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메시지예요. 나라와 인종은 천차만별일지라도 음악을 느끼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음악은 제게 희망이자 기회예요. 음악으로 세상과 대화를 나누는 거죠.”
우리나라 사람을 일컫는 수많은 수식어 중에 ‘음주가무의 민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할 수 없지만 불과 2019년까지만 하더라도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음껏 즐기고 나면 반드시 노래방을 가는, 마치 불문율과도 같은 공식이 있었다.
이뿐이랴. 이 땅에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이 좀 많은 게 아니다. 방송국에서 노래 관련 오디션만 열렸다 하면 그간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댄스, 발라드, 록, 트로트 등 장르를 불문하고 내로라하는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하물며 ‘우리동네 명가수’라 칭해지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잘 하기도 하거니와 좋아하기는 세상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여기 노래를 특별히 잘 하는 사람이 또 있다. 성악을 전공한 팝페라 가수 문지훈 씨다. 그런데 그는 보통의 팝페라 가수와는 다르다. 소프라노의 음역대를 소화하는 ‘카운터테너’이기 때문이다.
축구선수 꿈꾸던 소년, 꼬리뼈 부상과 시각 장애 판정에 좌절… 그러나 음악으로 새로운 도전
카운터테너라는 독특한 이력 덕분인지 문 씨는 ‘2015 대한민국의 힘 희망을 주는 인물’ ‘2016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0대 청년(The Next Korea Generation Y)’ 등에 선정됐다. 또 광복 70주년엔 KBS ‘나는 대한민국 연아 합창단’ 단원으로서 김연아 선수와 함께한 카운터테너로도 이름을 떨쳤다. 또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회식 리셉션’ 축하 무대에 서 세계적 VIP 앞에서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러나 문 씨가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축구선수를 꿈꾸며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스카우트 제의가 올 정도로 축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학교 축구팀 입단 테스트를 본 문 씨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들었다. 축구팀 감독으로부터 ‘재능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지만 문 씨는 축구선수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볼보이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볼보이로서 성실히 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감독님이 제게 축구선수로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저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하루 종일 연습에 매진했죠.”
“정말 욕심이 많았어요. 친구들에 비해 축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기본기를 다지려고 정말 죽어라 연습만 했어요. 그러나 무리하게 연습한 탓인지 꼬리뼈가 다 닳아버리는 부상을 얻게 됐어요.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더 운동을 하다간 아예 걷지 못할 수도 있다’며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하더군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
생각지도 못한 부상으로 축구를 접은 문 씨는 6개월 동안 학교를 쉬고 재활 치료를 받았다. 건강 상태가 호전된 후 친구들보다 1년 늦게 학교로 돌아갔지만 평생의 꿈이었던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좌절감에 문 씨는 긴 방황을 겪었다.
그런 문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음악이었다. 그 중에서도 성악은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음악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음악이야말로 제게 유일한 위안처였거든요.”
“성악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짜릿했어요. 가슴이 울리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죠. 특히 이탈리아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안드레아 보첼리는 팝페라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나 다름 없어요. 대중 음악과 정통 클래식 음악을 오가는 그를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죠. 그렇게 팝페라 가수로서 두 번째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어요.”
문 씨는 콩쿠르에 나가 입상을 하는 등 성악에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위기는 또 다시 찾아왔다. 그는 입대를 위한 신체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한쪽 눈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신체 검사 때 군의관님이 시력이 안 나오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어요. 솔직히 믿을 수 없었어요. 일상 생활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검사 결과 오른쪽 눈이 뿌옇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제가 진단받은 질환은 ‘원추각막’이었어요. 원추각막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10명 중 7, 8명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더군요.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지나가는데 때때로 원추각막으로 인해 시력이 악화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했어요. 제가 딱 그런 경우였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절망감에 빠진 지 그리 오래지 않아 결국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어요.”
“세상이 나를 버린다는 느낌이었어요. 열심히 살려고 그렇게 노력했건만 꼬리뼈가 닳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시력을 잃다뇨. 세상이 제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죠.”
문 씨는 장애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노래하는 것이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악보가 보이지 않아 실수가 잦았거든요. 그런데 친구들은 제가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실수한 것으로 알더군요. 하지만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어요. 스스로도 장애를 인정할 수 없었거든요.”
“나중에서야 깨달았어요. 실력이 특출 난 것도 아닌데다 눈이 불편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요. 축구팀 입단 테스트에서 고배를 마시고도 포기하지 않고 볼보이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운 것처럼 시각 장애를 얻게 됐지만 팝페라 가수의 꿈을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닮은 꼴 인생 살아온 친구와 교감… 그룹 결성해 보다 풍부한 음악으로 감동 전하고파
음악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온 문 씨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진출했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카운터테너로서 문 씨의 목소리를 접한 외국인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러던 중 문 씨는 자신과 닮은 삶을 산 친구를 만난다. 문 씨와 비슷하게 여성의 음역을 소화하고, 학창시절 수영선수를 꿈꿨으며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받아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이를 만난 것이다. 바로 신경식 씨였다.
“경식이는 대단한 친구예요. 초등학생 때부터 수영선수로서 꿈을 키워 온 경식이는 전국 대회 신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어요. 그런데 고등학생 때 점차 부진한 기록을 내면서 선수로서 희망을 잃었죠.”
수영선수의 꿈을 접은 신 씨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때문일까. 신 씨는 고3 때 학교폭력과 유사한 끔찍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세상으로부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으나 신 씨 역시 음악을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고 단언했다.
신 씨는 가수 박정현의 노래에서 큰 힘을 받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여느 남자들과 달랐던 그는 가수 소향이 부른 애국가를 따라 부른 영상 덕분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덕분에 Mnet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에도 출연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부분에서 마음이 통했던 문 씨와 신 씨는 ‘NBIRD’라는 그룹을 결성해 두 사람만의 하모니를 선보이기로 했다. 남성으로서 드문 음역대를 선보이는 두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매력을 문 씨가 설명했다.
“소프라노의 음역을 구사하는 저와 여성의 음역을 소화하는 경식이가 함께 노래할 때 더욱 풍부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잖아요. 하나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도 물론 감동을 주는 데 부족하지 않겠지만 둘의 목소리가 표현하는 노래가 주는 감동은 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리의 목소리가 독특하니까 호불호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더러 있죠. 하지만 음악은 차별이 없어요. 음악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통해 힘든 시기를 겪고 있거나 억압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우리의 노래를 통해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게 꿈이에요.”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