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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선 기차를 타고 구례구에서 내려 온종일 구례 골목을 누비고 다녔지만 사람은 하나 안 보이고 모조리 감뿐이네.// 온 나라의 수만 개 감이 난리를 꾸미는지 감나무 가지는 담을 넘어 마을을 덮치고 천상의 동네처럼 가을 전체가 등불 같네. - ‘노을의 가족’ 1연
그리운 곳은 다 변해버렸다./ 껍질을 벗지 못한 옛 모습의 몸은/ 모두들 떠난 것을 이제야 눈치챈다./ 왜 모든 병이 창백한지를 배운다./ 식물도 기억력이 있다는 중얼거림/ 숨어서 내 독백을 들어주는 이가/ 언제부턴가 주위에 있다는 걸 느낀다. - ‘그해의 사순절’ 2연
마종기 시인의 신작 시집 ‘내가 시인이었을 때’에서는 유난히 외로움의 깊이가 느껴진다. 시인은 장구한 세월 동안 60여 개국을 떠돌며 작품을 발표해 왔다.
더는 만날 수 없는 친구, 세상을 떠난 누이 그리고 어린 시절의 노란 민들레까지 시인은 삶의 고통 속에도 결코 허물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순간을 돌아본다. 시인은 사람과 삶에 관여된 일이라면 속단하지 않고 무한한 포용성을 보여 왔다.
1980년에도 시인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자기가 믿는 지식이나 정확성이나 엄정한 판단보다는 사랑과 이해와 조건 없는 포옹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며 살고 있다”고 했다.
시인이 간절하게 바란 ‘사랑과 이해와 조건 없는 포옹’은 지금의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여일한 사랑으로 살아온 아름다운 언어의 시인 마종기가 지금 우리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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