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에 카카오의 쇄신이 지지부진하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쇄신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정신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하기도 전이기 때문에 꽤 성급했다고 생각한다. 그때 기사를 쓰면서도 이러다가 카카오가 갑자기 개혁안을 내놓으면 성질 급한 기자의 헛소리가 되지 않을지 고민했다. 그런데 요즘 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기업이 무언가를 한다고 했는데 늦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려면 걸리는 시간은 사안에 따라 다르다. 그날 바로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한 달 안에는 끝내야 하는 일도 있고, 업계 특성이나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하면 몇 년이 걸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가 첫 회의를 열고 공식 활동을 시작한 게 지난해 12월18일이니까 8개월 반쯤이 돼 간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가 취임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다섯 달이 조금 넘게 지났다.
카카오 정도 규모의 기업이 변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8개월 또는 5개월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에는 충분한 시간으로 보인다. 그 시간 동안 카카오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구속되는 등 법적 리스크만 키웠을 뿐이다.
당장 카카오가 무엇을 쇄신했는지 하나 꼽아 보라고 하면 준신위를 출범시킨 것 빼고는 명확한 결과물이 생각나지 않는다. 8월 초에 쇄신 태스크포스(TF)를 해체하고 인사&조직문화 TF를 새로 출범시켰는데 쇄신 TF가 어떤 역할을 다해서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한편 카카오 노조가 9월4일 단체협약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까지 했으니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업 이미지 하락과 법적 리스크에 더해 내부에서도 갈등이 커지고 있다.
노조는 단체선언 결렬 선언문에서 △회전문 인사 △배임·횡령 △인사 검증 실패 △무분별한 스톡옵션 △일방적인 제도 변경 △부실한 조직관리 △친목에 의존한 경영진의 소통방식 등이 카카오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카카오 노조가 경영진의 책임감 있는 태도와 소통을 요구한 지는 꽤 됐다. 근무제 변경에 따른 갈등으로 카카오 노조원이 급증하고 이에 노조가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가 2023년 1월이다. 그때도 노조는 경영진의 소통 부재와 리더십과 책임감의 부재를 지적했다.
카카오가 쇄신을 선언한 것은 아직 1년도 안 됐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내부에서 최소 1년 8개월 동안 일관된 불만이 나왔는데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더 과거로 가면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문어발식 확장 논란으로 국정감사에 참석해 사과한 것이 2021년 10월이다. 그 뒤로 카카오 계열사가 줄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렸다가 다시 늘어나고 새로운 갑질 논란이 발생하고 상생안을 내놓는 일이 반복됐다. 이쯤 되면 카카오의 해결 의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카카오가 쇄신을 선언하면서 내세운 가치 중 하나는 신뢰다. 신뢰는 외부 사람들의 신뢰가 될 수도 있고 내부 구성원들의 신뢰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간에 카카오는 이미 신뢰를 많이 잃었다.
한번 신뢰를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만큼 카카오는 쇄신을 선언하고 나서 신속하게 결과물을 내놓았어야 한다. 우리가 바뀌려고 하고 있으니 더 기다려 달라는 말은 이미 카카오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효과가 별로 없다. 빠르고 눈에 보이게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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