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6º
습도 45%
강릉 15º
습도 50%
청주 16º
습도 60%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쟁이 9개월째 이어지면서 대다수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등 사업을 접고 있지만 일부 기업은 러시아사업에 여전히 공을 들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기업에서 차지하는 러시아 사업 규모가 워낙 큰데다 현지 법인을 통해 러시아 내수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러시아 철수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대상이기는 하다. 러시아사업을 고수하고 있는 기업들은 전쟁과 경제 제재에 따른 피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잠정 평가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가 침체될 가능성이 있기에 실적 감소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을 떨쳐내재 못하고 있다.
러시아 국민 라면·국민 간식 브랜드 보유… 전쟁 중에도 실적 유지
최근 hy(옛 한국야쿠루트)의 지주사 팔도는 스페인의 글로벌 식품기업 GB푸드의 러시아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이번 인수합병은 팔도 최초의 해외기업 인수다. GB푸드는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유라시아 8개국의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다. 팔도는 이 사업권을 이용해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나설 계획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지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대다수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하는 등 자구책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다. 하지만 팔도는 러시아에서 철수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꿋꿋하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팔도가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팔도의 해외사업 가운데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팔도의 라면 브랜드 ‘도시락’은 1991년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이후 50억 개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휴대하기 편한 사각 용기를 사용하고 현지인 입맛에 맞춰 마요네즈를 사용한 것이 주효했다.
앞서 팔도는 러시아가 1998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했을 때도 현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판매를 계속해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의리 브랜드’라는 이미지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이후 팔도는 러시아 라면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는 ‘국민 라면’으로 거듭났다. 팔도 러시아 법인은 지난해에만 3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에도 러시아 시장을 떠나지 않고 이미지와 매출을 동시에 챙긴 만큼 이번에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오리온 역시 러시아 시장에서 계속해서 성과를 내는 기업으로 꼽힌다. 오리온의 대표 제품인 ‘초코파이’가 러시아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와 케이크를 함께 즐기는 러시아 식문화에 맞춰 오리온은 2019년부터 현지 소비자에게 친숙한 △체리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등 잼을 활용한 초코파이 제품을 선보이며 다제품 체제를 구축했다. 오리온은 러시아에서 가장 많은 12종의 초코파이를 생산·판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종 비스킷 제품도 러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오리온의 러시아 시장 사업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는 했지만 오히려 매출이 크게 늘어나며 실적 성장을 견인해 눈길을 끌고 있다. 오리온 러시아 법인의 1~8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82억원으로 지난해 매출 1170억원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이로써 오리온은 러시아에서 2년 연속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오리온은 세 번째 러시아 현지 생산 공장인 트베리 신공장을 가동하고 기존 제품 생산량을 늘릴 방침이다. 공장 가동이 이뤄지면 초코파이 공급량은 연간 10억 개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에 더해 신규 제품 출시를 통해 러시아 시장에서의 막강한 위상을 더욱 굳혀나간다는 복안이다.
내수 위주 영업은 지장 없어… 러시아 경지 침체 장기화는 우려
현재 러시아는 동시다발적인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형국이다. 러시아 은행의 대부분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차단됐고, 러시아산 제품의 유럽연합(EU) 수출도 금지돼 있다. 3대 신용평가 회사인 S&P와 무디스, 피치는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대폭 하향했고 러시아 기업들은 주요 세계증시에서 퇴출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민간 및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품목에 대한 러시아 수출이 금지됐고 푸틴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 기업 및 기업가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제재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 경제 제재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피해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김경만 의원이 한국무역보험공사로부터 확인한 무역보험 사고접수 현황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한 올해 2월24일 이후 9월22일까지 7개월간 56건의 사례가 접수됐으며 무역협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접수된 애로사항은 1150건에 이를 정도다.
다만 이들 기업이 러시아에서 무작정 철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에서 발생하는 매출이나 현지 생산설비 등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글로벌 기업이 철수한 자리에는 러시아 현지 브랜드가 대체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러시아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러시아 정부와 국민에 미운털이 박힌 상태에서 기존 점유율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러시아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현재 상황이 어떤지 타진해봤다. 러시아 현지에 공장을 갖추고 내수 산업 위주로 운영하는 오리온과 팔도의 경우 이러한 경제 제재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러시아 철수 시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현재 별다른 타격이 없기 때문에 굳이 철수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오리온 관계자는 “한국에서 수출하는 구조였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오래 전부터 해외에 공장을 갖추고 내수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원자재 수급의 경우 중국에서도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법인을 통해 수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루블화 문제는 지금은 당연히 없고 루블화가 치솟았을 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팔도 측에서도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추가 사업 확장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팔도 관계자는 “한국에서 수출하는 구조였다면 문제가 있었겠지만 해외 법인을 운영한 지 오래 됐고 내수 판매 중이기 때문에 이전과 별 차이가 없다”면서 “해외 진출의 경우 기존 입장대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 외에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러시아 경제가 위축되면서 러시아 진출 기업의 실적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쟁과 경제 제재의 영향으로 러시아 경제가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러시아 경제는 실제로는 하락세를 겪고 있다. 세계은행은 따르면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이 -4.5%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러시아 정부가 추가 예비군 동원령까지 발했기 때문에 인력 손실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징병된 인력에 더해 해외로 도피한 인원과 기업, 자본까지 생각하면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수백 곳의 러시아 민간 기업이 자국을 떠나면서 투자 손실이 벌어졌고 러시아 실물 경제에도 제약이 커지면서 향후 러시아의 성장 전망은 발목이 잡혔다”면서 “러시아 경제는 올해와 내년에 위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도 당장은 러시아 사업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러시아 경제 침체에 의한 실적 하락을 간과할 수는 없는 만큼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나라의 모든 것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지 기업 활동은 정상적으로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전쟁을 무리하게 끌고 가다 보면 사회에 축적된 자본을 사용하게 되고 비용이 감당되지 않는 시기가 온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이런 식으로 사회에 축적된 자본이 고갈된다면 경제가 결국 주저앉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1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연재기획 ‘반대세의 비밀’ 
연재소설 ‘최초의 당신’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