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대학에서는 여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사건이 수년 째 지속되고 있다. 논란이 불거져 나온 곳은 현대중공업 산하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울산과학대학이다. 울산과학대학에서는 시급인상을 요구한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이 지난 2014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파업에 나선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이 학생들을 동원해 파업을 방해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학교 측은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며 반박했다. 청소노동자와 학교 측 간에 갈등은 처음 파업이 발발한 지 약 1200일이 가까워지는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학 청소노동자의 정규직화, 정년 연장 소식 등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갈등은 재점화 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들의 갈등을 지켜보는 주변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어른들의 싸움에 애꿎은 학생들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뒤숭숭한 분위기로 학생들이 입는 피해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학교법인의 소유·운영 등을 담당하는 현대중공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마저 높게 일고 있는 실정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수년 째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는 울산과학대학을 찾아 현재의 상황과 이에 대한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직접 들어봤다. ![]() |

[경남 울산=이성은 기자] 울산과학대학 측과 청소노동자 간에 갈등이 수년 째 이어지면서 제3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처음 촉발된 후 올해로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양측의 갈등으로 인해 정작 학교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여론은 학교법인을 사실상 소유·운영·후원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봉합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과학대학의 운영법인인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설립했다. 최초 고 정 명예회장이 직접 이사장을 역임했고, 이후에는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지금도 학교법인 주요임원 자리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을 비롯해 현대중공업그룹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울산과학대학은 사실상 현대중공업이 소유·운영하는 학교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이다
왕회장 손때 묻은 산업 역군 요람…학교·청소노동자 간 갈등에 명성 휘청
지난 1973년 설립된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이 설치·경영 중인 울산과학대학은 공업 기술 인력을 육성·배출하는 전문대학이다. 지난 1973년 처음 개교한 이례 올해로 45년째를 맞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울산광역시 동구 지역에 동부캠퍼스를 개교하며 확장을 시도하기도 했다.
울산공업학원의 이사장은 그동안 현대가(家) 인물들이 맡아왔다. 재단을 설립한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그의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등이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2014년부터는 정정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사장을 역임 중이다. 정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과거 울산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정 이사장은 정몽준 전 이사장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인물이다.

수십년에 걸쳐 수많은 산업 역군을 배출한 울산과학대학의 명성은 지난 2014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임금인상을 요구한 학교 내 청소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안은 청소노동자들이 제기한 ‘학생들을 앞세운 파업탄압’ 의혹이다. 논란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이 내 건 현수막 등을 제거하면서 촉발됐다. 지난 2014년 10월에 벌어진 일이다. 청소노동자들은 본인들이 내 건 현수막을 제거한 학생들의 행동은 자의가 아닌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울산과학대학 교수협의회는 각 학과 교수들에게 보낸 안내문을 통해 “120여일 이상 지속되고 있는 (청소 노동자)파업 장기화로 학내 건전한 면학 분위기 조성이 매우 위협 받고 있고 학생들의 정상적인 학습권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교수님들의 수업권에도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안내문에는 ‘그린캠퍼스 캠페인’이라는 일련의 활동을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안내문에는 ‘그린캠퍼스 캠페인 안내(학과 사전교육)’라는 제목 아래 △각 학과에서는 ‘그린캠퍼스 캠페인’ 사전 안전교육을 철저히 시켜주시기 바란다 △배치 도면을 참고해 활동해 주시기 바란다 △교수님들은 해당 학과 학생들의 안전지킴이 역할을 철저히 해 주시기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여전히 청소노동자들은 ‘그린캠퍼스 캠페인’이 현수막 제거 작업을 지시하는 ‘일종의 매뉴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순자 울산지역연대노조 울산과학대지부장은 “당시 캠페인 활동에 나선 학생들에게 물으니 많은 학생들이 ‘학점 때문에 나오게 됐다’고 증언했다”며 “심지어 ‘교수가 활동에 나가지 않으면 학점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한 학생도 있다”고 강조했다.
당시 청소노동자들의 주장에 학교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학교 측 관계자는 “교수협의회 측에서 자발적으로 교내 정화활동을 주도했다”면서 “사실 학교 측도 정화활동을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하고 교내에서 먼저 교수·학생들이 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현수막, 리본 등을 제거했다”고 강조했다.
어른들 싸움에 등 터지는 미래의 산업 역군들…학교 실소유주 ‘현대중공업 책임론’ 대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학 청소노동자의 정규직화, 정년 연장 소식 등이 잇따라 전해지면서 울산과학대학 내 갈등 역시 재점화 되는 분위기다. 수년 째 천막농성을 지속해 오던 청소노동자들은 활동 보폭을 더욱 넓히고 있다. 학교 측 역시 입장을 굽히지 않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들의 갈등을 바라보는 주변의 반응은 냉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학생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학생들을 앞세운 파업탄압’ 의혹이 제기됐던 당시에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어른들의 싸움에 학생들이 거론된 것 자체가 상당히 불쾌한 일이라며 반감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울산에 거주하는 김영식(56·남·가명) 씨는 “파업이든 진압이든 다 좋다고 쳐도 그 학교 학생들이 무슨 죄냐”며 “수년째 학교가 뒤숭숭한데 학생들이 학업에 전념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양측의 입장이 어떻든 간에 학생들의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울산시민 나은희(63·여·가명) 씨는 “울산과학대학 학생들은 졸업 후 현대중공업 조선소나 하청업체 등에 취업하는 미래의 산업 역군이라 할 수 있다”며 “이런 학생들이 어른들의 갈등에 이용당하거나 학업을 방해 받아서야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학교법인의 실제 소유주나 다름없는 현대중공업의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도 적지 않아 주목됐다. 수년째 사태를 수수방관 하고 있다며 현대중공업이 직접 나서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단체 한 관계자는 “울산과학대학 운영법인 주요 임원에 전·현직 현대중공업 임원이 다수 포진해 있다”며 “특히 현재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경영을 도맡고 있는 권오갑 사장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권 사장이 직접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성은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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