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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제국의 빛’ [227] 백성과 황제의 소통
그대들의 민심은 어떠한가?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04 06:30:10
 
 
황제의 칙유 읽기를 마친 후 권재형이 물었다.
 
이처럼 폐하의 타이름을 받들었는데 그대들의 민심은 어떤가?”
 
황송합니다만민공동회 회원들이 답했다.
 
만민회 회원들은 회의를 열고 다음과 같이 논의했다.
 
폐하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지척의 거리에서 폐하를 뵈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 4천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기회를 틈타 백성들의 생각을 폐하께 전달합시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다섯 가지였다. 독립협회 복설, 대신의 택임, 보부상의 혁파, 규정에 따른 법령 실시, 조병식·유기환·이기동·김정근·민종묵·홍종우·길영수·박유진의 처형 등이었다. 그들의 요구에 대해 황제는 이렇게 답했다.
 
그대들의 요청을 수용한다. 아직 시행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앞으로 시행될 것이다. , 복설된 독립협회는 국내 문명을 진보시키는 일을 토론하는 것에만 국한하고 정부에서 시행하는 조처에 대해 간섭하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홍종우·길영수·박유진은 보부상 두목이니 사이좋게 지내도록 하라.”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만세삼창을 하고 물러갔다.
 
오후 4시가 되자 황제는 보부상 200명을 불러 마주하고 유시한 뒤 보부상의 청원을 들었다. 그들은 상리국(보부상 전담기구)과 임방(보부상 본부)의 복설, (독립협회와 같은 뿌리인) 만민공동회의 폐지, 조병식 등 8명의 석방 등 3개항을 상주했다. 그러자 황제는 이렇게 칙유했다.
 
원래 상리국은 농상공부와 같은 성격이므로 결코 허가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이 생업에 편안히 종사할 수 있도록 농상공부에 지시해 적절히 처리하도록 할 것이다. 독립협회는 성질을 전과 다르게 바꾸도록 이미 지시를 내렸다. 죄인들의 경우 마땅한 재판을 열어 그 죄의 유무에 따라 처분할 것이다.”
 
보부상들 또한 만세삼창 후 물러갔다. 황제는 오후 6시에 번갈아 내리는 눈비 속에서 궁궐로 돌아갔다.
 
광무황제는 18981128일에 독립협회 회원 17명을 중추원 의관에 칙임했다. 독립협회 지도부는 백성과 임금이 직접 교감하는 일군만민 방식의 청원과 조치를 통해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123일 독립협회 지도부는 정기회를 갖고 토론회를 개최하였는데 참석자는 회원 총수 4773명 중에서 271명에 불과했다. 4502명이 불참한 것이다. 박영효는 일본에서 자금을 보내고 자신의 수하들을 입국시켜 배후에서 선동을 계속했다. 진고개 등 서울의 일본인 거류지에서 돈을 물 쓰듯 하는 이규완·황철 등에 의해 조종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박영효·안경수 끄나풀들이 맹렬히 활동했다.
 
126일에는 회장인 윤치호의 만류를 제치고 민회를 재개하여 상소운동을 다시 전개했다. 이들은 반촌(성균관 부근)·왕십리·안암동 등지의 빈민 1200명을 고용해 무장경비대를 만들고 정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어 갔다. 120일간의 만민공동회 기간 중 식비와 무장경비대(7000여 명) 유지비용이 막대하게 들어갔다. 자발적 의연금으로 비용을 충당할 수 없게 되자 서울의 대상인을 상대로 강제로 돈을 빌렸다. 이렇게 되자 만민공동회는 서울의 유력자 그룹의 따돌림을 받았다. 이때부터 독립협회에서 민심이 떠나고 독립협회를 규탄하는 상소가 전국적으로 답지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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