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연재소설
역사소설 ‘제국의 꽃’ [239] 궁내부와 내장원
내장원경이 궁내부를 관할
최문형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20 06:30:10
 
 
 
 
궁내부의 강화는 아관망명 이후 왕권과 국권을 재건하고 강화하기 위해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 궁내부는 갑오경장당시 왕권을 제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인데, 광무 황제는 왕권을 재수립하는 목적으로 활용했다. 경운궁 가까운 필동 부근에는 여전히 왜군 700-8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고, 진고개에는 왜인 거류지가 있고, 남산에는 왜성대가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광무 황제는 새로 충원된 근왕 세력으로 구성된 궁내부로 권력과 재력을 집중시켰다. 의정부와 정부 부처는 일상 행정과 민원을 처리하는 서정 기구로 격하되어 광무개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황제 주도의 근대화 정책을 위해서는 넉넉한 궁중재원의 확보가 필요했다. 광무 황제는 일본군과 일본공사관이 들여다볼 수 없는 망명지인 경운궁 안에 궁내부 내장원을 두고 이곳에 재정 권한을 집중시켜 정부재원을 이관하고 수세권을 확대했다. 전국의 광산을 내장원 관할로 만들고 홍삼 전매를 직할했고 각종 잡세 징수를 강화했다. 항일독립투쟁을 위한 국내망명 임시정부의 비상계엄체제 운영에 있어, 일군만민의 황제 전제체제와 황제의 재정독점 체제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
 
개혁을 전담할 기구로서 궁내부의 강화는 조선정부가 개화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한 이후 지속되었다. 광무 황제는 전제권에 대한 보강책으로 궁내부를 강화하여 의정부를 정책 기구로, 궁내부를 집행부로 하는 의정부·궁내부 양부 체제를 갖추었다. 광무 황제는 국제 반포 이후 궁내부 기능을 대폭 확대하여 1902년에는 6개 특별과와 26개 원··사를 가진 권부로 발전시켰다. 6개 과를 가진 내장원을 비롯해 근대화사업과 관련된 새 기구들은 모두 궁내부에 배속되었다. 친일파와 일제 밀정들에 의해 침윤된 의정부 산하 각부는 기존의 서무 행정을 수행하는 데 그치게 하는 반면, 근대화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관서는 모두 궁내부 소속으로 전환해 황제가 직접 통제할 수 있게 했다.
 
내장원은 궁내부의 조세 수입과 재정을 총람하는 기구였다. 궁내부 대신은 종친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임명되었는데, 이재순과 민영규가 오래도록 재임했다. 궁내부의 실질사무는 사실상 황제의 최측근 신하인 내장원경 이용익에게 전적으로 이관되었다. 고종은 이용익의 신분적 한계 때문에 궁내부대신에 임명하면 기득권세력의 반발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궁내부 대신 자리는 비워 두고 내장원경이 궁내부조직을 모두 관할토록 했다. 이용익은 1899년부터 내장원경으로 보직되어 궁내부를 총지휘했다.
 
왕실 재산과 궁내부 재정을 관리하는 내장원은 산하에 장원과·종목과·삼정과·공업과·기록과·전생과 등을 두고 역둔토세·홍삼전매 수입·잡세 등 막대한 재원을 관리하면서 근대화 개혁자금을 마련했다. 또한 1899년 이후에 식산흥업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통신사·철도원·서북철도국·광학국·관리서·수륜원·평식원·수민원·박문원을 설치했다. 특히 철도원은 19004월 농상공부의 철도국을 폐지하고 신설한 것이다. 서북철도국은 경의선·경원선 철도부설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여 서울-개성 구간 철도를 부설했다. 하지만 나머지 구간은 일제의 방해와 자금 부족으로 추진할 수 없었다.
 
[글 최문형 그림 박서현]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