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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누군가의 보금자리였을 빈집. 지금은 철근이 녹슬고 벽이 무너져 이웃의 생명을 위협한다. 지난주 금요일 서울 수유동 산비탈 위, 밤새 쏟아진 폭우에 주택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토사와 구조물 잔해가 산 아래로 흘러내렸고 주민 18명이 황급히 대피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지만 주민들은 “비 한 번 더 오면 무너진다”며 불안에 떨고 있다.
이 집은 ‘2등급 빈집’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안전조치가 필요한 수준이다. 강북구청은 수차례 보수를 요청했지만 소유자는 응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았다. 왜? 빈집도 사유재산이기 때문이다.
빈집은 이제 위험하다. 게다가 여름 장마철이면 이 위험물은 활성화된다. 붕괴 사고 10건 중 4건 이상이 7~8월에 집중된다는 소방청 통계가 이를 말해 준다. 강우가 구조물의 약한 고리를 자극하면 빈집은 돌연 흉기가 되어 마을을 위협한다. 제주에서도, 서울에서도 해마다 이맘때면 빈집 붕괴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빈집은 말 그대로 시한폭탄인 셈이다.
문제는 수효다. 전국의 빈집은 무려 153만 호, 그중 단독주택이 35만 호에 이른다. 아파트보다 훨씬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건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빈집의 90% 이상이 2000년 이전에 지어졌다는 점이다. 보수 한 번 없이 방치된 집이 다수다. 일부는 건축 연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만큼 낡았다.
이젠 묻지 않을 수 없다. 무너지는 게 정말 빈집뿐인가. 무너진 것은 양심이고, 방관이고, 행정 시스템이다. 정부는 ‘빈집 정비 업무지침’을 만들었고, ‘소규모 주택 정비법’까지 마련했다. 3등급 빈집이면 철거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실제 철거를 시도한 지자체는 5.5%에 불과하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한 비율은 겨우 2.7%다. 법은 있지만 해석은 제각각이고 실행은 늘 복지부동이다.
공무원들이 허송세월하는 동안 주민은 위험한 빈집 앞을 지나다닌다. ‘설마’가 반복되다 ‘사고’가 되고, ‘그럴 줄 알았다’는 탄식으로 끝나 버리는 재난 드라마는 계속된다. 실효성 없는 법, 집행 의지 없는 지자체, 그리고 무관심으로 무장한 소유주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또 사고 소식을 들을 것이다.
해답이 없는 건 아니다. 위험성이 큰 빈집은 지자체가 매입하거나 개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소유권만 내세울 게 아니라 공공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개입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도심 속 흉물과 재난의 씨앗을 놔두고 사유재산 타령만 해선 답이 없다.
장마는 어김없이 오고 기후는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한다. 비는 더 세지고, 땅은 더 약해졌다. 이제 빈집은 단순한 경관의 문제가 아니다. 마을의 평화, 시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붕괴 사고 앞에서 ‘설마’는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외면한 시간만큼 위험은 자라고 있다. 지금 무너지는 것이 빈집인지 우리의 책임감인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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