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칼럼] 마리 앙투아네트·명성황후 그리고 김건희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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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리스크는 탄핵의 도화선으로 맹렬 작동 중
외국 유학 등 어쨌든 3년간 국민 시야에서 지워야
‘국민 밉상’ 이미지 떨쳐 내지 않고선 파국 불가피

조우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7-23 06:31:10

많은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두고 프랑스의 옛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구한말의 명성황후에 비견하곤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부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다. 앙투아네트와의 맞비교는 김경율이 먼저 했다. 다 아시듯 앙투아네트는 대혁명 당시 분노한 민중에게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라”고 했던 철부지 왕비다.

물론 그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앙투아네트가 혁명을 불러들인 여자란 세평도 따라서 잘못이다. 문제는 김건희·앙투아네트는 사람됨이나 맥락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걸 계속 수군대는 것은 악녀 앙투아네트의 이미지를 김 여사에게 덮어씌우려는 얄궂은 충동에서다. 반면 여러 가지로 잘 맞아떨어지는 건 명성황후·김 여사 사이의 맞비교다.

반일 뮤지컬 ‘명성황후’가 명성황후의 이미지를 비운의 희생양으로 포장했지만 탁 터놓고 말하자. 한국인에게 명성황후 이미지는 썩 좋지 못하다. 우리 마음속의 그녀를 정리하자면 시아버지 대원군과 죽고 살기 권력투쟁을 벌였던 야심가 여인이다. 궁중에서 굿판을 벌여 국고를 탕진한 무속의 끝판왕이며, 민씨 일가를 불러들여 세도정치를 꾸민 욕심쟁이다.

실제로 명성황후는 무능하고 유우부단했던 남편 고종과 한 몸으로 움직였다. 사실상의 공동 통치자였다. 흥미롭게도 대한제국·고종 그리고 명성황후를 두고 요즘 국사학계가 그렇게 열심히 포장하고 재해석을 한다. 얼마 전 타계한 국사학자 한영우 전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자기 책 ‘명성황후, 제국을 일으키다’(효형출판)에서 명성황후를 놀라우리만치 적극 옹호했다.

“고종과 황후를 비하하는 우리의 관념에는 황실과 대립 관계에 있었던 친일개화파(김옥균 등)에 대한 숭앙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나는 국사학계의 대한제국에 대한 짝사랑이 학문적 근거가 취약하며 ‘역사 동화’라고 치부하는 사람이다. 다만 명성황후에게는 뭔가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 명성황후를 직접 만났던 당시 서양인들의 일관된 증언만 해도 그렇다.

영국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미국 여의사 언더우드의 경우 민비를 “호리호리한 몸매에 재기가 번뜩이는 지성적 눈매” “기지와 매력을 지닌 귀부인”으로 그리고 있다. 서양 문화에 대한 열린 호기심도 남달랐다고 증언했다. 명성황후가 무속에 매달린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그가 ‘19세기 조선의 라스푸틴’이던 무당 출신 진령군에 매달렸다는 것도 실은 변호를 못 할 게 없다.

명성황후는 4남 1녀를 뒀지만 대부분 단명했고 둘째 아들만 살아남았다. 그 병약한 아들을 위한 어미의 정성이 굿판으로 표현됐던 셈이다. 당시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직전 상황에서 무속이란 삶과 죽음의 판관(判官)이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명성황후는 긍정적으로 봐 줄 여지가 아주 없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김 여사에겐 정상 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다.

그건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에서 우린 그의 진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남편에 대한 보필은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를 도통 모르겠다. 기품 혹은 자애로움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부덕(婦德)조차 갖추지 못했다. 패션 감각은 으뜸이지만 그게 격조로 보이질 않고 “나 김건희이거든?” 하는 섣부른 과시욕에 그치니 모두가 등을 돌린다.

둘째 비쭉 솟은 사적·정치적 욕망이 화근이다. 그게 종종 남편을 찍어 누른다. 일테면 그는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챙겨 줘야지 뭐라도 하는 사람이다”고 ‘서울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 미국 방문 때도 선 넘는 발언을 했다. “북한을 변화시키도록 저와 우리 정부가 끝까지 함께할 것”이란 연설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권력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니 숱한 논란을 불렀던 각종 인사 개입과 당무 개입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실은 김 여사의 결정적 한계는 셋째 문제로 귀결된다. 그가 단 한 번도 현대사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내비친 적이 없다. 때론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법인데, 그런 흔적조차 없다. 때문에 오늘 내 결론은 김 여사는 명성황후에 비해 나을 게 없으며 차라리 그 이하란 점이다.

그런 그녀는 현재 좌우 진영의 동네북으로 전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 게 사실이다. 용산이 멋진 탈출구를 찾아낼 것을 기대하지만 지금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탄핵 공포증에 눌린 채 눈치만 보고 있으니 정말 큰일은 큰일이다.

얘길 마저 하자. 사람들은 김건희·명성황후, 윤석열·고종을 한 세트로 보지만 그래도 고종은 나름 할 일을 했다. 명성황후 시해 뒤 국장(國葬)을 무려 2년여 뒤로 미루고 또 미루면서 황후에 대한 백성의 추앙을 유도했다. 그런 동력으로 선포했던 게 바로 대한제국이었다. 물론 그건 정치적 허세였다지만 왜 윤 대통령에겐 그런 머리도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