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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에 의존해 통치하는 세력은 안전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용병은 분열되고 야망만 있으며 규율 따위는 없다. 이들은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료에게 충성스럽지도 않다.”
통일된 이탈리아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15·16세기 사상가·정치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마키아벨리는 전장·외교가 등을 누비는 과정에서 오로지 제 욕망에만 충실하고 분열·갈등만을 야기하는 용병의 폐해를 똑똑히 목격했다.
1498년 5월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 실무 담당자인 제2서기국 서기장이 된 마키아벨리는 이듬해 피사 탈환을 위해 용병대장 야코포 등과 접촉했다. 야코포는 “자금·병력을 추가 지원하지 않으면 작전에서 빠지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마키아벨리는 간·쓸개 다 빼 달라는 야코포를 달콤한 언변으로 겨우 달랬다. 그러나 그때부터 용병에게 세력을 맡기면 안 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마키아벨리의 혜안은 그가 사망한 해(1527년)에 발생한 한 사건으로 입증됐다. 바로 사코 디 로마(로마 대약탈)다.
당시 교황 클레멘스 7세는 프랑스와 연합해 이탈리아 북부를 장악해나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군대를 투입해 연합군을 막고자 했다. 제국의 장군 게오르그 폰 프룬츠베르크 등은 용병이 상당수인 원정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카를 5세의 목적은 무력시위였다. 어디까지나 교황청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룬츠베르크 휘하에 있던 독일 용병단 란츠크네히트의 목표는 달랐다. 카를 5세와 종교도 사상도 달랐던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칼을 갈았다.
지휘부가 잇달아 사망하고 원정군의 주도권을 쥔 란츠크네히트는 그 길로 로마로 밀고 들어갔다. 이들의 양손 대검 아래 로마는 유린당했다. 성당은 남김없이 약탈당했고 남자는 군인이든 사제든 모조리 살해됐다. 수녀를 포함한 여성들이 겪었을 고초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로마는 며칠 동안이나 불타올랐으며 신성로마제국은 오늘날까지도 ‘로마를 초토화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제 욕망에만 충실한 용병단의 폐해는 비단 란츠크네히트의 경우뿐만이 아니었다. 마키아벨리의 기록에 의하면 용병들은 정작 외부의 강자 앞에선 한없이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이러한 사례도 있었다. 어느 날 서로 다른 세력에 소속됐으면서 전투력이 비등한 두 용병단이 맞붙게 됐다. 양측 용병들은 오전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싸우는 척만 하다가 점심시간께 몇 시간을 쉰 뒤 야밤에 만나 술파티를 벌이고 “내일도 대충 싸우자”며 야합했다.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충성심이 높은 시민군(상비군)의 필요성을 강조 또 강조했다. 비록 마키아벨리 생전에는 시민군이 큰 효용성을 보여 주지 못했으나 21세기 오늘날 세계 각국은 시민군 육성을 당연시하고 있다.
‘한동훈 체제’가 구설에 오르고 있다. 한 대표는 당원의 압도적 선택으로 7.23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됐으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특히 대야(對野) 투쟁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면서 ‘대통령과의 차별화’ ‘자기 정치’에만 몰두하고 이를 위한 집안싸움을 일으켜 여권 지지율 동반 하락을 자초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영입한 김경율 전 비대위원은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 물의를 일으켰다. 앙투아네트는 구중궁궐에 앉아 “백성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 먹으라고 해라”고 했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 대표도 김 여사 논란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란 취지로 주장하며 김 전 위원에게 일부 보조를 맞췄다.
22대 총선 직전인 올해 4월1일부터는 당·정의 의대 증원 방침이 무색하게 ‘유연화’를 요구하며 재차 대통령실과 각을 세웠다. 총선 참패로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났다가 전대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한 대표는 최근에는 윤 대통령과의 독대를 두 차례 요구하며 분란을 야기했다. 이 사실이 일부 언론에 유포되자 한 대표 측이 ‘소통하려는 당대표·불통의 대통령’ 프레임 조성을 위해 일부러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의힘이 단합하지 못하고 각 구성원의 욕망에만 충실하다는 오명을 쓰는 사이 당·정 지지율은 동반 하락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10~12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정부 출범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긍정평가는 직전 조사 대비 3.0%p 낮은 20.0%였다. 한국갤럽은 “70대 이상 및 보수층에서도 부정률이 50% 내외”라고 밝혔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3.0%p 떨어진 28%였다. 더불어민주당은 33%·조국혁신당은 8%였다. 조원씨앤아이가 스트레이트뉴스 의뢰로 지난달 10~12일 전국 성인 2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2%p·지금까지의 모든 여론조사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44.5%를 기록했다. 한 대표는 22.0%에 그쳤다.
공교롭게도 검사 출신인 한 대표는 상당수 보수·우파 인사가 정치탄압 목적으로 검찰에 기소된 후 투옥되거나 극단적 선택을 했던 전 정부 시기를 화양연화(花樣年華·꽃 같은 시절)로 표현한 바 있다.
당대표·대선후보 등을 지낸 홍준표 대구시장은 “그 친구(한 대표)가 화양연화를 구가할 때 우리는 지옥에서 고통받았다. 독대도 그렇게 미리 떠벌리고 하는 게 아니다”고 꾸짖었다.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5선의 나경원 의원은 “매일 독대 얘기만 하는데 언제 당 지지율이 오르고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겠나”며 “당과 대통령이 충돌하는 모습은 (국민의힘 재집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직격했다. ‘용병’ 출신인 한 대표가 ‘대권 놀음’을 위해 여권 내 갈등을 조장하며 당·정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는 취지의 비판이었다.
대통령과 대립하는 여당의 정권 연장은 대단히 어렵다는 게 정치권의 오랜 중론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전신)은 이명박 후보를 앞세운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게 청와대를 내줬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문재인 후보를 내세운 민주당에게 정권을 뺏겼다. 국민의힘이 ‘용병 정치’ 앞에 몰락할 경우 당은 거야(巨野)의 공세 앞에 폐당(廢黨) 위기까지 맞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혜안처럼 이제는 용병에 의한 통치가 아닌 당원에 의한 통치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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