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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김신조를 심문하다
나는 그가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반항할 체력이 없게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좀 진정이 되는가 싶어 보이자 침착하게 그에게 접근했다. 그러고는 “자네가 죽기는 왜 죽어”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얘기했다. 또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꼭 하나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누구든 태어났으면 최선을 다해 살면서 “진실을 알아야 하고 또 진실을 말해야 하는 것”이 생명을 받은 존재로서의 의무라고 했다. 진실을 알고 진실을 말한 다음엔 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태어나서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왔으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기도 전에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비겁하고 무책임한 일”이라고 설득했다. 하도 진지하게 설득했더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지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문 채로 내 말을 계속 듣기만 했다.
하루하루 조금씩 김신조의 기세가 수그러지는 게 보였다. 이윽고 나는 그의 수갑을 풀게 하고 식당에 특식을 주문해 먹게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갔다.
“김군, 자네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도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다음에 우리 함께 무엇이 바른 길인지 판단을 하자.”
아마도 이때 김신조는 북에서 배우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가 아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나를 설득하겠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날이 가면서 그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와 내가 서로 가식없이 인간적인 냄새를 맡으면서 남·북한의 건국 과정이며 가짜 김일성의 정체, 자유세계의 실정에 관한 것을 이야기하고 들으면서 그는 서서히 새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약 3주 후부터는 수용소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 중에 가장 협조적이었던 사람의 하나가 되어 가장 많은 분량의 정보를 제공했다.
우리는 심문 도중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출소하면 꼭 교회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국 정부는 그가 전향해서 최대한으로 협조를 했고, 또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에 1970년에 합법적인 남한 주민으로 정착하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그 바람에 불행히도 북에 있는 그의 가족은 모두 처형되었다.
그 후 김신조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성락교회의 김기동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 후에는 침례교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남양주 성락교회에서 2009년까지 시무했다. 생포되었을 당시 자폭하려고 안전핀을 뽑은 수류탄이 불발한 것은 김신조 자신의 선택도 아니었고 수색대원들의 선택도 아니었다. 그건 하느님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비록 무장공비였지만 그를 살려 놓고 쓰겠다는 하느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었을까.
남한 침투로 현장검증
김신조가 대방동 수용소에 도착하고 1주일 후에 미8군 G-2의 올랜드 준장과 나, 보안사 서빙고분실 보안과장 이학봉 소령이 김신조를 앞세우고 헬리콥터를 타고 전방에 가서 김신조 31인조가 통과한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조망을 조사했다. 철조망은 기둥 북쪽에서 공병가위로 수직 약 1m가량을 자르고 통과한 후 다시 내려놓으면 철 기둥 남쪽 밖에서는 순찰대나 조사관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김신조로부터 침투 당시의 상황과 이동 과정, 아군 경비태세의 허점을 구체적으로 들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그 지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미군 GP로 이동해 쌍안경으로 비무장지대 반대쪽에 있는 북한 초소의 동향을 감시했다.
그런데 그때 또 예기치 못한 참사가 발생했다. 우리가 헬리콥터로 그 초소를 떠난 약 10분 후에 북한 초소에서 포탄을 발사해 우리가 방문했던 바로 그 초소에서 근무하던 미군들이 폭사하고 부상을 입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그곳에 10분만 더 머물렀더라면 우리도 그 참변을 당했을 것이 아닌가. 그때 동행했던 이학봉 소령은 육사 18기생으로 1980년에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 대공처장을 역임했고 육군 준장으로 예편했으며 1986년에는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2차장을 했고 나중에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생존 도주자가 서울 방문
세월이 많이 지난 후 2004년에 김신조는 놀랍고도 새로운 사실을 증언했다. 1968년 1월21일 청와대 기습 작전에 실패한 후 31인 공비들 중에 살아서 북으로 돌아간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는데, 2000년 9월11일에 김정일의 특사로 서울을 방문한 노동당 대남 담당 비서 김용순을 수행한 박재경 대장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박재경 대장은 그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 부총국장이었으며 김정일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그는 서울에 왔을 때 신라호텔에서 남측 인사들을 만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김하중에게 칠보산 송이버섯을 전달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청와대 기습 작전에 실패하고 북으로 도주할 때 노고산에서 추격하는 국군 수색대와 교전을 벌여 15연대장 이익수 대령을 사살한 장본인이다.
또 다른 이야기
한국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상이한 새로운 사실을 증언한 한 사람이 또 있었다. 2012년 초에 탈북인 중 한 사람이 전 인민군 상좌 홍은택 (가명)인데 그가 124군부대의 후신인 711군부대에서 5년 이상 근무하면서 알게 된 내용이라며 김신조와 대면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1968년 1월21일 청와대 기습 작전에 남파된 공비는 총 33명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김신조가 모르는 두 명이 더 있었다는 말이 된다. 김신조는 분명히 처음부터 31명이 떠났고 31명이 같이 행동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 추가적인 두 사람은 동일한 임무를 위해 별도로 침투했고 별도로 행동했다는 말이 된다. 홍은택의 말에 의하면 그가 711군부대에서 분명히 문헌에서 보았고 부대역사 강의에서 들은 바 그 두 사람의 이름은 임태영과 우명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 했다.
그들은 공비들이 서울 청운동 세검정에 도착했을 때 인근 옥상에서 공비들의 후미를 감시하고 주위를 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작전이 실패하는 것을 보자 도주했지만 생포되었고, 수색대가 그들에게 자수하고 전향하여 국군에 협조할 것을 강요했다. 그들이 거절하자 수색대가 생포된 다른 공비 한 사람을 작두로 목을 잘라 참수하는 현장을 보여 주었다. 결국 두 사람은 겁에 질려 대한민국에 충성할 것을 서약하고 대북 역공작 임무를 받은 다음 북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북에 돌아가서 김일성에게 직접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으로 충성을 다해 승진하고, 적절한 시기에 있을 남한의 지령에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북에 돌아가서 충성을 다 했고 각각 상장과 중장까지 진급했지만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1998년에 처형되었다고 한다.
이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1968년 1월25일 오후, 수색대의 추격 중에 사살된 공비들의 시신을 경기도 송추 초등학교 교정에 모아놓고 김신조에게 확인을 하게 했는데 그때 시신 가운데 목이 잘려 나간 시신이 하나 있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위에서 말한 홍은택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다고도 볼 수 있으나 이 문제는 아직도 한국 정부에서 확인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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