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랑 삽겹살을 좋아해요. 상추에 고기를 싸서 쌈장을 찍어먹는 느낌이 신선했어요. 고향에서는 보통 식당에 가면 대부분의 음식이 완성된 상태에서 나오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오니까 전혀 익히지 않은 고기와 집게를 주는 거죠. 손님이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 분위기라, 사실 처음에는 의아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고기를 굽는 동안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덕에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그러더군요. 지금은 그 분위기 자체를 즐기게 된 것 같아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지내다 보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 편해졌어요. 그래서 고향에는 가끔 여행으로 다녀오고 주로 한국에서 살고 있죠.”
르완다서 한국에 온 외국인유학생, 프리랜서 모델로 성장하다
지난해 10월 29일 행정안전부가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활용해 발표한 ‘2019년 지방자치단체 외국인 주민 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국인 주민은 거의 222만명에 이른다. 2018년 보다 8%가량 증가해 총인구 대비 4.3%에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꿈꾸는 외국인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모델 겸 영화배우 피스 피델(26)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외국주민 중 한 명이다. 스카이데일리 취재진은 한국에서 7년째 거주하고 있는 피델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피델은 기자 일행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손님 대접에 아주 익숙해 보이는 피스피델은 커피 한 잔을 내려주며 먼저 자신이 한국에 오게 된 계기를 말해줬다.
“1994년도 고향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부모님들이 케냐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저는 케냐에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녔어요. 고등학생 때 한국에 유학 오고 싶었는데, 마침 지인들 중에 한국에서 유학하시는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대해 물어보게 됐는데, 다들 정말 좋다고 전해주더군요. 그 때부터 무조건 한국에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하나하나 준비하게 됐어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꽃보다 남자’ 와 같은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 후론 점점 더 많은 관심이 생기게 되더군요.”
피델은 1996년 르완다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이민으로 케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케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2016년 정부초청장학생으로 한국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선문대학교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친 후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17학번)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고 말한다.
“사실 대학교 전공은 현재 하고 있는 모델이나 연기활동과는 거리가 먼 분야예요. 한국은 IT강대국이다 보니 한국에서 이 분야를 공부하고 싶었고 그래서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죠. 그러다 4학년 1학기 중에 학교를 그만두게 됐는데요. 그 이유는 모델과 연기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대학졸업을 포기하고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고 싶었던 거예요.”
한국에서 정부초청장학생으로 무난하게 대학생활을 보내던 피스 피델이 모델 활동을 시작하게 된 데는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이 계기가 됐다. 모델로 활동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흔히 알려진 길거리 캐스팅도 아닌 우연한 계기로 모델 활동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판교에서 한 친구와 약속이 있었어요. 그래서 판교로 가게 됐죠. 그런데 그날 친구가 30분 늦어진다고 해서 그동안 근처 현대백화점에서 아이쇼핑하면서 친구를 기다렸죠. 쇼핑몰을 들러보며 마음에 드는 자켓을 입어보고 있는데, 매장 직원이 다가왔어요. 그 직원이 저를 보더니 옷이 정말 잘 어울린다면서 사진 한 장 찍어줬어요. 그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는데, 모델 일을 하냐고 묻는 댓글이 엄청 올라오더군요. 그 반응에 저도 모르게 모델에 한 번 도전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바로 지원하게 됐죠.”
용돈벌이로 우연히 시작한 모델…주거생활 책임지는 직업으로
“사실 대학교 첫 학기를 마치고 방학기간에 지인을 통해서 영화 엑스트라로 일한 적이 있어요. 촬영은 처음이지만, 어렵지 않게 영화 세트장에 가게 됐는데요. 촬영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도 출연료로 10만원 받았어요. 대학생에겐 큰돈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분야에서 앞으로도 더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더군요. 문제는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업도 병행해야 되다보니, 연기보다는 단 기간 활동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모델이 더 적합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면서 주로 모델로 활동하게 됐죠.”
피델은 모델계에 발을 들인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모델로 활동해왔다. 그는 ‘레드옴므’라는 남자쇼핑몰 모델로 광고 촬영을 하고, ‘VOIXATCH’ 스마트워치 잡지모델, ‘아식스코리아’ 매장 잡지 광고모델, ‘뉴발란스’ 코리아 모델 등 굵직굵직한 브랜드에서 활동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국내 최고의 전자제품 브랜드인 삼성전자 TV 광고와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고 맛을 봤을 법한 ‘60계치킨’ TV 광고에서 외국인남자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촬영 섭외가 들어올 때는 정말 설레요. 매번 다른 제품, 다른 옷, 다른 스탭과 감독, 아울러 다른 클라이언트, 다른 세트장 등 똑같지 않아서 늘 새로워요. 아시다시피 카메라 앞에 서있기 전에 스타일리스트가 옷을 골라주거든요. 그리고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화장해주고 헤어스타일리스트가 머리스타일 해주죠. 모든 준비가 다 되고 나면 저는 광고할 제품을 들고 촬영에 들어가는데요. 이렇듯 여러 사람들의 손길이 저를 통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약간의 부담감을 안고 촬영하는 것 같아요. 이후 완성된 사진이나 동영상이 좋은 반응을 받으면 정말 행복하고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일한 스탭,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도 포트폴리오 되니까 모두에게 좋은 일이죠.”
