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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트라이앵글이란 메콩강에 잇대어 태국 치앙센·미얀마 타킬렉·라오스의 돈사오 섬을 하나로 묶는 삼각형의 지역을 말한다.
삼각주의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농사(주로 마약이지만)가 잘되고 물자가 풍부해 골든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특히 한 지점에서 3국의 국경을 넘나들 수 있어 여행자에겐 꿈의 장소로 꼽힌다.
한반도에도 골든트라이앵글이 있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지나는 삼도봉(三道峯·1176m)이 그곳이다. 한 지점에서 3개 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고 해서 이름도 삼도봉이다. 삼도봉에 이르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경북 김천 부항면 해인리를 통하는 것이다. 이곳으로 도로가 났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골든트라이앵글’ 삼도봉
메콩강 유역의 골든트라이앵글이 태국·미얀마·라오스 3국의 접점이라면 한국의 삼도봉은 충북·전북·경북을 한 점으로 묶는 쐐기돌이다.
이에 삼도봉은 고래로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1989년부터는 매년 10월10일을 기해 전라북도 무주군·충청북도 영동군·경상북도 김천시가 삼도봉 정상에 모여 삼도봉 화합제를 열고 있다.
이 행사는 삼도의 지역감정을 없애고 문화를 교류하자는 의미에서 삼도가 공통으로 산신제를 지낸 뒤 흥겨운 풍물놀이 시간을 갖는다.
삼도봉주차장까지는 차로 나머지는 도보로
삼도봉은 어느 곳에서 진입하든 상관없지만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 해인마을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 해발 830m 지점의 삼도봉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도봉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1.2km 남짓 소요된다. 삼도봉은 높이도 있고 경사도 급한 편이지만 계단과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등산 초보자라고 해도 접근이 어렵지 않다.
해인리라는 마을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경남 합천에 있는 해인사와 이름이 같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자로도 해인리(海印里)와 해인사(海印寺)가 같다. ‘바다 도장’이라는 뜻의 이 독특한 명칭이 겹치는 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국에서 해인(海印)이라는 이름의 마을은 김천밖에 없다.
한자가 같은 해인리와 해인사
‘경상북도마을지’의 ‘김천시지’에 따르면 해인리라는 지명은 신라 시대 마을 뒤편 삼도봉 골짜기에 있던 해인사(海印寺) 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곳에도 해인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경남 합천 해인사(802년 창건)에 내려오는 전설을 살펴보자. 옛날옛적에 한 노인이 떠돌이 강아지를 데려다가 정성껏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용왕의 딸로 큰 잘못을 저질러 강아지가 되는 벌을 받았다.
노인의 보호 속에서 잘 먹고 잘 지내던 강아지는 마침내 속죄의 기간을 마치고 용왕 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용왕의 딸은 자신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용왕으로부터 도장 하나를 받아 노인에게 전해 주었다고 한다.
소원을 종이에 적은 뒤 도장을 찍으면 소원이 실현되는 마법의 도장이었다. 마법의 도장을 이용해 큰돈을 모은 노인은 그 돈으로 절을 세웠다. 그 절이 바로 ‘바다 도장’이라는 이름의 해인사다.
합천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국보 제52호)이 보관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고려 팔만대장경은 그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다가 2021년 6월부터 예약자에 한정해 주말에만 공개하고 있다.
770년 만에 팔만대장경을 공개하게 된 이유는 ‘세계기록유산은 인류 모두의 것이며 완전히 보호되고 보존되어야 하고 공개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원칙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흔적으로 남은 김천 해인사 절터
다시 김천 해인리로 돌아오자. 일설에 의하면 이곳에 있던 해인사가 합천으로 옮겨 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해인사지 절터로 향하는 계단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계단 안쪽이 ‘해인사지 옛 숲길’이다.
숲길에는 높이 1m의 2단 석축 외에 기둥터·구들편·자기편·멧돌 등 사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흔적뿐이지만 어쩌면 합천 해인사의 뿌리일 수도 있는 곳이다.
김천 해인사지 일대는 원시 자연을 떠올리게 할 만큼 숲이 우거져 있다. 삼도봉주차장이 생기면서 다들 차를 갖고 오다 보니 임도 주변은 상대적으로 사람의 손을 덜 타게 되었다. 이곳이 원시 자연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문명의 이기 덕분이었다.
삼도봉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
2km가량 이어진 임도가 끝난 곳에 삼도봉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안쪽에는 물부리터샘터가 있어 주민들이 빈통을 들고 와 약수를 받아 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물부리샘터는 김천의 젖줄 부항천의 발원지다.
삼도봉주차장에서 정상에 이르는 1.2km 구간은 우리나라 최대의 조릿대 자생지다. 하얀 잔설과 푸른 조릿대의 조화가 꽤 이국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어머니는 이 조릿대로 만든 조리를 이용해 쌀과 돌을 분리한 후 밥을 지었다.
덱을 한참 올라가다 보면 삼도봉 전망대가 나타난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돌개바람이 머리칼을 이러저리 흐트러뜨리지만 탁 트인 전망이 그림처럼 아름다워 잠시 쉬었다 갈 만하다.
삼도봉은 민주지산(1242m)의 주능선과 백두대간이 만나는 곳이다. 허공 속으로 바닥을 들인 이곳 전망대에 서면 백두대간의 깊은 속살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
세 마리의 용이 하나의 우주를 떠받치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산삼약수터’가 나온다. 과거 이 일대는 장뇌삼 농사로 유명했다.
장뇌삼 열매를 먹은 새들이 이곳저곳에 씨앗을 퍼 나르는 바람에 삼도봉 등산에 나섰다가 운 좋게 산삼을 발견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경치에만 빠져 있을 게 아니라 좌우를 잘 살피면서 길을 가도록 하자. 혹시 산삼을 발견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이면 삼도봉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360도 파노라마 조망이 마치 세상의 꼭대기에라도 오른 듯 비경을 연출한다. 끝없이 펼쳐지면서 중첩되고 지워지는 산 그리메가 딱 한 폭의 동양화다.
삼도봉 정상에는 대화합 기념탑이 있다. 세 마리의 용이 둥근 우주를 머리에 인 듯한 형상의 이 탑은 1990년 10월에 조성되었다. 세 마리의 용은 각각 충북·경북·전북을 뜻한다. 세 도가 지역감정을 배제하고 화합 단결하자는 의미에서 세운 탑이다.
이곳이 바로 매해 10월 삼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만남의 날’ 축제 한마당이 펼쳐지는 장소다.
삼도봉은 세 하천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삼도봉 남서쪽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의 미대천을, 북쪽 물한계곡은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의 초강천을 이룬다. 한편 동쪽 기슭으로 흘러내린 물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의 부항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부항천을 끼고 도는 해인리 마을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부항천변은 자전거 하이킹의 성지로 주말이면 수많은 라이더가 이곳을 찾는다.
부항초등학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4개 마을을 수몰하여 조성한 부항호가, 우회전하면 전북 무주읍 무풍면의 자랑 ‘신기한 도로’가 나타난다. 어느 곳으로 가든 스토리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행은 그렇게 주욱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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