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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80] 금목걸이
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4-08 06:25:00
 
 
권지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기분이 좋은지 휘파람을 불었다. 권지호는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아 참, 까먹을 뻔했네. 포장은 못 했어. 지난 주말에 백화점 갔다가 하나 샀다. 모레가 네 생일이더라. 변변한 목걸이 하나 없는 것 같아서.
 
권지호가 내민 건 푸른색 리본이 달린 사각의 작은 박스였다. 권지호는 열어 보라고 눈짓했다. 하트 모양의 목걸이였다. 희숙이 놀라는 표정을 하자 권지호가 윙크했다. “그거, 금화 한 달 월급하고 맞먹어. 감동하지는 말고. , 먼저 나갈게.” 희숙은 나가려는 권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제 생일은 어떻게 알았어요?” “어떻게 알긴, 이력서에 있잖아. 설마 생일은 가짜 아니지?” 희숙은 권지호가 주고 간 목걸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희숙은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화장실로 가 거울에 비추어 봤다. 희숙의 흰 목에서 금색의 목걸이가 반짝였다. 희숙은 하트 모양의 펜던트를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이성으로부터 처음 받은 귀금속이었다. 기분이 묘했다. 가짜 생일이지만 기억하고 있다니. 권지호가 정이 넘치는 사람이구나, 혹시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아닐까. 잠깐씩 착각하곤 했다.
 
희숙은 자기 신분이 들통날까 봐 시작된, 그의 말대로 비즈니스이기에 절대 감정을 생산하거나 노출해선 안 된다고 각오를 다졌다. 사랑의 감정이란 흐르는 물과 같았다. 호수처럼 잔잔하지 않았으며 저수지처럼 가둬 둘 수도 없었다. 그를 향한 마음이 조금씩 출렁이는 걸 느꼈다. 권지호는 손에 닿는 존재였다. 구내식당에서 가끔 마주치기도 하고 잔업 작업 땐 야식을 직접 가져다주기도 했다. 슬그머니 책을 건네주거나 더운 날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자며 짬을 허락한 적도 있다.
 
로얄장에서 희숙을 품을 때 권지호는 더욱 친절했다. 비즈니스로 섹스한다지만 그는 약점을 가진 희숙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존중했다. 장난스럽거나 상상을 초월한 창의력을 발휘하긴 해도 희숙이 싫어하는 티를 내면 미안하다며 멈추곤 했다. 섹스는 상호 간 합의에 의한 유희라고 했다. 합의되지 않은 섹스는 폭력이라면서. 그의 손길이 부드럽고 따뜻해 거부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다. 그는 천천히 희숙이 채운 비즈니스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사랑하는 변태섭을 만나는 동안 희숙은 단 한 번도 그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했다. 생일이 한참 지난 후에 딱 한 번, 그는 생일인 줄 몰랐어, 밥이나 먹자, 했을 뿐이었다. 그나마도 얼마나 행복했던지. 대학 와서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양화점에서 구두도 맞추고 남동생 수학 공부도 도와줬던 그였다. 바쁘고 정신없어서 그런 거지 희숙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을 거라 믿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도모하는 변태섭에게 투정 부리는 애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권지호한테 선물을 받아 보니, 누군가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은 의미를 기념하는 행위로 보상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희숙은 하나의 마음에 두 개의 사랑을 담을 수 없다고 도리질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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