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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일본 규슈지방 여행을 했다.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텐진에 있는 마이스테이시 호텔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사가현 가라쓰와 다케오를 당일로 오가며 규슈지방 일부를 만끽한 인문미식여행이었다.
인문학 기행으로 포장은 했지만 실제로 내용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 미식여행으로 꽉 채웠다. 12명이 사전 예약 없이 식당을 방문해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운에 맡겼고 때로는 상황이 안 되면 미련 없이 물러나 다른 식당을 찾았다. 일행 모두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무작정 걷다가 찾은 식당에서 더 큰 만족을 얻기도 했다.
이번 여행은 필자가 10여 년 전에 결성한 역사인문 공동체 문화지평의 첫 해외답사탐방 프로그램이다. 문화지평은 2015년 2월7일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창립총회를 가졌다. 실제 활동은 2014년부터지만 창립일은 기준으로 올해가 10주년이다.
문화지평 10주년 기념 해외 탐방답사
그래서 올해는 10주년 기념행사를 여럿 만들어 즐기고 있다. 전북 천리길 중 군산 4개 코스를 완주할 예정이고 12월에는 송년회 겸 10주년 기념식을 열 예정이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모시고 ‘한국인의 기원’을 주제로 기념 특강도 준비한다. 아무튼 뭔가를 기념한다는 일은 기쁘고 한편으로 분주한 일이다.
이번 10주년 기념 답사 여정은 시인이자 인문학자인 조동범 작가가 코스를 짜고 인솔한 일명 ‘동범로드’ 중 하나다. 비행기부터 호텔, 식당까지 예약까지 도맡아서 일행들이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지면을 통해 거듭 감사 인사를 보낸다.
조 작가의 여권을 보면 온통 일본 출입국 스티커로 뒤덮여있을 정도로 일본통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무조건 믿고 가는 동범로드였다. 그에게는 몇 개의 일본 코스가 있는데, 하나씩 따라나설 심산이다. 각설하고 슬슬 규슈 인문미식여행 이야기보따리를 일정대로 풀어보자. 사설이 길어서 한정된 지면 사정상 이번 칼럼도 2회에 나눠 싣는다.
야마야 외식기업과 함께한 후쿠오카 첫날
후쿠오카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맡겨 놓고 시로가네에 있는 하이엔드 식당 야먀야 총본점 ‘시로가네코미치’(白金小径)로 향했다. 이 식당은 출국 전 예약을 해 놓은 터라 첫 끼는 문제없이 12명이 온전히 입장이 가능했다. 살살 걸어서 도착한 식당은 직사각형 단층에 온통 검은색으로 도색한 외관이 이채롭다.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둥그런 중정 숲이 있는 반전이 기다린다.
야마야의 모기업 야마야커뮤니케이션즈는 외식기업으로 규슈 지역 외식업계 맹주다. 슬로건을 ‘메이드 인 규슈’로 지을 정도로 이 지역 애착심이 대단한 회사다. 규슈 하카타 지역 특산물인 명란이 야마야의 출발점이다. 명란에 매운맛을 첨가해서 만든 ‘매콤한 명란’이 야마야의 승부수였고 대성공을 거뒀다. 야마모토 히데오가 1974년 창업해 올해로 51년 된 규슈지역 식문화를 이끄는 중견기업이다. 지금은 도쿄대 경제학부를 나온 아들 야마모트 마사히데가 대표직을 물려받았다.
식당은 플래그십 스토어로 2023년 문을 열었다. 낮에는 ‘시로가네 코요’, 밤에는 도쿄의 일본 레스토랑 ‘히로시’의 오너 하세가와 자이스케가 감수하는 오마카세 ‘젠’을 제공한다. 또한 이곳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매운 명란 등 한정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다.
식후에는 일본 전통 커피집 킷사텐(喫茶店) ‘코히샤 노다’ 다이묘 본점을 가려고 했지만 시간에 쫓겨 다음으로 미뤘고 결과적으로 일정 마지막 날 들러 노포 옛 정취를 즐길 수 있었다. 커피 풍미가 좋아서 약간의 원두도 구입해 와 짧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며 음미하고 있다.
숙소까지 걸어와 체크인을 마치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몇몇 일행과 숙소 근처에 있는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과 카와바타 쇼핑아케이드, 구시다 신사 등을 찾았다. 신사에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보관돼 있어 한국인들에겐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일반 공개는 되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
가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는데, 돌이켜보니 마지막 날 빼고 하루에 한 번은 큰 비를 만났다. 습한 기후 때문인 듯했다. 마지막 날은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행 중에 흔히 말하는 ‘날씨 요정’은 없었나 보다.
