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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세협상 조인트 팩트시트 공개 이후 국내 담론장은 두 갈래의 해석으로 분기했다.
관세 15%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골자로 한 협상 타결을 두고 불확실성의 해소에 대한 대목에서는 이견은 없으나 여는 '국익성과'로 야는 '부담의 시작'으로 평가를 달리했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과 민수용 우라늄 농축·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지지를 전략 자산 확보의 성과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다. 합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에도 상당한 진전으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통상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한국이 수십 년간 추구해온 전략 자산을 획득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애서 단순한 통상 타결의 차원을 넘어서는 전략적 결단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한국이 마침내 핵추진 잠수함과 핵연료주기에서 제도적 돌파구를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팩트시트에는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명기됐다.
동시에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연료 조달 관련 협력 절차를 병행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이 사전허가 조건부로만 제한적 농축·재처리를 허용했던 점을 감안하면, 조문 개정 없이도 해석과 운용의 외연을 확장하는 정치·외교적 합의가 도출된 셈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한국의 지정학적 현실에서 단순한 무기 체계가 아니다. 장기 잠항과 고속 기동, 낮은 피탐률을 기반으로 북한 SLBM 전력과 인근 해역의 잠수함 활동을 억제하는 핵심 수단이자, 동중국해·서태평양까지 작전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전략 플랫폼이다.
이미 호주가 AUKUS를 통해 유사한 경로를 개척했으나, 한국처럼 별도의 다자 동맹 틀 없이 독자적 SSN 프로그램 승인을 획득한 전례가 없다. AUKUS와 동일한 형식이라 단정하기는 시기상조이나, 최소한 그에 상응하는 전략 자산 구축의 통로를 확보했다는 점만은 명백한 성과다.
민수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절차에 대한 미국의 지지 역시, 원전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장기적 기술 주권과 직결되는 의제다. 한국이 향후 저농축 우라늄 생산, 폐연료의 처리·재활용 문제에서 미국과 제도적 협의를 지속할 수 있는 공식 통로를 개설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 두 축만 놓고 보더라도 이번 합의는 단기적 관세 손익을 초월하여, 한국의 안보·에너지·기술 정책의 좌표를 장기적으로 재편하는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관세협상의 결과는 통화스와프 채결까지 성공하지는 못하지 못한데는 아쉬움이 남지만 일본, 유럽과 비슷한 결과를 도출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232조 상호관세를 15%로 조정하고, 자동차·목재·의약품 등에 적용하던 25% 관세를 동일 수준으로 인하하는 대신,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다.
이 중 2,000억달러는 직접 현금 투자로, 다만 연간 200억달러 상한선을 설정하여 외환시장에 급격한 충격이 발생하지 않도록 단계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나머지 1,500억달러는 미국 조선업 부흥 프로젝트, 이른바 MASGA에 배정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불확실성 제거와 손실 상한 설정이라는 리스크 관리의 관점에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다.
관세뿐 아니라 2030년까지 미국산 무기 250억달러 구매, 주한미군 지원 330억달러, 조선·원전·AI·반도체 협력, 미군 함정의 한국 건조 가능성 같은 산업 협력 조항도 병기되었다. 이른바 통상·안보 패키지 딜이다.
이같이 단기적으로 재정·산업 정책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 이 합의를 전략적 결단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이 모든 비용을 감내하면서 획득한 안보·기술 주권의 지위 상승 효과가 결코 작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핵잠수함 건조 승인과 민수용 우라늄 농축·재처리 절차 지지는 한국이 30년 이상 추구해온 의제였다. 군사·비확산·동맹 정치가 복합적으로 얽힌 탓에 매번 미국의 신중론에 가로막혔다. 이번 팩트시트는 그 문을 비로소 개방한 합의다.
물론 이번 합의는 모든 것의 해결이 아닌 시적점이다. 한미 원자력협정의 구체적 운용, 국내 법·제도 정비, 예산·기술·인력 확보,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과의 외교적 조율까지 넘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현 정부는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이 통로를 개척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화의 퇴조, 미국의 공급망 재편, 중국 견제 강화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적이다.
이번 합의는 그 사이에서 관세와 투자를 안보 보험료로 인식하고, 핵잠과 핵연료주기라는 장기 옵션을 확보하는 쪽으로 균형추를 이동시킨 선택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후속 관리다. 핵잠수함과 핵연료주기 합의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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