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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전도사] 빠삐용의 죄는 바로 ‘인생을 허비한 죄’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5-21 23:43:29
▲ 윤명원 칼럼니스트
아주 오래 전에 본 프랑스 영화다. 이 영화의 주제가는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였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빠삐용(스티브 맥퀸)은 감옥에 갇힌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하고 다시 잡혀 이번에는 살아서는 못 나온다는, 남미 프랑스령 가이아나의 외딴섬으로 다시 유배된다.
 
여태 그가 살아가는 목적은 오로지 탈출이다. 탈출에 실패한 가중처벌로 수십 년의 감옥생활에서 그를 지탱해 준 것은 여전히 자유에 대한 열망과 탈출의지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이 대목이다. 드디어 최후의 탈출을 또 꿈꾸는 빠삐용은 야자 열매를 채워 넣은 자루를 만들어 천길 아래 바다에 먼저 던져 띄우고 그것에 의지해서 그 섬을 탈출하고자 나비처럼 자유롭고자, 천길 아래 바다 절벽으로 몸을 날린다.
 
이 장면에서 숨을 죽이며 보던 나와 모든 관객들은 손이 얼얼하도록 뜨겁게 통쾌하게... 박수를 쳤던 것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사막의 지평선에서 빠삐용이 심판 받는 상징적 장면이다. 지평선 위에 일렬로 앉은 배심원들이 빠삐용에게 묻는다.
 
너의 죄가 무엇이냐?”
 
나는 죄가 없다 단지 누명을 썼을 뿐이다(I am innocent! I am not guilty!)”
 
빠삐용이 외친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더없이 준엄한 판결을 한다,
 
너의 죄는 인생을 허비한 죄다!”
 
그 누구도 피해 갈수 없는 이 선고에 빠삐용은 고개를 떨구며 아무 대꾸도 못한다.
 
나도 이 장면에서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마치 내가 빠삐용인 듯이.
 
그 누가 이 질문에 단연코 고개를 가로 저을 수 있을까. 이 장면은 내 뇌리에 깊숙이 박혀 이후에도 오래도록 가끔 생각나는 장면이요 가끔 나를 되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 되었다.
 
인생을 허비한 죄.
 
허비(虛費)는 헛되이 써버린다는 뜻이다.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시간과 인생을 허비하며 살아가기 쉽다.
 
내가 이 영화를 볼 땐 사춘기였다. 이제 남은 인생은 지나 온 시간보다 훨씬 짧아졌다. 그 동안 허비해 버리고 만 시간은 없는가? 앞으로도 허비하며 살아갈 것인가?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내 인생.
 
또 다른 장면은,
 
늙어버린 동료 죄수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또 탈출을 시도하자고 하는데 더스틴 호프만(드가 역)은 그저 이곳 절대 탈출불가한 죄수들의 섬에서 그냥 눌러 살기를 원한다며 현실의 안주를 택하고 그를 외면한다.
 
이 영화의 테마는 목숨보다 더 귀한 자유에의 갈망이다.
 
인간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이념도 이상도 부귀영화도 목숨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 없는 것하지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것을 구하려는 것이 인간이며 때로는 자신의 목숨까지 버려가며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이 또 인간이다. 이것 역시 인간의 모순이요 아이러니다.
 
빠삐용과 드가를 통해서, 자유 의지와 현실 안주를 택하는 인간의 모습을 대비시켜 현실과 이상의 두 상반되는 가치를 보여준다.
 
드가(더스틴 호프만 분)는 그 섬에 무기수로서 삶에 적응하며 텃밭도 가꾸고 가축도 키우며 죽을 때까지 그 울타리 안에서 그런대로 나름대로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빠삐용은 그러한 모든 자유 없는 평온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유에의 갈망을 위해 목숨까지 무릎 쓴 위험을 기꺼이 감당한다.
 
나와 이 영화를 같이 관람했던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 쓴 탈출 장면에서 손이 얼얼하도록 손뼉을 치며 가슴이 뻥 뚫리는 감동을 받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유를 염원하는 인간본연의 숭고한 의지에 대한 갈망 때문 이었을 것이다.
 
나는 빠삐용의 마지막 장면을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책상 다른 한 쪽에는 북한 회복을 위한 31 기도 제목이란 책자가 놓여있다. 내 두 손은 어느새 모아지고 두 눈은 감겨지고 있었다.
 
자유를 찾아 망망대해를 향해 천길 만길 절벽을 뛰어내리는 빠삐용이 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 만 수십 만의 북한 동포들이 빠삐용처럼 자유를 찾아 지금 뛰어내리고 있다
 
자유라고 하는 인간 본연의 갈망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기에. 북한 동포들이여 빠삐용이 되거라. 북한 동포들이여 빠삐용이 되거라. 이렇게 중얼거리다 보니 금세 눈시울이 젖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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