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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의 영화세상] 한국 영화 역사 ‘105주년’ 맞습니까
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14 06:30:30
 
▲ 조희문 영화평론가·前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10월27일은 ‘영화의 날’이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는 이날을 기념하여 유공 영화인에 대한 표창과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몇 년 동안 제대로 열리지 못했던 ‘영화의 날’ 행사가 열린 것은 주최자인 사단법인 한국영화인총연합회의 분쟁이 어느 정도 수습되어 미흡한 대로나마 대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어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대체로 성공적인 기념식을 마친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영화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가 제 날짜에 열리지 못하고 사흘이나 지난 30일에서야 열렸다는 점은 아쉽다. 기왕 행사를 하기로 했다면 제 날짜에 맞춰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또 몇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1973년부터는 ‘영화의 날’ ‘방송의 날’ ‘신문의 날’ 등을 통합해 ‘문화의 날’로 바꿨는데 다시 ‘영화의 날’을 기념한 것은 옛날로 되돌아간다는 뜻인가. 무엇보다도 행사의 제목을 ‘한국 영화 105주년’이라고 한 부분은 한국 영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로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영화 105주년’은 1919년 10월27일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공연된 날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영화와 연극을 적당히 버무려 만든 연쇄극은 연극 속에 배경이 될 만한 영화 장면을 비추는 방식이지만 장르적으로 분류한다면 연극의 변형된 양식일 뿐 독립된 영화가 아니다. 
 
이날을 ‘영화의 날’로 정한 것은 1963년부터인데, 당시 한국영화인협회가 연쇄극에 부분적으로나마 영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는 이유로 주무부처인 공보부에 이를 한국 영화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공보부에서도 영화인들의 뜻이 그렇다면 주무부처에서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누구도 ‘영화의 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9년, 영화사에 조예도 없는 영화계 인사들을 모아 ‘한국 영화 100년’ 행사를 조작했다. ‘의리적 구토’를 한국 영화의 시작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영화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라는 ‘자주론’의 시각이 들어 있는 것이지만 연쇄극을 영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크게 남는다.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영화를 발명한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는 영화를 외래 문화로 받아들였다. 이 땅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것은 1901년 엘리어스 버튼 홈스라는 미국인이 한국(당시는 대한제국)을 여행하면서 황실에 영화도 소개하고 한국의 풍물을 촬영하기도 했다. 이때 촬영한 영상은 지금도 남아있어 감상이 가능하다. 이를 계기로 서울 시내에 극장·영화사·관객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영화가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영화가 제작된 시기를 기점으로 영화의 시작을 삼는다면 이 과정을 없애 버리는 셈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쇄극 ‘의리적 구토’를 영화의 형식으로 볼 수 있는가이다. 여러 편의 연쇄극 중 ‘의리적 구토’가 가장 먼저 공연되기는 했지만 이는 연극의 한 형식이지 독립된 영화 형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189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기차의 도착’ ‘뤼미에르공장에서 퇴근하는 근로자들’ 같은 영상을 상영한 날을 ‘영화 탄생의 날’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독립적으로 완결된 영상을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볼 수 있다는 공개 상영 등의 기준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이 ‘움직이는 영상’을 발명한 것은 뤼미에르 형제보다 앞서지만 몇몇 관객에게만 공개되었을 뿐 규칙적인 시간표에 따라 입장료를 낸 관객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세계 영화의 시작으로 공인받지 못한다. 
 
1963년 당시 한국영화인협회가 ‘의리적 구토’를 한국 영화의 시작이라고 본 것이나 1999년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여러 사람을 동원해 ‘한국 영화 100주년’을 부각시킨 것은 연쇄극의 형식적 완결성과 영화의 독립성을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술적 연구에서는 원로의 말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맹목성도 경계해야 하지만 여러 사람이 그렇다고 우기는 다수결의 결정 또한 정당한 방식이 아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하고 영화로 인정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리적인 주장으로 정립되는 것이다.
 
한국 영화를 비롯한 K콘텐츠는 세계로 향하고 있지만 정작 그 뿌리가 어디서부터인지에 대한 연구는 미흡한 상태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나 영화진흥위원회는 연쇄극이 한국 영화의 시작이라는 주장을 아직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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