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문의 영화세상] 영화보다 짧았던 ‘계엄령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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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05 00:02:55

상영시간 2시간 반 영화는 비교적 긴 편에 든다. 2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짧으면 경량급, 길면 미들급으로 나눌 수 있고, 3시간30분 안팎의 영화들은 대작 스펙터클인 경우가 많다. 고전 영화 중에서 손꼽히는 ‘인톨러런스’(1916·210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233분) ‘벤허’(1959·212분) 같은 영화들은 초장편들이다. 실험영화 중에는 특정 상황을 그대로 촬영한 37시간짜리도 있지만, 극영화 중에서는 옛 소련 시절에 나온 ‘고요한 돈강’(1957)이 5시간30분을 기록했다.

하지만 현실의 2시간30분은 찰나의 순간이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 결의안 가결까지 걸린 시간은 영화 한 편보다 짧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를 납득하기도 전에 상황은 끝나 버렸다. 3일 밤 10시25분 쯤에 대통령은 긴급하게 그리고 비장하게 계엄령을 선포했지만 새벽 1시 반경에 국회의 계엄령 해제결의안이 통과되면서 155분간 국민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계엄령 사건은 ‘한밤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방장관의 제안을 받아들여 계엄령을 선포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법적인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최근의 상황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할 만큼 엄중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심각하게 보는 측에서는 불가피했다고 할 것이고, 평소에도 윤석열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용을 쓰던 종북·반(反)대한민국 세력은 아무 문제도 없는데 대통령이 반 헌법적 행동을 저질렀다고 나팔을 불어 대는 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명분이 생겼고, 이를 집중적으로 활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야당이 바라고 바라던 일이 눈앞으로 다가온 셈이다. 이재명이나 조국은 드디어 기회가 왔다며 환호했을 것이다.

계엄령의 명분은 논란이 있다고 치더라도, 선포 이후 행동과 조치에서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 싶었다. 선포가 났는데도 중무장 병력이 국회를 봉쇄하지 않은 채 소수의 경찰 병력이 국회의 출입문을 막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 틈을 비집고 언론인이나 국회의원 보좌관 등은 출입이 가능했다. 드디어는 재적 국회의원의 과반이 넘는 인원도 안으로 들어갔다. 계엄령 발동을 무력화할 수 있는 의원이 국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상황은 일방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실행하려 했다면 주도면밀한 작전과 전광석화 같은 실행이 있어야 했지만, 선언은 비장한데 비해 실행은 어림없이 허술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선언부터 하고 보자는 심산이었나.

해프닝으로 끝난 계엄령의 여파는 폭풍처럼 몰아칠 것이다. 우선은 야당이 집요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김건희 특검’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야당보다 먼저 ‘계엄령을 반대한다’고 외쳤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과 뜻과 길이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고, 국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야당은 예전처럼 다수 의석을 앞세워 표결을 밀어붙이겠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재의결에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당이 대통령을 지켜 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셈이다. 무엇보다도 쇼크 요법을 썼다가 실패한 대통령의 입지가 극도로 불안해졌다. 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조기 퇴진을 할지 오리무중이 되었다. 대통령직을 유지하더라도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내도 지켜 주지 못하고 대통령직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같은 종북주의자를 단절하고 정권을 되찾아 왔다는 사실과 이재명처럼 범죄와 철면피적 행위로 범벅이 된 경쟁자에게 이겼다는 공로만으로도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도 계엄령 사건은 땅을 치고 통탄할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발동했던 비상계엄령을 45년 만에 다시 꺼냈을 때는 그만한 각오와 대책이 있었을 터이다. 하지만 결과는 비오는 여름날 동네 처마 밑에서 주먹구구 셈하는 병아리 장수나 다름없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지금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를 복기하고 있을까. 어떻게 되든 될대로 되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야당에게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하고 감방이 눈앞에 어른거리던 이재명이나 조국 같은 인물들에게는 한숨 돌릴 여유를 선물한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자폭을 한 것인지, 반전의 기회를 만들 것인지는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대한민국은 매일 영화 같은 뉴스가 쏟아지는 역동적인 세상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