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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미·소 ‘부엌 논쟁’의 추억과 韓·李 회담
오주한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8-23 00:02:40
▲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1959년 7월24일 소비에트연방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때 아닌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이튿날 공산진영의 심장에서 열릴 미국무역박람회 전시장을 미리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 부통령·니키타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 때문이었다.
 
당시는 미·소 양국이 데탕트를 위해 서로에게 손을 내밀던 시기였다. 한 달 전에는 미국 뉴욕 한복판에서 소련무역박람회가 열렸다. 그에 대한 답례로 모스크바에서도 미국무역박람회가 개최됐고 양국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함께 전시장을 사전 답사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동행은 전 세계에 TV로 중계됐다. 그런데 24일 전시장 방문에서 예상치 못한 해프닝이 벌어져 훗날 미·소 정계에 큰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바로 부엌 논쟁(Kitchen Debate)이었다.
 
미·소는 형식적으로만 해빙 무드를 조성했을 뿐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서로를 적대시하고 경쟁자로 여겼다. 따라서 닉슨·흐루쇼프의 만남도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이른바 ‘선빵’을 날린 쪽은 흐루쇼프였다.
 
두 사람은 전시장을 본격적으로 둘러보기에 앞서 토크쇼 형태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흐루쇼프 “미국이 생긴 지 얼마나 됐소? 300년?” 닉슨 “150년 정도죠.” 흐루쇼프 “미국이 150년 만에 이룬 경제 성과를 소련은 42년 만에 해냈소. 앞으로 7년이면 당신네를 따라잡을 거고 이내 추월할 거요. 우리는 인정이 있으니까 미국을 추월하면서 가볍게 손 흔들며 인사쯤은 할 거요(웃음). 그리고 (닉슨에게 손가락을 까딱이며) 우리를 쫓아와서 어디 한 번 추월해 보라고 양보는 할 거요(웃음).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자본주의가 좋다면 뭐 말릴 순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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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청중도 의기양양해 하는 흐루쇼프에게 일제히 호응했다. 닉슨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 짓다가 입을 열었다. “경쟁을 하려면 사상의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자본주의에 대한) 모든 걸 알 순 없소.” 흐루쇼프 “당신이야말로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을 뿐 공산주의를 전혀 모르오.” 닉슨 “소련이 앞선 게 있소. 우주탐사 로켓 같은 것 말이오. 우리는 컬러TV 같은 것에서 앞섰소. TV를 통해 양 국민은 서로를 알아야 합니다.” 흐루쇼프 “좋소. 당신은 우리 인민 앞에 서고 나는 당신 국민 앞에 섭시다. 당신은 자본주의 변호인을 하고 난 공산주의 변호인을 하는 거요.” 닉슨 “당신은 훌륭한 변호인이 될 거요. 미 상원에서라면 필리버스터로 비난받을 테지만.”
 
한바탕 설전을 벌인 두 사람은 방송이 끝나자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모델하우스의 최신식 미국 주방시설 앞에 섰다. 주방은 당대 최고의 미국산 제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닉슨은 말했다. “미국 일반 가정의 ‘흔한’ 주방이오. 미국인은 여성의 편안한 삶에 관심이 많소.”
 
소련의 가전제품 기술력·생산력은 미국에 비하면 몇 수 아래였다. 뾰로통해진 흐루쇼프는 비꼬듯이 대답했다. “밥 떠먹여 주는 기계는 없소? 그나저나 미국의 집들은 20년밖에 못 견딘다면서요? 그래야 (자본가들이) 새 집을 지어 팔 수 있을 테니.” 닉슨 “그게 아니라 미국인들은 20년쯤 지나면 (헌 집에 질려서) 새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거요.” 흐루쇼프 “소련에선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소. 미국인들은 돈 없으면 길바닥에서 자야 하지만.” 닉슨 “우리에겐 다양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선택을 하는 것이오.” 흐루쇼프 “….”
 
방송 출연 때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이지만 카타르시스 주는 화법을 구사한 흐루쇼프의 승리로 끝날 것만 같았던 설전은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세련된 언변을 구사한 닉슨의 승리로 끝났다. ‘부엌 논쟁’ 승자로서 개선장군이 돼 귀국한 닉슨은 인기가 급상승했다.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선 그는 1960년 대선에서 간발의 차로 존 F. 케네디에게 패한 뒤 1968년 대선에서 끝내 대권을 쟁취했다. 반면 ‘부엌 논쟁’ 등에서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듯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일으킨 흐루쇼프는 재차 망신만 당했다가 1964년 실각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릴 예정인 국민의힘 한동훈·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회담이 정계의 최대 이슈다. 두 사람을 두고 과거의 닉슨·흐루쇼프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첫째, 과거다. 닉슨은 빈궁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하버드대에 합격할 정도의 수재였다. 한 대표는 서울대·컬럼비아대 로스쿨 등을 거친 수재다. 흐루쇼프는 초등학교를 중퇴한 사실상의 무학(無學)이지만 자수성가했다. 이 대표는 서 발 막대 거칠 게 없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딛고 변호사·정치인으로 자수성가했다.
 
둘째, 정계 입문 시기다. 부엌에서 마주칠 무렵 닉슨은 실권이 많지 않은 부통령에 머물렀던 반면 흐루쇼프는 이미 소련공산당 최고 권력자였다. 이 대표가 시장·도지사·대권주자 등으로 승승장구할 때 한 대표는 검사였다.
 
셋째, 화술이다. 상술했듯 흐루쇼프는 직설적이고 투박한 반면 닉슨은 세련되고 정제됐다. 이 대표는 비교적 직설적이고 화끈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때문인지 “김포 이런 곳” “하다하다 안 되면 가는 게 택시(기사)” “인천은 외지인이 사는 곳” “저학력·저소득층에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경기북도 분도(分道)하면 강원서도(西道) 전락” “살림은 역시 여성이 잘한다”는 등의 각종 설화(舌禍)로 곤혹을 치렀다.
 
반면 한 대표는 야권으로부터 ‘입동훈’ 등의 별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공(攻)·방(防) 모두에서 빈틈없는 화술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 의원들의 공격을 논리적으로 방어하고 반격한 모습이 지금의 정치인 한동훈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국민의힘 인사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부탁을 받았다고 폭로하는 등 논란을 빚긴 했으나 이마저도 계산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러한 차이 때문인지 한 대표 측이 이례적인 ‘대표 회담 생중계’를 요구하자 민주당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협치하는 야당·불통의 여권’ 프레임을 위해 민주당이 야심차게 제안했던 회담이 자칫 한 대표 체급만 불려 주는 역효과만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게 민주당의 우려였다. 
 
정치권에 의하면 민주당 내 분위기는 지금 말 그대로 ‘불난 집’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여권의 아픈 이인 채상병사건 등을 의제로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 대표는 야당의 아픈 이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여부로 칼을 갈고 있다고 한다. ‘부엌 논쟁’이 25일 서울 한복판에서 재현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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