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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국회의원 총선거 공약집에 ‘비동의 강간죄’를 넣었다가 특히 청년 남성들의 반응이 좋지 않자 황급히 철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실무자의 착오라고 둘러댔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 문제에 있어 민주당은 친여성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반수 의석으로 각종 법안을 밀어붙이며 힘자랑을 일삼았던 민주당의 위선과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비동의 강간죄 도입도 그렇지만 낙태죄 개정도 말로만 떠들고 실제로는 법안 통과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비동의 강간죄를 보자. 이번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백혜련·소병철 의원과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제일 먼저 발의한 백혜련 의원의 안은 성폭력의 본질은 가해자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해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인데 엄중하게 처벌해야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할 수 있다면서 현행법과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행법이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행위’로 정하고 있고, 대법원 판례는 강간죄로 처벌하려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으로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이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여야 한다고 보고 있어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폭행 또는 협박으로’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로 개정하고, 사람의 저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그 죄에 정한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는 법안이다. 현재 강간죄 형량은 3년 이상의 징역인데 이 법안에 따르면 강간죄가 인정될 범위도 넓어지겠지만 폭행 또는 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전형적인 강간 행위의 형량이 훨씬 높아지는 결과가 된다.
류호정 의원의 안도 백혜련 의원 안과 취지는 같다. 다만 기존의 강간죄 조항은 그대로 두면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교한 사람은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강간의 수단이 완화된 이상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하는 기존 강간죄의 경우보다는 형량은 내려 준 것인데 필자는 이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병철 의원 안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사람을 간음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류호정 안보다 형량을 조금 높인 것이다.
비동의 강간죄 신설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크다. 현재 형법이 폭행·협박을 강간의 수단으로 하고 형량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취하는 강도죄와 같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이때의 폭행·협박은 사람의 저항이 현저히 곤란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해석이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폭행·협박의 정도를 많이 완화시켜 왔고 강간으로 포섭이 어려우면 강제추행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비동의 간음죄 신설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예컨대 술에 취해서 남성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나중에 술이 깨고 나서야 성관계 한 사실을 인지한 경우나, 폭행·협박을 당하지 않았어도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갖게 된 경우에는 처벌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고 비판한다. 일리가 없지 않은 주장이지만 이런 식이면 성관계 시 음성을 녹음시켜 놓아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상대방 동의 없이 성관계 음성을 녹음하는 것도 처벌하는 입법이 발의되었다,
마치 도박판에서 ‘받고 떠블로 가’ 식으로 판돈만 계속 쌓이는 형국이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안 됐다고 봤는지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비동의 강간죄는 20대 국회에서도 발의가 됐고 당시 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 소속 나경원·홍철호 의원도 가세했었다. 여야 간, 남성·여성 간 입장이 대립되는 법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강간죄 성립이 여성의 의사에 좌우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제거해 주면 되는 것이다. 폭행·협박을 수단으로 한 경우보다 형량을 낮추고 징역형만 고집하지 말고 벌금형도 추가하는 식으로 절충해 볼 수 있다. 자발적이지 않다고 보는 경우를 조문에 열거해 줄 수도 있는데 스웨덴과 독일의 입법이 그렇다. 스웨덴 형법은 ‘다음 각호의 경우는 자발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가해자가 무의식·수면·중대한 공포·음주·약물 복용·질병·상해·심신미약 등 피해자의 특별히 취약한 상황을 부적절하게 이용할 경우’ 등 세 가지 예시를 들고 있다. 독일 형법도 ‘행위자가 타인이 반대 의사를 형성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 있지 아니함을 이용한 경우’ 등 다섯 가지 예시를 들고 있다.
이렇게 가능한 대안이 있는데도 민주당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방기했다. 그래놓고 총선 공약집에 또 넣으려다가 여론이 안 좋자 실무자 실수라며 꼬리를 자르고 사실상 도망을 간 것이다. 참으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이다.
낙태죄 개정 입법을 보자. 헌법재판소가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20년 말까지 개정 입법을 하라고 시한을 정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권인숙 의원 등이 낙태죄를 아예 폐지하거나 사실상 낙태를 전면 허용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쪽에서는 임신 초기로 한정해서 예컨대 6주나 10주 이내에만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견해 차이가 크긴 하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을 넘기면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민주당은 이것을 노렸을 수도 있다. 입법을 그냥 방치하면 낙태죄 조항이 자연스럽게 효력을 상실하게 되니 낙태 전면 허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에서는 여전히 인공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또한 허용되는 예외 사유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민주당의 의도가 낙태 전면 허용이라면 모자보건법도 개정해서 모든 낙태에 건강보험을 적용시켜 줄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종교 단체의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마냥 방치한 채 회기를 마감하려 하고 있다.
절실한 민생 입법을 방치한 채 정부·여당이 거부할 입법에만 다수 의석을 써먹고 힘자랑만 한 민주당이 다음 국회에선 과연 변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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