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기의 한반도 테라포밍] 고위 공직자들은 트럼프 저술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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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직사회 병폐인 ‘관료주의’ 척결해야
복잡한 국제 현안에 대한 정교한 대책 필요
관료 아닌 진짜 전문가 영입 절실한 시대

박진기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29 00:02:58

우리 외교부는 24일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하여 현지에서 개최된 ‘한일 공동 기념행사’에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노 정무관이 참의원 재직 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이 있었다며 행사에 불참하고 별도로 소규모의 추모식을 열었다.

이와 관련 일본 정부는 아키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사실이 아니고 참석자 명단의 오류라며 우리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다. 사실상 일본으로선 유네스코 등재에 성공했고 일본 내 극우 세력의 동요 방지 등 얻을 것은 모두 얻었기에 우리 정부 인사의 불참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면 우리 외교안보 라인은 지나치게 ‘순진’한 것인지 ‘경솔’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관료주의에서 못 벗어난 것인지, 외교 관계나 국민과의 관계에 있어 정교함이 매우 떨어진다. 비록 북·중·러에 대응한 안보 차원의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일본과의 일에 있어서는 세심하고 신중한 접근과 국민 인식 전환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일의 경우 안일하게 관리하다가 상황이 안 좋아지니 급하게 마무리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어찌 이리 주먹구구식인가. 이는 정부에 ‘카운터 파트너’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도 없다는 방증이다.

비단 일본 건만의 문제일까. 우크라이나 전쟁 건도 그렇다. 우리나라를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의 의도에 너무나 쉽게 말려들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가 트럼프의 재등극 이후 국제 역학 관계에 극도로 민감한 시기다. 침략당한 국가를 도와주는 ‘선의의 지원’을 넘어서는 것은 자제해야 할 시기임에도 필요 이상으로 능력치 밖의 언행을 하고 있다. 북한도 아닌 핵무기 보유 1위의 러시아를 상대하는 것인데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한 ‘참관단’을 보내야 한다는데 현실을 직시해 보자. 현재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전선의 길이는 우리 휴전선의 10배에 달한다. 파병된 북한군 역시 러시아군에 배속되어 전선 여러 곳에 분산 배치되고 있다. 월드컵 경기를 직관하러 것도 아니고 참관단은 도대체 어디에 가서 무엇을 참관하겠다는 것일까. 차라리 서방 정보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더 큰 문제는 전쟁의 확전을 막아야 할 시점에 임기가 두 달밖에 안 남은 조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 본토에 대한 공격을 허용했고 영국 등 일부 국가도 이에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점이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은 핵무기 사용을 언급하는 등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다. 이미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것이 그 증거다. 비록 협박 수준에서 끝날 수도 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종전의 주도권’을 두고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유럽연합(EU) 간 헤게모니 싸움에 우리 대한민국이 개입할 명분도 역량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측이 ‘협상과 거래’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한반도 통일의 주도권’조차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에서 유일한 우방인 일본과는 정교하지 못한 행동으로 양국 정부 간, 정부와 국민 간 갈등만 유발시켜 놓았고 바이든 행정부만 바라보다가 이제 와서야 트럼프 측 인사들과의 교감을 쌓으려 하고 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이번 사도광산 건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혼선을 빚고 있는 근본 이유는 2025년부터 급격히 변할 국제 역학관계에서 이미 트럼프 재당선을 예측하고 지원하며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준비해 온 일본 정부와 달리 공화당·민주당 구분도 없이 책으로만 배운 추상적 개념의 미국이라는 국가만을 생각하고 있던 우리 정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 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금은 외교 안보에 있어 더욱 치밀한 계획과 실행력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측 인사들과 긴밀한 접촉이 가능한 인물은 정작 외교부가 아닌 ‘엠킴(김민아)’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보수 청년 한미 친선단체인 ‘빌드업코리아’ 설립자이기도 하며 이미 8월에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방한까지 기획한 바 있다. 우리 공무원들 중 그것이 가능한 인물이 있을까.

500년 유교 문화에서 못 벗어난 ‘한국인 특유의 관료주의’는 실용성에 근간을 둔 미국식·일본식 인간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40대 초반 언론인을 국방부 장관에, 40대 초반 여성을 국가안보국 국장에 선임한 트럼프 행정부에 신속한 적응이나 가능할까. 불과 두 달 후면 벌어질 일들이다.

더욱이 트럼프는 언론에서 조작된 것처럼 충동적이며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골프 연습하고 만난다고 해결될 문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외교부장관·안보실장이라는 명함을 내민다고 진심으로 대할 것이라는 생각은 빨리 버리기 바란다. 고위 공직자들은 남은 몇 개월 동안 트럼프가 저술한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 :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을 숙독하고 토론회를 가지기 바란다. 그것이 향후 우리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해답을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