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LNG 살 것… 러시아산 완전 차단” EU, 트럼프에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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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러 화석원료 금지 법제화”… 중도 해지 방안 마련 중
우크라전 발발 후 半이하로 줄었으나 여전히 5분의1 의존

임명신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4-23 17:17:39

▲ 16일(연합뉴스) 안토니우 코스타(오른쪽) 유럽연합(EU) 상임의장이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안도라의 샤비에르 에스포트 자모라 수상과 회의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코스타 의장이 최근 러시아 화석연료 사용 금지 법제화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 수입 확대의 길임을 강조해 주목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화해의 메시지다. EPA·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러시아 화석연료 사용 금지’를 향한 법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EU 집행위원회 고위 당국자 말을 빌어 EU가 ‘러시아 에너지 탈피 로드맵’의 일환으로 금지법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엔 역내 기업들이 러시아와 체결한 가스공급 계약을 위약금 없이 조기 해지할 수 있도록 할 법적 옵션도 들어간다.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후 절박한 노력 속에 40% 넘던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19%까지 줄었다지만 EU 전체 가스 공급량 약 5분의1이 여전히 러시아산이다.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한 EU 정책 로드맵은 내달 6일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러시아산 화석연료 구매의 단계적 중단을 겨냥한 로드맵 발표 임박을 알리며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신호” “우리 정치적 메시지가 기업들로 하여금 미국과 LNG 계약을 체결할 유인”이라고 짚었다. “미국·노르웨이·카타르 등으로 공급 다변화를 추구할 계획”이라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진 메시지로 읽힌다. 트럼프발 관세를 피하고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적극 고려하는 것이다.

내달 초 로드맵이 발표되면 집행위가 EU 27개 회원국 및 업계와 세부 협의를 거친다. 신규계약금지법 등을 시행하려면 EU 회원국 과반의 찬성 등 별도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번 조치는 대러관계 청산뿐 아니라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둘러싼 전략적 움직임과도 맞물린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럽연합에 대해 미국산 에너지 제품 구매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EU는 무역 마찰을 완화하고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미국과의 거래 가능성을 적극 검토하게 됐다. 현재 미국은 EU의 세 번째 가스 공급국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이번 로드맵은 기업들에 미국 LNG 수입 계약을 확대할 정치적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트럼프는 1980년대 소련과 유럽 사이의 가스관 건설 당시부터 제3자로서 반대했던 인물이다.

EU의 대러 제재는 촉구일 뿐 어긴다 해도 회원국 직접 제재가 여러웠으나 쿼터나 관세 등 무역 조치를 통한 간접 제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EU 집행위는 로드맵 발표 후 회원국 및 관련 기업들과 논의를 거쳐 입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며 법안이 추진되면 유럽의회와 회원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논의 중인 신규 대(對)러 제재안에 LNG수입 금지를 넣으려 했으나 러시아 의존도가 높고 공급 불안정이 불안한 일부 회원국 반대로 무산됐다. EU는 이 문제를 만장일치 아닌, ‘자격을 갖춘 다수결’ 채택이 가능한 무역 조치를 중심으로 접근할 가능성도 열어두려 한다.

최근 대서양 관계의 파열음이 눈길을 끌어 왔다. 서유럽과 미국은 혈연적·문화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며 무엇보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인권·법치의 가치공동체로 서로를 인식해 왔으나 많은 게 변했다. 미국 인구 구성이 다양해졌고 개신교적 구심점도 약화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전쟁 발발로 미국과 유럽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기 시작했다. 트럼프정부 2기의 출범은 그것의 결과적 상황이기도 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분담금 증약 요구는 트럼프1기때부터의 압박이었다.

결국 지난 수십년 유럽의 번영을 뒷받침한 ‘미국에 기댄 안보 무임 승차’와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였음을 EU가 인지하면서 러시아와 결별하더라도 미국을 붙잡으려는 모양새다. 이 외에 EU는 러시아산에 대한 신규 무역제한 조치 등 방안도 들여다보고 있어 EU의 러시아 관계 역시 또 다른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러시아산 에너지가 결국 중국 등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으므로 에너지 지정학이 재편될 전망이다.

작년 기준 EU에 수입된 전체 가스·LNG의 19％가 러시아산이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그토록 강하게 대러 제재를 외쳤지만 해저 가스관을 통한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량이 급감했을 뿐 LNG 수입은 오히려 늘었다. 지난 3년여 동안 EU 주도로 이뤄진 모든 대러 제재가 부메랑처럼 유럽을 괴롭힌 상황도 지적된다. 집행위는 EU 자신보다 러시아에 더 타격을 주고 동시에 EU의 에너지 안보와 가격에 미치는 영향 또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임명신 기자 imms@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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