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가 ‘초신호 전투’로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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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의 자유전선]

살인적 강추위로 미 해병 희생이 컸던 ‘장진호’ 전투
미군 등 유엔군 기록엔 일본 발음 ‘초신’으로 표기돼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13 12:09:35

오늘은 6·25 전쟁 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였던 장진호 전투(1950.11.27~12.13)가 끝난 지 72주년 되는 날이다. 장진호 전투는 당시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이 도주해 있던 북한의 임시수도인 강계를 공격하기 위해 함경남도 장진호 북쪽까지 진출한 미군 제10군단 예하 제1해병사단(1만3000여 명)과 이를 포위한 중공군 제9병단(7개 사단, 병력 12만여 명)이 1950년 11월27일부터 무려 17일간 벌인 전투다.

중공군 제9병단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1사단은 살인적인 추위를 견뎌내며 10배 이상의 병력을 보유한 중공군과 사투(死鬪)를 벌여 포위망을 뚫고 함흥까지 110㎞에 이르는 철수 작전에 성공했다. 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는 장진호 동쪽에서 중공군의 예봉을 맡은 페이스 특수임무부대의 역할이 컸다.

페이스 특수임무부대가 전 병력 3000여 명 중 1000여 명이 전사하는 대혈전을 벌여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부대원 중 358명만이 부상당하지 않고 철수했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 결과 대다수 병력이 포위망에서 벗어나 철수할 수 있었다. 미 제1해병사단은 12월11일 함흥 지역으로 대부분 철수했으나 추격 전투를 마무리한 12월13일에 가서야 장진호 전투는 끝났다.

당시 미 제1해병사단은 미군 역사상 유례없는 피해를 당했으나 중공군 제9병단 7개 사단을 격파하는 승리를 거둬 해병대의 위대한 전통을 세웠다. 미 해병에게는 12만여 명의 중공군 공세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는 더 무서운 적이었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전사자 700여 명, 실종자 200여 명, 부상자 3500여 명, 비전투 전사상자(대부분은 동상 환자) 6200여 명으로 전 부대원의 80% 이상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할 정도였다. 중공군 제9병단은 전사자 2만5000여 명, 부상자 1만2500여 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배경으로 장진호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모스크바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3대 동계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미 제1해병사단의 희생과 헌신으로 함흥의 흥남항에서는 1950년 12월14일부터 24일까지 유엔군 12만 명과 피난민 10만 명이 해상으로 무사히 철수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흥남철수작전이다.

이러한 ‘장진호 전투’에 대해 정작 미국과 서방세계에서는 ‘초신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로 표현하고 있다. 필자는 2014년 9월 이래 3차례 한국전 참전용사 감사 행사의 일환으로 미 제1해병사단 본부가 주둔해 있는 캠프 팬들턴(미국 샌디에이고 오션사이드 소재)을 방문하여 사령관·제5연대장 등과 면담한 적이 있다. 기지 안에 장진호 전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장진(Jangjin)’이라는 영문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 초신(chosin)으로 표기되고 있음을 알고 당황했다.

장진(長津)의 일본어 독음인 ‘초신(ちょうしん·chosin)’에서 유래한 표기법이었다. 6·25 전쟁 당시 한국지도나 군사작전 지도가 대부분 일본어로 작성된 지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 등 유엔군은 ‘장진’이 아닌 ‘초신’으로 표기한 것이다. 장진호 전투와 관련한 서방세계의 학술논문이나 전쟁자료 등에는 모두 ‘초신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나 ‘초신호 작전(Chosin Reservoir Campaign)’으로 표기되어 있다.

1991년 진수한 미 해군 제7함대 소속의 타이콘데로가급(9만6000t) 순양함 ‘USS Chosin’(CG-65)도 장진호 전투명에서 유래하여 초신으로 표기하고 있다. 또한 1983년 결성된 장진호 전투 생존자 모임 ‘Chosin Few’도 여기서 유래한다. 2001년 미국에서 출간된 장진호 전투 관련 저명 학술서인 마틴 러스(Martin Russ)의 저서 ‘Breakout: The Chosin Reservoir Campaign, Korea 1950’(Penguin Books, 1999)도 초신이란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제 정부와 학계에서는 미국과 국제사회에 관련 기념비나 소개 책자·학술지 등에 ‘초신 전투’를 ‘장진호 전투’로 변경 또는 배합 표기하도록 촉구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70여 년 넘게 사용한 ‘초신’이란 용어를 전면 폐기할 수 없으니 최소한 장진과 초신을 병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해방된 지 77년이나 지났으나 일제 잔재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단적인 사례다. 어찌 보면 이 작은 노력이 왜곡된 한국 현대사를 바로 잡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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