기여고가 주목 받는 이유는 긴 역사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배출했기 때문이다.
약 4만여명의 졸업생 중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가 30여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및 장관 출신도 역시 30여명에 이른다. 문화 예술계 유명 인사는 100여명을 훌쩍 넘는다.
또 의료계 및 학계 인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동문회 측은 어림잡아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동문들은 경기여고의 인맥도가 대한민국 명사지도와 비슷할 정도라고 자평한다.
▲ 숙명여대 총장을 지낸 제49회 이경숙 경기여고 동문이 총회에서 스마일 힐링을 특강(위)하고 있고 제51회 동문들은 졸업 50주년 기념으로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49회, 51회 동문>
대표적인 유명인사로는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씨(43회),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씨(46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부인 유순택씨(49회), 두산 박용성 회장 부인 김영희씨(50회), 삼성 이건희 회장 부인 홍라희씨(51회), 현대 정몽헌 전 회장 부인 현정은씨(60회), 강지원 변호사 부인 김영란씨(63회) 등이 있다.
1911년 졸업생 첫 모임 이후 총동문회 ‘경운회’ 조직
경기여고는 총동문회 조직으로 ‘경운회’를 꾸려가고 있다. 경운회라는 이름은 과거 교정이 종로구 경운동에 소재한데서 지어졌다. 동문회는 지난 1911년 2월 제1회 졸업생 31명을 배출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동문회는 해방 직후인 1946년 4월 경운회로 재조직하고 초대 회장에 고봉경 동문(12회)을 선임한다. 이후 경운회는 지금의 제34대 김자경(52회) 회장에 이르고 있다.
경운회는 개교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동문회를 이끌고 나갈 차세대 동문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65회 이후의 젊은 동문 찾기에 주력하고 있다.
▲ 100주년 기념관 건립에 앞장선 경운회 주요 임원(위)들과 제34대 경운회 회장으로 52회 김자경 동문이 선출됐다. <사진=경운회>
김자경 회장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모든 동창 선후배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축복받은 경기인이라는 자부심과 전통을 이어받아 열심히 일하하고 있다”며 “여성이자 어머니로서 자리매김하는 진·선·미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커다란 숲의 시작이듯이 우리 동문 한 분 한 분 모두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행복을, 그늘진 곳에는 희망을 안겨주는 그런 큰 회화나무가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경기여고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느낌과 시각도 남다르다. 경기여고 출신 아내를 둔 현홍주 전 주미대사는 “경기여고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은 ‘믿음직하다’라는 인상이다”며 “화려하려면 언제라도 화려할 수 있지만 대개는 소박하고 건실한 생활자세 속에 활화산 같은 열정을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떤 일이 닥치면 경우에 따라서 남성보다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여성들이다”고 했다.
역시 아내가 경기여고 졸업생인 김학준 동아일보 전 회장(현 고문)은 “경기여고 하면 일당백의 주옥 같은 ‘인재 풀’ 같이 느껴진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리고 국가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받했다”고 말했다.
100주년 기념관·경운박물관 등 동문회 주축 건립
100주년 기념관 건립을 위해 진두지휘한 동문은 문영혜(47회) 전 회장과 최청규(49회), 최계자(49회) 등 임원들이다. 문영혜 동문은 30~31대(2004년~2009년) 회장을 역임했다.
▲ 총동문 경운회 사무실과 경운박물관이 있는 경기여고 100주년기념관 건물이다. ⓒ스카이데일리
경운회은 경기여고 100주년을 맞아 3대 사업을 수행했다. 사업은 ▲잊혀진 역사 발굴 ▲경기여고 100년사 재조명 기록물 ▲100주년 화보집 및 동문문집 발간 등이 그것이다.
경운회는 또 개교 100주년 기념관을 매화관 옆에 신축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기념관에는 경기여고 역사 전시실, 경운박물관, 학생교육시설, 소극장, 동창회 사무실 등이 마련돼 있다.
경운회는 100주년 기념행사 예산의 일부를 저소득층 환자의 수술비 지원과 청소년을 위한 권장도서 선정 및 기증 등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기도 했다.
경운회는 또 지난 2003년 4월 15일 개관한 경운박물관 건립에도 앞장섰다. 이 박물관은 과거와 미래가 넘나들며 여든이 넘은 선배로부터 어린 학생들까지 함께 숨 쉬는 창조적인 공간이 되고 있다고 한다.
▲ 동문회가 주축이 돼 개관한 경운박물관은 50회 송광자 동문이 관장을 맡아 관리(아래)하고 있고 경운박물관 개관 10주년으로 근대직물 100년 특별전을 하고 있다.<위 사진 ⓒ스카이데일리, 아래=경운회>
송광자 경운박물관 관장은 “경기여고 100년 역사의 자랑이자 긍지로 성장해 왔다”며 “우리의 삶을 재조명 하고 다양한 예술작품 전시를 통해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겠다”고 말했다. 송 관장은 또 “엄선된 프로그램으로 우리 문화의 정수를 널라 알리는 활동을 펼쳐 사회에 공헌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문화공간이 되고자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참담한 고통 딛고 후학교육 매진 박은혜 전 교장
▲ 박은혜 전 교장. <사진=경운회 홈페이지>
박 전 교장은 젊은 시절 정치적 테러로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한국민주당을 창당했던 설산 장덕수씨다. 당시 테러로 인해 동대문구 제기동 집 현관 마루와 벽 두 군데에 총알이 관통해 깊은 총알 자국을 남겼다.
당시 박 전 교장은 시를 쓰며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 내어 임 계신데 보내고저. 임께서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박 전 교장은 총알이 박힌 집을 그대로 남긴 채 슬픔을 울며 삭히며 4남매를 키우고 후학교육에 전 인생를 바쳤다.
박 전 교장이 참담한 슬픔을 뒤로하고 후학교육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고통의 시간만큼 열정을 쏟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기여고는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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