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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실어 보내려면 초고압직류송전망(HVDC)이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경기 하남시가 이 송전망의 최종 관문 격인 동서울변전소 증설 사업에 ‘불허’ 결정을 내려 수도권 전력 수요 대응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한국전력은 행정소송 등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하남시의 결정은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지자체의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번 사태의 추이가 주목된다.
정부와 한전은 지난해부터 4조 원을 투입해 총 길이 280km의 송전선로 건설을 추진해 왔다. 날로 증가하는 수도권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정부가 야심차게 조성하는 용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을 위한 사업이다. 올해는 특히 한 달 이상 이어지는 폭염으로 전력 수급에 비상이 걸렸기 때문에 사업의 필요성에 무게가 더해졌다.
그런데 하남시가 돌연 반대하고 나섰다. 변전소 인근 주민들이 증설에 반대하자 인허가권을 쥔 하남시가 전자파 문제와 주민 반대를 이유로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이다. 동해안~수도권 송전망 사업은 한전이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해 온 국책사업이다. 강원도는 수도권 전력난 해소를 위한 국가적 사업을 위해 발전소를 짓고 송전탑까지 설치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한전과 업무협약(MOU)를 맺은 하남시가 돌연 MOU 해지와 함께 사업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수도권 전력 공급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은 물론이고, 총 600조 원이 투자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공급에도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한국 반도체 경쟁력의 미래가 걸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과정에서 ‘전력 확보’가 최대 난제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국가 미래 비전을 흐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행정소송을 고려하고 있는 한전 측은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공사 지연에 따른 손실이 연간 3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손실이 결국 전기요금 인상으로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하남시는 이번 결정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지역 내 혐오시설을 기피하는 주민들의 ‘님비 현상’에 끌려다니는 모양새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실제로 전력연구원 측정 결과 동서울변전소 인근의 전자파 수준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준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남시는 주민 반대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으로 주민의 막연한 불안을 불식시키는 일에 치중하는 것이 옳은 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사업은 변전소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현행법상 주민 동의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닌 만큼 지자체가 주민 반대를 명분으로 나서서 사업의 발목을 잡을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주민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한 것이라면 속히 결정을 철회해 국가적 사업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남시의 결정이 근거 없는 주장에서 비롯됐다는 증거는 또 있다. 한전이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증설 계획 및 입지를 확정하는 등 전원개발촉진법을 어겼다는 주장이다. 이에 한전 측은 주민설명회를 7차례나 개최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제는 한전이 추진하는 사업에 지자체가 반대하고 나서면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허가와 보상 등에서 특례를 강화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입법이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했고, 22대에서도 법안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이번과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국회가 입법을 서두르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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