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기업의 사회·경제적 역할을 가로 막는 징벌적 상속세가 이슈로 떠올랐다. 고 이 회장의 별세로 오너 일가가 떠안게 될 상속세만 약 1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속세 부담에 따른 각종 부작용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특히 삼성 외에 타 기업들도 엄청난 규모의 상속·증여세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인한 국가경제 피해 등을 우려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상속 이슈 틈탄 경영권 침해에 시달리는 수송보국 한진그룹
재계 등에 따르면 국내 통상적으로 해외에선 100년 기업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았어도 상속 이슈와 맞물리면 곧장 절체절명의 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상속세 부담 때문이다. 오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가업 승계가 이뤄질 경우 거액의 상속세를 마련하는 데 큰 고충을 겪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속세 재원 마련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을 겪거나 주요 거래처 및 인력 이탈, 각종 법률적 리스크 등의 악재와 마주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한진택배 등을 계열사로 둔 한진그룹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경영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 조양호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한진그룹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초 후계자로 지목됐던 장남 조원태 회장은 상속세 재원 마련 이슈로 곤욕을 치렀다. 그 과정에서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호시탐탐 한진그룹을 노렸던 KCGI의 경영권 위협도 가시화됐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선대 회장 소유였던 한진칼 지분의 상속세는 별세 시점인 4월 8일을 전후해 각 2개월인 2월 9일부터 6월 7일까지 평균 주가를 산정해 계산됐다. 이에 4개월 간 한진칼 주식 평균 가격은 3만3118, 상속 지분의 총 가치는 3495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상속 재산이 30억원을 넘으면서 조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최고 세율인 50%를 적용받게 됐다. 게다가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명목으로 세율의 20%가 추가됐고 각종 공제를 감안하더라도 주식 상속에 적용되는 세율은 약 60%에 달했다. 이에 따라 한진칼 외 다른 게열사 주식까지 합쳐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납부해야 할 상속세만 27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10월 선대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아들 조원태 회장,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은 민법에서 정한 비율대로 선대 회장의 지분을 나누기로 합의하고 2700억원 규모 상속세를 5년간 총 6차례에 걸쳐 6분의 1씩 나눠 내기로 결정했다. 상속 이후 한진칼 지분율은 조 회장 6.3%, 조 전 부사장 6.27%, 조 전무 6.26% 등으로 각각 늘어났다.
오너 일가가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두고 고심하는 사이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다. 15.98%의 지분을 보유했던 KCGI가 한진그룹 경영권을 위협했고 여기에 오너 일가인 조 전 부사장과 반도건설까지 가세하면서 가족 간 불화까지 생겨났다. KCGI와 조 전 대한한공 부사장, 반도건설로 구성된 3자 연합은 한진칼 지분을 빠르게 끌어올리며 경영권 확보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3자 연합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은 46.71%에 달한다. 4월 조 회장과 우호 세력의 지분인 41.04%를 처음으로 역전한 후 꾸준히 격차를 벌리고 있다. 3자 연합은 최근 신주인수권(워런트)을 공개 매수했는데 워런트를 전량 행사할 경우 조 회장과의 지분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그룹 안팎에서는 수송보국의 창업정신을 잇는 한진그룹의 위기가 막대한 상속세 부담에서 비롯됐다는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위기가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향후 국가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사태로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 항공·물류 업계 역시 크게 위축된 상태다.
4900억원 받고 3000억원 증여세 내는 신세계 오너家, 롯데·LG도 수천억대 상속세 이슈
최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총괄사장에게 그룹 지분을 증여키로 결정했다. 정 부회장과 정 사장에게 부과된 증여세는 약 3000억원 안팎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회장은 9월 28일 정 부회장에게 이마트 지분 8.22%, 정 사장에게 신세계 지분 8.22%를 각각 증여했다. 정 부회장이 증여 받은 지분의 가치는 약 3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정 사장이 증여 받은 신세계 주식 가치는 1700억원 가량이다.
두 사람은 4900억원 어치 주식을 증여받으면서 당장 3000억원 가량의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최고 세율 50%가 적용된데다 최대주주 보유 주식이란 이유로 20%가 할증됐기 때문이다. 증여액이 30억원을 넘을 때 받을 수 있는 누진 공제 4억6000만원을 제하더라도 정 부회장에게는 2000억원, 정 사장에게는 1000억원 가량의 세금이 각각 부과될 것으로 전망됐다. 신세계그룹은 증여세를 성실히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함과 동시에 경영권 유지에는 지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신세계그룹 안팎에선 당장 경영권 유지엔 지장이 없더라도 증여세 납부를 위한 재원 마련 과정에서 오너의 역량이 분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증여세 재원 마련에 집중하다보면 기업 경영엔 소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국 경제에서 신세계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했을 때 이 역시 국가적 차원에선 큰 손실로 평가되고 있다.
신세계그룹과 함께 유통업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롯데그룹도 상속·증여 이슈에 휩싸인 상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상속인 4명은 7월 말 국세청에 고 신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그룹 계열사 지분과 토지 등 상속 재산을 신고했다. 아직 정확한 세액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최대 상속세율과 최대주주 할증을 반영하면 상속세는 약 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주식 2700억원, 토지 300억원 등이다.
LG그룹은 4세 경영에 접어든 지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속세 이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현 총수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부지런히 상속세를 내고 있다. 구 회장은 2018년 11월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LG 주식 11.3% 가운데 8.8%를 상속받아 최대주주에 올랐다. 구 회장과 상속인들은 상속세 9215억원을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5년 동안 6차례 나눠 내기로 했다. 구 회장이 납부해야 할 상속세 규모는 7000억원 이상으로 지난해 11월 두 번째 상속세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실과 동 떨어진 가업승계제도, 국민밥솥 책임지는 대기업은 제외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업을 상속받는 자녀 세대에게 상속세를 줄여주는 가업승계제도가 시행 중이다. 1997년 최초 도입된 이후 2008년 이후부터 꾸준히 혜택이 확대돼 기존 1억원이었던 공제 한도가 최대 500억원까지 늘었다. 그러나 대상 기업이 매출액 3000억원 이하 중소·중견기업에 국한돼 있다. 정작 국가경제 기여도와 고용창출 효과가 큰 중견·대기업은 배제하고 있다.
해외 선진국은 국내와 크게 다르다. 일본이나 영국은 공제 상한이 없고 아일랜드, 스페인 등은 기업 규모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상관없이 가업 승계에 대해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주는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은 기업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또 가업을 승계하는데도 최대주주라는 이유로 세금 할증까지 매기는 사례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경제계 안팎에서는 가업 승계 시 공제 혜택 등을 전 세계 평균에만 맞추더라도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선이 주를 이룬다. 상속세 감면이 자본 증가로 이어져 매출증대, 고용확대 등의 선순환 작용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감몰아주기 등 기업들의 일탈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부수 효과도 크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자녀에게 기업을 상속하는 것이 재산을 물려준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리스크를 물려준다는 인식이 파다하다”며 “선진국은 가업 승계를 원활하게 만들어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고 있는데 한국은 무난한 상속·증여도 최대 경영 현안이 될 정도로 세금 부담이 커 지속가능한 기업을 양성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창영 기자 / 판단이 깊은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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