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서울에 도착한 다음 날, 라라는 방송국으로 갔다.
김 피디는 클래식 음악 베테랑이었다. 지금 임신 중인 그녀는 2년 전 모스크바에 왔을 때보다 다소 살이 올라 있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취재를 위해 모스크바에 왔던 그녀와 라라는 인사를 했었다.
김 피디는 말했다.
“그때 모스크바에서 뵌 분이란 거 알고 라라 씨 글 좀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때 처음 간 모스크바에서 제가 신세를 많이 졌죠. 그런데 라라 씨가 많이 힘들다고 했었죠. 그렇지만. 사실 우린 그래요. 힘든 사람 돕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여기는 프로들의 세계고, 또 방송계가 굉장히 까다롭고 타이트해요. 무엇보다 작가는 글발이 돼야 뒷말이 없으니까. 다행히 라라 씨 글이 좋았어요. 특히 ‘미시족을 위한 변명’ 그리고 ‘시베리아의 눈물 바이칼’ 정말 마음에 들더군요.”
며칠 후 김 피디는 신입 후배 양 피디를 라라에게 소개해 주었다. 기획 프로그램 작가가 필요하다고 해서 라라를 소개했다는 거였다.
“동대문 일대에 러시아 매춘녀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걸 취재하고 싶어요.”
양 피디는 미혼의 여자였다. 키가 크고 마른 체격에 이지적이면서도 앳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순수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캡을 써서 그런지 보이시한 분위기가 편안함을 주었다.
라라는 다음날부터 취재에 나섰다. 매춘한다는 러시아 여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외국인들의 매춘은 음성적으로 존재할지언정 밖에서 업소를 차리고 공개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남자 기자들이 손님인 척 위장 접근해야 겨우 찾을까 말까 하니까요.”
그 인근 경찰서의 담당자는 귀띔을 해주었다.
“더구나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어디론가 모두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아 더 힘들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뒤쪽 골목이나 모텔 근처에 가면 저렴한 가격에 매춘을 제안하는 러시아 여자들과 고려인 여자들이 있었는데. 어려 보이는 얼굴부터 그런 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는 나이 든 여자들까지 다양하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라라는, 일부는 매춘도 있지만 일부는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련 붕괴 후 급격히 자유로워진 그리고 내면적으로는 유럽의 전통 속에 있는 러시아가 갖는 성적 개방성에서 비롯된 행동이지, 직업적으로 매춘을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몰라.’
“러시아에 있을 때 듣기로는, 한국 남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한국에 따라왔다가 버려진 경우, 체류 비용이나 돌아갈 비용이 필요해서 그런 일들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하자 양 피디는 화들짝 놀랐다.
“우리가 여기서 외피만 보고 아는 것과 속사정이 다른 경우가 있겠군요. 그게 사실이라면 이 특집은 기획부터 재검토해야겠네요. 괜히 불쌍한 러시아 여자들에게 매춘업자나 창녀라는 오명을 씌울 수 있겠어요.”
그 후 양 피디와 라라는 서로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갖게 되었다.
“다음 개편 때 맡게 될 예정인 프로그램에 작가가 없는데, 주말에는 제가 일이 많아 프로그램 준비하기가 벅찰 거 같아요. 주말 작가를 맡아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라라는 비록 주말 이틀뿐이지만 정규 프로그램 작가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라라가 주말뿐 아니라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주 하반기 3∼4일 자료 수집 차 출근하면서 일에 대한 성의와 적극성을 보이자 양 피디는 일하는 라라에게 고마워했다.
어느 날 양 피디는 맥주를 마시며 라라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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