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路 동서고금 <33>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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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路 동서고금 <33> 종교

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29 06:30:09

으뜸 종(宗) 가르칠 교(敎)로 된 현대어 ‘종교’는 19세기 후반 일본이 서구 국가들과 수교할 때 릴리전(Religion)의 번역어로 등장했다. 그 전엔 불교 용어, 즉 산스크리트어 능가(楞伽)경에 나오는 ‘시단타 데사나’(근본된 가르침)의 의역이었다. 또 중국 남북조 시대 말기~수·당대 학자들이 불경 내용을 5개(名體宗用敎)로 분류·요약할 때의 줄임말, 또는 특정 경전을 칭송한 표현으로도 쓰였다.

여러 서구어 Religion의 어원인 라틴어 Religio 해석엔 ‘다시 읽다=알다’(re-legere), ‘다시 잇다’(re-ligare), ‘재선택하다’(re-eligere) 등 몇 가지 설이 있다. 일본에서 Religion의 번역어가 필요해진 것은 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수교) 체결 시 일본 내 외국인의 ‘Religion 자유 보장’ 조문 때문이었다. 처음엔 주된 원칙·취지를 뜻하는 宗法(종법)·宗旨(종지) 등이 쓰이다 1869년 독일북부동맹과의 수교 때부터 ‘宗敎’가 채택돼 자리 잡았다.

신앙 문제로 생사를 오갔던 서구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는 절실한 주제였다. 종교 때문에 긴 전쟁을 겪었고 그것이 신대륙 이민과 미합중국 탄생으로 이어진 셈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어야 ‘양심의 자유’ ‘무종교의 자유’도 보장된다. 이것이 확립되는 우여곡절이야말로 민주주의·법치의 성장 과정이었다. 자유·민주국가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 항목이 중요시된 이유다. 정교분리라는 개념 역시 여기서 도출됐다. 이는 종교인의 정치 참여 금지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개인 신앙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번역어 ‘宗敎’가 한반도에서 쓰인 최초의 용례는 한성순보 1883년 11월10일자였다. 하지만 그달 26일 영국과의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래 독일 등 6개국과 차례로 수교할 때, 1902년 대한제국 마지막 수교국 덴마크와의 조약에서까지 Religion은 ‘本敎(본교·근본된 가르침)’로 옮겨진다. 이후 우리말에서 종교는 절대자와의 관계 구축을 의미하게 됐으며 차차 초자연적인 존재나 힘에 대한 믿음을 통해 고뇌를 해결하고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문화 체계로 받아들여진다.

한때 기독교 문명권 사람들에게 유일신 없는 불교·유교·도교 등이 유사(類似)종교로 보였고 그런 의미라면 종교로 포함되는 게 오히려 불쾌하다는 불교 측 시각도 있다. 작년 기준 성인 한국인의 63%가 ‘무종교’를 자처한다. 삶의 규범 체계 전반을 종교로 여기는 지역에선 황당해할 현상이다. 삼프로TV 인도 관련 콘텐츠로 큰 호응을 얻은 강성용 서울대 교수 조언에 따르면 서·남아시아 사람들이 초면에 종교를 물어 올 경우 대부분 말문을 트기 위한 스몰 토크이니 ‘무종교’ 대신 ‘유교’로 답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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