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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ETF에 대한 진입 장벽이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걸 실감한다. 투자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고, 시장 규모도 올해 10월 기준 260조 원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으로만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구조나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들인 ETF에 몇 달치 월급, 전세 대출 이자, 노후 자금이 걸려 있다. ETF가 분산 투자 상품이고 인덱스를 추종한다고 해서 군중 심리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지금의 ETF 열풍은 단지 편하고 수수료가 싸서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원화 가치에 대한 불안이 자리한다. 환율이 오르고 해외여행·유학·해외 투자 비용이 치솟는 상황에서 “원화만 들고 있어도 될까”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의미다. 국내 부동산은 예전만큼 쉬운 선택지가 아니고, 은행 예금 금리는 물가와 세금을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이 거의 제자리다. 그 결과 ‘월급·부동산·예금’이라는 전통적 구조만으로는 노후를 버티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아졌다.
ETF는 이 불안을 뚫고 나갈 비교적 단순한 통로를 열어 줬다. 한국 증시에 상장된 미국·글로벌 ETF를 통해 국내 증권사 앱에서 원화로 해외 자산에 투자할 수 있고, 미국·유럽·신흥국 주식은 물론 국채·회사채·원자재·리츠까지 담을 수 있다. 복잡한 환전과 해외 계좌 개설 대신 클릭 몇 번으로 통화와 국가를 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즘 ETF는 특히 중장년층의 노후 대비책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월급은 정점에서 꺾이는데 기대수명은 길어지다 보니, 예금보다 높은 수익을 원하면서도 개별 종목 리스크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시장 전체에 분산 투자하는 ‘인덱스 ETF’, 변동성을 완충해 주는 ‘채권 ETF’, 현금흐름을 보강하는 ‘배당 ETF’ 등은 이런 고민을 동시에 덜어주는 조합이다. ‘크게 잃지 않고 오래 버티는 구조’가 중요해진 중장년에게 이 세가지 ETF는 노후 포트폴리오의 뼈대로 삼기 좋은 상품군이다.
여기에 비트코인·디지털 자산 관련 ETF도 시장에 합류했다. 해외에선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코인 투자의 길이 크게 넓어졌고,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가격을 추종하거나 블록체인·디지털 자산 기업에 투자하는 ETF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예전에는 별도 거래소 계좌와 지갑 관리, 보안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했던 자산이 이제는 ETF라는 포장지를 입고 일반 증권 계좌로 들어온 셈이다. 규제도 조금씩 정비되면서 하나의 자산군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기자는 중장년 입장에서는 이 상품들을 포트폴리오의 맨 끝에 놓인 작은 칸 정도로 두는게 현실적일 것으로 본다. 특히 비트코인 ETF는 구조상 코인 가격과 거의 같이 움직이고 변동성도 매우 크다. 노후 자금의 중심축이라기보다 전체 자산의 아주 일부에서 ‘미래 기술·새로운 자산’에 대한 옵션 정도로만 다루는 편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요즘 다들 ETF 한다더라”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 나이, 소득, 은퇴시점, 책임져야 할 가족과 지출을 놓고 봤을 때 ETF가 내 포트폴리오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먼저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
즉 인덱스·채권·배당·디지털 자산 ETF 중 무엇을 얼마나 담을지 고민하기 전에 ‘이 돈은 언제 쓸 돈인지’, ‘얼마까지 흔들려도 견딜 수 있는지’, ‘큰 조정이 와도 구조를 유지할 만큼 각 상품을 이해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유행 한 가운데에서 이런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을 때, ETF는 비로소 우리의 계좌를 흔드는 파도가 아니라 노후를 지켜주는 안전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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