기름진 모츠나베와 168시간 숙성 명란
저녁 식사는 ‘모츠나베 야마야 하카타점’를 찾았다. 이곳 역시 야마야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모츠나베 전문점이다. 예약 없이 불쑥 12명이 들이닥치니 종업원이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테이블 세 개를 붙이고 능숙하게 응대했다. 오는 10월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는 곳이라 제때 가길 잘했다.
모츠나베는 일본산 소 소장만 사용한다. 곱이 온전히 붙어 있어 맛이 ‘크리미’를 넘어서 철철 기름지다. 된장 베이스의 짭짤한 맛과 소장 곱의 번질거리는 맛이 절묘한 조합을 이룬다. 채소에서 빠져나온 채수가 시원함을 더하고 칼칼한 뒷맛이 ‘나마 비루(생맥주)’를 외치게 한다. 함께 주문한 명란은 야마야의 자랑이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비법 타쿠미노소스에 168시간 숙성시켰다고 한다. 우리의 중랑천 정도 되는 나카스강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나카스강 주변에는 야타이(屋台)라고 부르는 포장마차가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좁고 불편한 좌석, 위생이 조금 걱정되는 환경이지만 하루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가볍게 들러 빠르게 맥주 한잔과 꼬치 몇 개, 라멘 등으로 허기를 달래주는 곳이다. 어디나 그렇지만 유명한 야타이 앞에는 대기 손님이 줄지어 있었고 나카스 강변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육해공 식재료 조화·디저트가 좋은 뷔페
이튿날 일본 가정식으로 호텔 조식을 먹고 버스를 타고 사가현 가라쓰로 이동했다. 가라쓰성 꼭대기에 올라 도시 전경을 조망하고 내려와 마을길을 따라 시사이드 호텔 뷔페 레스토랑 ‘겟파로(月波樓)’로 향했다.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명소에다가 가격도 3500엔밖에 하지 않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예약이 안 되는 곳이라 여섯 번째로 대기를 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육해공 식재료가 조화롭고 케이크, 타르트 등 일본이 특히 강세인 디저트가 훌륭했다. 무엇보다 바다뷰가 환상적이었고 계단식 테이블로 뒤쪽 테이블에서도 뷰를 만끽할 수 있는 배려가 돋보였다.
호텔에서 시작되는 해변의 해안선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또 해변 근처에는 약 5km에 걸쳐 일본 흑송 백만여 그루가 자유롭게 자라고 있는 니지노마쓰바라 숲이 있다. 이 송림 길은 일본 3대 소나무숲, 일본 길 100선, 일본 가로수 100경에 포함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곳이다. 숲 한가운데는 명물 ‘가라쓰버거’를 파는 푸드트럭이 한 대 있다. 배가 불러 다들 손사래를 쳤고 일행 중 한 분이 기념이라고 두 개를 싸들고 왔다.
후쿠오카로 되돌아와 자유 시간을 가졌다. 이와타야 백화점에서 지인이 부탁한 플리츠플리즈 스카프 두 장을 구매하고 저녁 식사를 위해 숙소 근처에서 적당한 주점을 찾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연히 발견한 정겨운 이름 한국식당
그러다가 우연히 발견한 반가운 간판 ‘釜山亭(부산테이)’ 텐진점. 재일교포 점장과 아르바이트생의 북한식 억양이 정겨운 곳이다. 찬모 역시 재일교포라 한국말이 능통하다. 일본 아르바이트생도 한국어를 곧잘 한다.
신김치와 함께 구워 먹는 삼겹살이 별미다. 족발도 함께 주문했지만, 삼겹살이 우세다. 원육은 가고시마현 돼지를 사용한다. 정갈한 한국식 반찬과 진로 참이슬 소주가 반갑고 정겹다. 아무리 일식이 맛있고 입맛에 맞는다 해도 역시 한국인은 한식이다. 널찍한 공간이 마음에 들어 다음날 답사단 마지막 만찬 장소로 예약을 했다. 정확히 12명이 마주 보면 식사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주기까지 하니 온전히 일행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호감 있는 모습으로 열심히 고기를 구워준 게 고마워 약간의 팁을 줬더니 추가로 사 먹어야 하는 쌈과 마늘 등이 무제한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일은 단품보다 삼겹살 무한리필 3500엔, 주류 무제한 1500엔 등 인당 5000엔으로 편안하게 식사를 즐기라고 추천한다. 괜찮은 조건이라 그러마하고 예약을 하고 나와 주류매장인 ‘알리크(ALLIQ)’ 텐진점에 들러 보드카 한 병을 사서 숙소로 향했다. 낮에 샀던 가라쓰 햄버거를 안주 삼아 여행 둘째 날 밤을 하얗게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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