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허위와 가식의 또 다른 사례, ‘K대 출신’ 미스코리아
1990년대 당시 필자가 안기부에 근무하던 시절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를 온몸으로 웅변해 보인 또 다른 예로 한 미스코리아에 대한 얘기를 들 수 있겠다. 1990년대 중반 “소위 명문 K대 출신이 최초로 미스코리아에 선발됐다”고 세상이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이제 우리나라도 지성을 겸비한
인물이 미스코리아로 뽑힐 때가 되었다”며 그럴듯한 당선 소감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정작 그녀는 승마 특기생으로 K대에 들어간 것이었다. 아버
지가 부산에서 부동산 갑부였다. 승마 특기생이라고 해서 지성을 갖추지 말란 법은 없지만 ‘글쎄다’ 싶었다. 그녀는 한동안 TV에 자주 나왔다.
우리나라 미스코리아 선발은 예전부터 문제가 아주 많았다. 미스코리아는 유명 미용실에서 ‘만들어 낸다’는 게 정설에 가까웠다. 우리나라의 미스코리아 행사는 2017년까지 매년 모 신문사가 주관했고 지금은 그 신문사의 자회사인 글로벌 E&B가 주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신문사의 전 사주가 한 때 화류계에서 좀 놀던 사람이었다.
‘연예계’는 난장판 그 자체… 일그러진 우리 사회의 축소판
말이 나온 김에 연예계 얘기를 좀 더 해야겠다. 나는 연예계라는 곳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축소판이자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난장판이라고 생각한다. 요즘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가십 거리가 마르지 않는 곳이었다. 쓰레기 같은 스캔들을 스물네 시간‧사시사철‧연중무휴로 생산해 내는 공장이었다.
어느 영화 선전 문구에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란 표현이 있었는데, 대한민국의 연예계가 바로 그 짝이었다. 온갖 상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벌어지는 요지경 속이었다. 물신주의와 한탕주의가 판치는 복마전이었다.
몇 년 전 시중에는 누구는 손만 들면 된다고 해서 ‘택시’라고 불린다느니, 누구는 줄만 서면 된다고 해서 ‘버스’라고 불린다느니 하는 말들이 돈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은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 있던 배우였는데 그 후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신세를 지기도 했다.
구두 한 켤레 시세의 ‘꽃값’, 연예계에선 승용차 한 대 값
내가 대공정책실에 근무할 당시 연예계에서는 “차 바꿀 때 되지 않았니?”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이 말은 연예계의 3대 뚜쟁이 중견 아줌마 연예인이 인기 정상에 있던 여자 연예인에게 “오늘 밤 서비스가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할 때 사용한 암구호(暗口號)였다고 한다.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매춘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비스 산업이다. 이에 대해 도덕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이 바닥의 특수한 현실에 대해서는 몇 마디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몇 마디 사족(蛇足)을 덧붙여 보겠다. “대개 꽃값은 그 시대의 구두 한 켤레 가격과 맞먹는 선에서 정해진다”는 게 통설이다. 그런데 위의 암구호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연예계에서는 구두 한 켤레‧옷 한 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승용차 한 대 값이라고 했다. 요즘은 수억 원이나 하는 승용차도 있으니 얼마나 더 올랐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런 일을 알게 되면 대부분 누구나 한순간 일할 맛이 싹 가시게 된다. 입이 딱 벌어지고 욕부터 나오게 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꽃값 인플레가 심한 곳이 또 있었을까 싶다. 유일하게 21세기 한반도에만 있는 일이다. 아마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고 계속될 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해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 고상한 서비스업이 정치권력과 경제 금력을 이어 주는 은밀한 윤활유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돈 가진 자와 권력 가진 자를 이어 주는 연예인 매춘
실제로 연예인 매춘은 돈을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소개하는 뚜쟁이와 돈을 대는 기업인, 그리고 수요자인 정치권력이 정교한 메커니즘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물론 이 서비스업은 우리의 세계적 수준의 요식업과 숙박업 같은 ‘삐까번쩍한’ 후방 산업이 견실하게 받쳐 주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1995년 초 연예계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작업이 있었다. 표면적인 명분은 연예계에 만연한 부패를 일소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국민의 비판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호도책이었다. 당시 연예계 사정은 검찰이 수사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청와대의 민병○ 비서관이 총대를 멨다. 그리고 안기부 방송과가 측면에서 정보 지원을 했다.
검찰이 막상 연예계 내부를 들춰 보니 악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돈과 섹스와 마약에 미쳐 돌아가는 난장판이었다. 재미있었던 현상은 ‘청순한 이미지를 가진 연예인일수록 뒷말이 더 풍성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는 누군가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것이라는 얘기다.
연예계 이미지 조작의 핵심 메커니즘… ‘촌지’ ‘뇌물’ ‘로비’
물론 그것은 이미지를 조작하기 위한 메커니즘과 커넥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메커니즘의 핵심은 촌지와 뇌물과 로비였다. 우리나라 언론계에선 “유독 연예계와 스포츠계 기자들의 부수입이 가장 짭짤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유도 아마 그런 데 있을 것이다.
당시 주말연속극에 갓 등장한 까만 용모의 눈이 크고 귀여운 여자 연예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TV 화면에 나오기까지 과정을 들어 보니 그야말로 ‘인생 역정’이라 할 만했다. 그녀는 나중에 코미디 프로로 전향해 활동했다.
언제인가는 미모의 모 탤런트 모녀가 모 재벌 3세를 엮으려고 공항에서부터 입체적인 작전을 구사하는 것이 안테나에 잡히기도 했다. 결국 그 재벌 3세와 결혼에 성공한 그녀는 얼마 후 불화설이 나돌더니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요즘 다시 텔레비전에 복귀하여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어머니가 딸을 매춘으로 내모는 비정한 세계
내가 연예계를 들여다보고 놀랐던 점은, 어머니가 직접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연예인일수록 사생활이 더욱 문란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어머니가 자기 딸을 매춘으로 내모는 믿기 어려운 ‘비정한’ 세계였다. 육감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모 연예인이 특히 그렇다는 수군거림이 있었다.
연예계의 3대 뚜쟁이가 누구누구라느니 하는 소문도 대체로 사실로 확인되었다. PD와 연예인들 간의 몸 상납과 PD와 기획사 간의 ‘잃어 주기’ 포커도 사실로 드러났다. 유명 여류 시나리오 작가와 그녀의 대학 동창이자 친구인 모 여자 탤런트가 배역(配役) 장사를 한다는 소문도 거의 사실이었다.
신곡 소개의 대가 곡당 2~300만 원
당시 어느 음악방송 유명 DJ는 기네스북의 방송 연속 출연 기록을 하루하루 갱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느닷없이 잠적해 버렸다. 검찰이 자신에 대한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 DJ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신곡을 소개해 주는 대가로 곡당 2~300만 원가량의 뇌물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한 곡당 그 정도로 받았다면 벌이가 괜찮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그를 체포해서 사법 처리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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