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의 시사저격] 여당은 총선 망치려고 작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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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상승효과 큰데 선거에 찬물 끼얹는 격
견제·균형 원리 깨뜨리면 민주주의 설 땅 없다

구월환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24 06:31:10

윤석열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당의 대표다. 그런데 대통령의 권한 중에 정당 대표의 사퇴를 요구할 권한이 있는가. 또 정당 공천에 관여할 권한이 있는가. 이것은 행정수반이 독재자였던 시절에나 용인됐던 일이다. 2024년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는 와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외교권 행사를 위해 부여된 지위다. 국가 유지의 필요에 의해 행정부의 가능이 입법부와 사법부에 비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 인사나 정당 업무에 관여할 권한은 없다.

사리가 이런데도 정당 대표인 한동훈 위원장이 대통령의 요구대로 사퇴해야 한다느니 공천 문제가 잘못됐다고 대통령 비서실에서 지적했다느니 하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한 위원장은 지금 장관도 아니고 행정부 소속도 아니다. 엄연한 국회 제2정당의 대표다. 그 정당에는 100명이 넘는 국회의원이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독하는 권한을 행사하는 곳이다. 행정부에 대한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국회의원의 집합체인 정당의 수장을 행정부 수장이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또 그것이 옳다 그르다 하며 갑론을박하는 것이 오늘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최상위권의 민주주의 국가, 세계 제10위권 선진국은 실상인가 허상인가. 만약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상·하원의원 후보 선출에 간섭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한국 언론들도 안 된다고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서는 행정수장의 정당 수장 사퇴 요구 사건이 터져도 의외로 관대하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이 생겼다. 법은 제왕을 만들지 않았으나 우리 국민과 언론·정치인이 만든 것이다.

한 위원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국힘 내부의 절차에 따라 논의하면 될 일이다. 그런 절차는 놔두고 대통령의 요구니까 들어야 한다든지, 의원들이 연판장을 돌려 압력을 가해야 한다든지, 누구를 시켜 윤리위에 제소 운운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고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 놓고 이번 총선에서 “이런 (훌륭한?) 정당을 지지해 주시오” 하고 요청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국힘 간부도 지적했듯이 소속의원 단체 카톡방에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한 초선의원이 ‘한동훈에 사퇴 요구’ 기사를 띄워 놓고 “옳소” 하는 소리를 기다린 것은 유치한 꼼수라고 할 것이다. 이재명만 꼼수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대명천지에 언제까지 측근이니 윤핵관이니 용핵관이니 하는 비선·사선 변칙정치를 용인할 것인가.

이번 사태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선거 악재다. 정부와 여당 수뇌 간의 갈등과 충돌로 국정 동력이 떨어졌다. 원상회복은 어려울 것이다. 올림픽 선수가 출전을 앞두고 다리를 다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번에 한동훈이 잘못했다는 부분도 그렇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이미 무시 못 할 선거 악재로 대두된 상황인데 그에 대해 아무 해명이 없었다. 김 여사의 명품백 문제만 해도 불거져 나온 것이 작년 11월인데 두 달간이나 당사자의 해명 한마디가 없었다. 초기에 끄지 않은 불씨는 시간이 갈수록 급속하게 커진다. 문제가 커질 만큼 커지고 나서야 함정 취재에 걸린 피해자이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너무 늦었다. 방대한 집권 기구의 정무 감각·홍보 선전 기능 다 어디 갔었나. 왕조시대에도 우리 신하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왕 앞에서 ‘아니 되옵니다’ 하고 목청을 높였다. 왜 21세기의 신하들은 이렇게 퇴화되었나.

한동훈이 당원 모임에서 원희룡·김경율을 불러내 이재명·정청래의 대항마라며 기세를 올렸다. 이런 서프라이즈는 전쟁 같은 선거 싸움에서 사기 진작과 기선 제압의 효과가 크다. 이걸 가지고 공천 절차 무시라며 들고 나온 것이 과연 똑똑한 짓인가. 이 정도를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 단체라면 곤란하다. 맥아더의 인천상륙 작전처럼 그런 특별한 결단도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전쟁에 이기는 것을 능가할 명분은 없다. 시민운동을 해 온 김경율 비대위원은 분명 너무 나갔다. 그러나 이 때문에 선거 승리를 위해 포석한 비대위원들을 너무 폄훼하는 것은 나무를 보다가 숲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한 달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에 한동훈 효과는 놀라웠다. 무기력하던 국힘은 봄을 만난 듯 분위기가 바뀌었고 가는 곳마다에 환호성이 넘쳤다. 4.10 대전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총선 승리의 예감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처럼 일이 터졌다. 끓어오르는 물에 찬물 한 바가지를 부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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