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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쇼핑거리 전락한 ‘1000만’ 영화의 그늘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10 17:52:39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31번째 ‘1000영화가 나왔다. 지난해 연말에 개봉한 서울의 봄12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아직도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영화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고 감독도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밝혔지만 관객은 그런 것은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듯 상관하지 않는다. 그저 권력을 잡으려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는 악당 군인과 이를 막고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선의의 군인이 대립하는 이야기를 진짜처럼 믿으며 멋있다고 생각하는 쪽에 박수를 보내는 건 아닐까.
 
현실 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범죄 혐의를 받거나 이미 처벌을 받은 범죄자들이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니는데도 그들을 추종하는 집단들은 그들의 무고함을 믿는다. 묻지 마’ 지지 세력이 여전하고 지지율도 30% 수준을 넘나들고 있다. 영화에서는 정의 편을 들고 현실에서는 악인 편을 드는 부조화는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관객과 악인을 추종하는 집단은 완전히 별개인가. ‘1000기록은 범죄도시3’에 이어 작년에만 두 편째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실미도’(2003). 200312월에 개봉해 이듬해 2월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오랫동안 한국영화는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에 일방적으로 눌리고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친구’(2001) 등이 흥행 선풍을 일으키며 부흥했고 이 무렵을 전후해 ‘1000 관객’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실미도1000만 기록이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사건인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변화의 시작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영화계 사람들조차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고, 어딘가 물어볼 데도 없었지만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2005) ‘괴물’(2006) ‘1000 영화’가 잇따라 나왔다. 더이상 어쩌다 생긴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입을 다물었다.
 
최고 호황을 기록했던 2019년에는 극한 직업’ ‘어벤저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 ‘겨울왕국2’ 5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이를 합치면 66808700명에 이른다. 여기에다 8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도 3편이나 돼 92507700명이다. 그해 전체 관객 22600만 명 중 8편의 흥행이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셈이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관객 수가 5000~6000만 명까지 급감했지만 지난해에는 12500만 명 수준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그래도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OTT의 확대 등 관람 형태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10년 동안의  누적 관객 수는 한국영화 166880만 명·외국영화 151110만 명 수준으로 이를 합치면 318040만 명에 이르고 1인당 평균 관람횟수는 6회가 넘는다. 대략 3500만 명을 잠재 관람객으로 보면 ‘1000은 적어도 네 사람 중 한 명은 보아야 하는 수다. 인기 팝스타의 공연에 열광하듯 소문난 영화에 사생결단하듯 몰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1000만 관객시대가 열린 이후 오랫동안 영화계의 흥행 판도는 한국영화가 압도적으로 주도했다. 31편 중 22편이 한국영화고 9편이 미국영화다. 한국영화가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서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통했다. 미국영화 대작들도 한국영화의 눈치를 보며 한국에서 세계 최초 개봉을 하거나 스타들의 홍보 방문도 흔한 일이 되었다.
 
‘1000 관객은 한국영화의 약진을 상징하지만 그 현상 뒤에는 문화적 폭식과 집단적 대세 추종 등 부정적인 요소가 더 크게 숨어 있다고 본다. 목록에 오른 영화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뿐이다. 영화계에서는 400만이나 500만 관객은 영화의 힘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1000만은 어느 영화가 만들어 낼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한다. 500만 정도가 넘어서면 대세가 형성되면서 저절로 굴러간다. 영화관에 가지 않던 관객도 그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뭔가 유행에 뒤진다는 압박감에 휩싸이게 된다. 관람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도 대세에 참여했다는 안도감에 젖는다. 영화를 즐기기보다는 나도 보았다는 사실을 더 과시한다
 
영화산업에서 영화관 관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75% 수준이고 2차 시장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그나마 한국영화 아니면 미국영화만 본다. 영화 시장 구조는 편중돼 있고 다양성은 죽었다. 영화에 대한 열광이 사랑이나 관심은 없고 다른 사람이 보았으니까 나도 보아야 하는 것이란 유행 따르기와 소비는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문난 영화 쇼핑을 하는 것은 아닌가. 극단적인 정치적 편향도 영화 관람의 다른 모습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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