그의 도전은 모델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영화 ‘스윈들러’에서 주연 샘 역을 맡아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2018년 웹드라마 ‘껌은 누가 뱉었나’에서 태권도 사범 역으로 출연했다. 지난해에는 영화 ‘엄마 바람피게 하기’에서 단역 외국인남자 역할을 맡아 열연했고 드라마 ‘청춘기록’에서 패션모델로 출연하는 등 외국인남자 배우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연예인들과 같이 촬영할 때가 있는데 너무 반갑죠. 이를테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수 방탄소년단, NCT, 아울러 박보검 등 여러 연예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여서 영광이고 좋아요. 특히 박보검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 ‘청춘기록’에서는 실제 모델들과의 패션쇼를 진행했었는데, 저도 그 중에 한 명으로 참여하게 돼서 너무나 기뻤어요. 아울러 지난해 개봉된 영화 ‘스윈들러’는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 좋았거든요. 해당 작품의 출연자로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꼈어요.”
한국에서 외국인 모델과 연기자로서 활동하는데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외국인이라서 한국에서 느끼는 별다른 부족한 점은 없다고 전했다. 오히려 인종이 다르다 보니 외국 이미지 혹은 제작사에서 글로벌 타켓 홍보를 위한 외국인 모델로 활동할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모델이나 연기 쪽에서 특정 역할에 대해 인종별로 백인만 가능하다고 명시하다 보니 본인은 지원하고 싶어도 지원조차 못하는 역할이 있어 아쉽다고 전했다.
“특히 연기 쪽에서 볼 때 외국인 부자 역할들은 거의 대부분 백인들이 하게 되어 있고, 흑인들은 아무래도 보안이나 보디가드 등 이런 역할을 주로 하게 되죠. 이런 흐름은 모델 쪽도 비슷해요. 보통 저에게 들어오는 제안은 스트리트 웨어나 스포츠 브랜드이구요. 럭셔리 브랜드 같은 경우는 거의 백인 모델 위주로만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나마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 흑인에게도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등 상황이 좋아지고 있긴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부자나 의사, 전문가 등 거의 대부분의 역할은 백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아쉽죠.”
피델은 한국에서 특별히 인종으로 인한 차별을 대우를 받아본 적은 없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문제임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한국 사회에 잠재하고 있는 인종적 차별인식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종으로 나뉘는 역할 분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도전하고파
“저는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흑인이라고 직접적인 차별대우를 당해 본적은 없지만, 제 주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친구들이 종종 있거든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죠. 사실 거의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가족이나 고향친구 등 포기하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한국 분들이 외로운 이들에게 따뜻하게 반겨줬으면 정말 좋겠어요.”

피델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한 어려움이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일 때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변화할 수만 있다면 주로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해소하거나 해결해나갈 방법을 찾아 극복하곤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과 목표가 있다.
“제가 촬영하면서 했던 역할은 굉장히 전형적인 역할이었는데요. 앞서 얘기했듯이 흑인들에게 주로 배정되지 않는 역할, 즉 부자나 의사 등 고급 인력 역할에도 도전해서 사회의 고정된 인식을 조금씩이나마 바꿔보고 싶어요. 대부분 흑인들은 대부분 스포츠 역할을 하는 분위기인데, 어떻게 보면 오래전부터 이미 자리 잡혀 있는 고정적인 관념을 깨고 싶은 욕심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이렇듯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열정을 가진 그가 앞으로 모델 혹은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우리 모두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도전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일단 부딪쳐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특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미리 고민하고 위축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현재 하고 싶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해보고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그때 가서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첫날 한국인에 대해 받았던 첫 인상 ‘따뜻함’을 잊지 못한다며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피델이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시기는 2016년 한 겨울이었다. 그런데 그가 고향에서 가져온 초록색 바나나 때문에 공항에서 짐 검사를 다시 받게 된 사연을 전해주었다.
“제가 한국 공항에 도착해서 짐 검열하는데 짐에서 ‘삐삐’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공항직원들이 가방을 열어달라고 해서 보여주게 됐는데, 짐을 다 수색하고 난 직원이 저를 보고 잠깐 기다리라고 했어요. 저는 분명히 벌금 낼 거라고 생각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직원분이 저에게 오시더니 한국은 지금 겨울이라 엄청 춥다고 하면서 패딩 하나를 선물로 주더군요. 한국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는데, 그분께 정말 감사하고 한국에 온 걸 진심으로 환영받는 느낌이어서 그 따스함이 늘 마음에 남아 있어요.”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