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개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보신탕업계와 육견업계는 가뜩이나 힘든데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며 반발했지만 동물단체는 크게 반기면서 수년간 지속돼온 개고기 판매 금지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됐다.
육견인 단체 반발…“43년간 방치해놓고 이제 와서 ‘개식용 금지’ 말도 안돼”
현행법상 개는 소와 돼지처럼 가축으로 분류되지만 도살이나 유통 관련 규정에는 포함돼있지 않다. 또한 조리 및 판매는 불법이지만 식용 자체는 금지가 아니다. 이처럼 개는 현행법에서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범주에 머물러 있다. 만일 개가 가축에서 제외되면 식용 목적으로 개를 기르는 사육 농가는 불법화된다.
육견인 단체는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두고 정부가 그동안 식용 개 농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생계를 막으려 한다고 반발한다. 조환로 전국육견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정부가 43년 동안 개고기를 무법지대에 방치해놓고 이제 와서 개고기 식용 금지를 논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며 “정부는 이해 당사자들 의견을 듣고 그에 걸맞은 대책이나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개식용 시장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전국육견인연합회에 따르면 전국 개농장은 2018년 2300개였지만 올해 8월 기준 1500개로 줄어들었다. 폐업을 고려하는 개농장도 상당수다. 동물단체 카라가 지난해 경기도 개농장 916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미 폐업했거나 폐업을 고려 중인 농장이 414곳으로 4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고기 식용 금지에 앞서 사회적 합의부터 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회적 합의 공백 상태에서 개식용 금지를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불협화음과 충돌은 예견된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3월 쿠팡이츠,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음식 배달 앱에 개고기 판매 식당이 입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개고기 찬반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른 바 있다.
서울에서 30년 넘게 보신탕을 판매한 김영주(가명) 씨는 “소나 돼지, 닭, 오리 등 다른 동물은 괜찮고 개만 안 되는 것은 차별이다”며 “코로나19로 장사가 힘든데 갑자기 보신탕을 못 팔게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손님들도 불만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보신탕 영업 10년차인 박석영(가명) 씨는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장사가 잘 됐지만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생계가 어렵다”며 “보신탕 업계가 굶어죽으면 정부가 책임질 것인지, 사회적으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식용 금지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개고기를 먹으러 온 이한순(가명) 씨는 “무릎 수술 후 몸보신용으로 보신탕을 한 달에 한번 먹으러 온다”며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개고기를 먹어왔는데 하루 아침에 개식용을 금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중국 같은 곳에서도 개고기를 먹는 것으로 안다”며 개식용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늦었지만 대환영…실질적인 대책과 함께 실현 구체화해야”
동물보호단체들은 문 대통령의 ‘개식용 금지 검토’ 발언에 늦었지만 대환영이라며 호응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45개 동물 단체는 지난달 2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개식용 금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관련 지시를 내린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를 먹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개들을 바닥까지 철망으로 만든 뜬 장에 가둬 온갖 학대하는 개식용 악습을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 후보들도 개식용에 찬성한다고 밝혔다”며 “1500만 반려인들은 개·고양이를 가족으로 생각한다. 개·고양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정신적인 충격과 심리적인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미 개식용을 금지하자는 게 다수의 여론이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5월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개·고양이를 죽이고 그 성분이 포함된 음식을 생산·판매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78.1%라 동의한다고 답했다.
한편 동물단체는 우려의 입장도 내비쳤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동물단체로서는 현직 대통령의 말씀으로는 최초의 의지 표명이기 때문에 굉장히 고무적이고 환영하는 입장이다”며 “다만 그동안 개식용 금지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3년 전에도 이런 논의가 있었지만 실현이 되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실질적인 대책과 함께 실현이 구체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개식용 금지 논쟁은 해묵은 의제다.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주장과 ‘보신탕’은 한국 고유 음식문화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어려웠다. 2018년 정부는 ‘개, 고양이 식용종식’을 주장한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축에서 개를 제외하도록 축산법 관련 규정 정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우산안건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개식용과 관련한 문제는 동물을 대하는 관점, 취향, 혹은 신념의 문제인 동시에 일부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생계 등 경제적 문제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지난해 12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개·고양이 도살과 식용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시 형사 처벌한다는 내용과 함께 개식용 금지로 인해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할 경우 지원금을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은 현재 계류 중이다.
이원복 대표는 “농림축산식품부 등 주무부서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지난달 30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유기 반려동물 관리체계 개선방안’ 발표가 있었는데, 문 대통령의 개식용 금지 검토 발언 이후라 개식용에 대한 내용이 짧게라도 언급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전혀 없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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