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데스크칼럼
[스카이 View] 거물급 구속영장은 왜 꼭 새벽에 결정되나
▲ 허겸 사회부장
“영장 발부됐습니다.” 
  
새벽 2시. 법원 출입기자 간사가 말한다. 유력 인사의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얘기다. 기자들은 부리나케 자판을 두드린다. 속보’ 1보’ 상보’ 종합’ 등 용어는 각기 다르지만 급박하게 소식을 알리는 실시간 뉴스들이 이내 온라인에 쏟아진다. 나름 쾌재를 부르는 기자도 있다. 이제 비로소 퇴근이다. 
  
사람을 잡아 가두는 ‘구속’이란 말은 일견 비정한 듯 들린다. 하지만 구속되는 게 흉악범이라면 박수를 칠 것이고 누명을 쓴 이라면 곳곳에서 탄식이 나올 것이다. 인권 존중을 위한 것이라지만 불구속재판엔 양면성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거물급 인사의 구속영장 발부 가부가 자정을 넘겨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영장전담판사가 참고해야 할 재판 서류의 양이 방대하기 때문일까.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유명인을 변호한다고 서류가 더 많으란 법은 없다. 
 
속보를 타전하는 뉴스통신사의 1보를 기준으로 잠깐 살펴보자. 최근 ‘사기 혐의’로 구속된 전청조는 오후 6시39분 1보가 나왔다. 약 2~3분 전에 법원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알렸을 것이다.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은 오후 4시43분. 올해 4월 ‘강남 납치·살인’ 3인조는 오후 5시48분, 아동 성범죄자 김근식은 오후 5시48분에 영장이 발부됐다. ‘음주 측정 거부’ 래퍼 장용준은 훨씬 이른 오전 11시7분에 영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월성원전 감사 방해’ 산업부 공무원은 오후 8시53분, ‘SG발 폭락’ 투자자 모집책 2명은 오후 9시2분, ‘5종목 하한가’ 주식카페 운영자는 오후 9시16분에 영장이 떨어졌다. ‘TV조선 재승인 의혹’ 혐의의 방통위 과장은 밤 10시5분, ‘대북 송금 의혹’ 아태협 회장은 오후 10시29분, ‘제3자 뇌물 혐의’ 정찬민 의원은 오후 10시31분, ‘땅콩 회항’ 조현아는 오후 10시35분, ‘주가조작 의혹’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회장은 오후 10시49분, ‘가족펀드 의혹’ 조국 5촌 조카는 오후 10시57분 영장이 발부됐다. 
 
한진가의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오후 11시6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강래구는 오후 11시29분 각각 영장이 기각됐다. 조국 동생은 오후 11시37분 영장이 발부됐다. 이스타항공 부정채용 의혹을 받는 이상직 전 국회의원은 오후 11시38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영장은 오후 11시39분에 각각 발부됐다. 
 
이제 자정을 넘긴 사례를 보자. 
 
‘TV조선 재승인 의혹’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오전 0시06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고발사주’ 의혹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은 0시13분 영장 발부가 불발에 그쳤고 ‘강원랜드 채용청탁’ 권성동 의원은 0시20분에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정경심 교수는 오전 0시20분에 구속됐고 ‘넥슨 특혜’ 관련 진경준 검사장은 0시22분에 영장이 기각됐다. 
 
‘배임·횡령’ 강덕수 전 STX 회장은 0시30분에 발부됐으며 6월에 ‘50억 클럽’ 박영수 전 특검은 오전 0시39분에 영장이 기각됐다. ‘한동훈 아파트 침입’ 더탐사 대표도 같은 시각에 영장이 기각됐다. 2018년 김경수 경상남도지사는 오전 0시43분에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납치 살인 배후 의혹’ 재력가는 0시58분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정작 3인조는 오후 5시48분에 구속됐지만 같은 사건의 공범인 재력가에 대해서는 밤 12시를 넘겨 영장 발부가 결정됐다.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은 오전 2시4분에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역시 임종헌 사법농단 수사 1호 구속도 2시4분이었다. 올해 9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은 오전 2시24분에 기각됐다. ‘웅동학원 비리 의혹’ 조국 동생은 오전 2시25분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횡령·사기’ 혐의 조양호 한진회장은 2018년 오전 3시23분 구속영장이 기각이 결정됐다. 
 
이쯤 되면 뭔가 짚이는 게 있지 않나. 적어도 언론보도만을 놓고 보면 영장 발부의 가부가 결정되는 시간은 사회적 지위와도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추정이 무리는 아니다. 유전무죄라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낮에 결정 나는 영장심사의 소송관계 서류가 A4 한두 장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영장전담 법관은 거물급을 심사할 때 고의로 발표 시간을 늦출까? 법원 기자들 사이에서 나도는 설(設)을 하나 참조해 보자. “구속을 너무 일찍 시키면 판사가 서류를 숙고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고 기각을 너무 일찍 시켜도 봐주기 논란에 휩싸일 것이다.” 
 
오래전 서울중앙지법의 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인터넷 댓글을 참조한다”고 했다. 판사실로 찾아간 기자 10여 명이 이 말을 들었다. 뒤집어 놓고 보면 “여론을 의식한다”는 말이다.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할 때’라는 판결문 문구는 곧 ‘인터넷 댓글을 고려할 때’라는 뜻이라고 비꼬아 받아들이는 기자도 당시에 있었다. 
 
영장실질심사 제도는 본질적으로 여론의 눈치 보기라는 구조적 제약을 안고 있다. 문제는 여론의 본질적인 속성이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담보할 수 없고 국민 감정이란 걸 계량화·통계화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누군가 여론을 조작한다면 더 큰 일이다. 냄비처럼 끓던 악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호의적인 반응으로 바뀌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똑같은 죄를 짓고도 언제는 징역형·언제는 무죄가 나온다고 여론은 생각한다. 
 
따라서 판사가 여론을 살핀다는 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로 보인다. 국민은 판사가 법리를 검토할 것을 기대하지, 여론의 눈치 볼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인권도 중요하고, 일단 붙잡아 가두고 시작하는 검찰 관행도 제지해야 하겠지만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영장심사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 
 
똑같은 민주당 대표인데 현직은 기각하고 전직은 구속한 유창훈 영장전담판사는 특히 이 점을 위중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여론을 살피는 법관’이 끼칠 국가적·국민적 폐해가 과연 한시적일지, 아니면 반영구적일지를 말이다. 오직 법리에 따라서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야 법관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판결해야 판사다. 아닌 걸 아니라 기사 써야 기자인 것처럼.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3
좋아요
6
감동이에요
2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