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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제1회 열린포럼 ‘호남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를 통해 두 편의 중요한 글이 발표됐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 연대 대표의 ‘호남과 대한민국’, 이양승 국립군산대 교수의 ‘전라도 시스템 부재와 비정상적 과열’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도약과 국가 통합을 위해 가장 절실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역사적인 글이다.
대안도 제시됐다. 이 교수는 세계적 망신을 산 2023년 새만금잼버리 사태를 호남 문제의 총체적 집약판으로 짚으며 지방자치 30년 이래 사실상 일당 독재가 실현된 호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열거했다. 호남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교수 글의 ‘이것이 발전 전략이다’ 부분을 보자.
시스템(견제‧균형·감시) 부재… 모든 문제의 출발점
오랜 화두였던 균형발전의 논리 아래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이 거론돼 왔다. 그런데 권한을 대폭 넘겨받는다고 지방이 무조건 발전할까? 지방자치가 흥청망청 재정을 탕진하는 ‘지방 잔치’ 판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없나 따져 볼 일이다. 견제와 감시가 없는 가운데 권한만 이양되면 더 큰 독재 권력이 등장할 수 있다.
호남의 엉터리 지방자치는 지자체의 권한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부재로 빚어지는 자멸 현상이다. ‘선(先)자치 후(後)분권’이 순리에 맞다. 권력 교체가 없는 곳에선 ‘분권’ 자체가 독성을 발휘하기 쉽다. 내용상 호남은 ‘독재’ 중이다. 지방분권 강화는 그 독재 권력의 권한을 더 강화해 주는 격이다.
끼리끼리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호남의 ‘권력 피라미드’가 해체되길 바라는 건 현시점에서 무리다. 앞서 언급한 ‘기대의 자기 실현성’으로 어느 누구도 권력이 바뀌리라 기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꼭 필요한 게 지방선거 공천제 폐지다. 대다수 국민은 정당 공천제를 반대한다. 이것은 여론조사로도 드러난 사실이다.
호남엔 민주주의가 외침으로만 존재한다. 공권력을 부정하거나 ‘투사’를 맹목 추종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투사’를 떠받드는 사람들, 그들을 또 밑에서 떠받드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층층시하 권력 피라미드의 서열이 있다. 일단 중앙에 ‘줄’이 있어야 한다. ‘줄’ 없으면 뜻을 펼칠 수 없다. 지방 현장에서 의제를 발굴하러 다녀야 할 사람들이 서울에서 ‘줄’을 찾으러 다닌다는 게 말이 되나.
유권자의 선택권을 박탈한 꼴인 무투표 당선자(단일후보로 선거 없이 당선 확정된 사람)가 2022년 지방선거에서 2018년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늘었다(86명→494명). 전체 선출 인원의 12%가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당선된 셈인데 주로 호남 지역에 몰려 있다. 이게 정상인가? 이런 ‘몰아주기’ 투표 행태가 전라도를 더 망하게 한다.
특히 정당 공천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현행 정당 공천제엔 수직 계열화를 통해 지자체장들과 지방의원들을 통제하려는 중앙당의 의도가 숨어 있다. 공천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반대한다. 자기와 비슷한 생각의 사람과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는 되지만 그런 의식을 버려야 한다.
정치 시장에도 적당한 긴장과 경쟁이 필요하다. 그게 시스템이다. 상품 시장에서 독과점을 금지한 이유는 시스템, 즉 경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따지고 보면 독과점 기업들 모두 노력해서 독과점 지위에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선진국들에선 법 제정을 통해 독과점 기업들을 규제한다. 그래야만 장기적으로 시장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시장의 경쟁이 정치인들 입장에선 반가울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정당 공천제 폐지 문제가 나오면 반목·대립하던 여야도 협력해 ‘정당 공천 폐지’를 폐지시킨다. 정치 시장의 수요자인 유권자에게 더 많은 ‘정치 상품’을 공급해 줘야 사회적 후생이 증대된다. 경쟁이 없으면 견제와 균형도 없다.
물론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간에 호흡이 서로 잘 맞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진정 지역 발전을 위한다면 지방의회만이라도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게 맞다. 지역에서 국회의원·단체장·지방의원 모두가 한 팀으로 구성된다면 견제와 균형이 어디서 나오나? 이런 게 독재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방식으로 생활 속에 독재가 실현돼 왔다.
호남 딜레마 극복하려면… 정보 공개·주민 옴브즈맨 제도부터
호남 지역의 모든 것들이 저평가돼 온 현상은 새로울 게 없다. 이런 부정적 인식과 편견은 왜 발생했을까. 그것은 정보 부족 내지는 정보 비대칭에 기인한다. 낮으면 낮은 대로 평가받는 것이 시장원리다. 노력한 만큼 가져가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다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저평가일 때는 억울하다.
이를 극복하려면 자기 정보의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 전라도를 다녀 보면 좋은 것들, 좋은 사람들 많지만 편견이 조장되면 그 지역의 모든 가치가 하락한다. 이에 호남이 억울함만 느낀다면 ‘시스템 부재’의 결과를 증명하는 꼴이다. 그 내부에서 그 룰에 따라 다같이 움직이기에 내부 사람들은 절대 ‘시스템 부재’를 알아채지 못한다. 이상을 느낀다 해도 웬만한 ‘똘끼’ 아니면 말을 못한다.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모든 호남 문제의 시발점이다. 정상적인 민주국가 어디를 가나 다 갖춰져 있는 기본적인 것들, 이른바 견제와 균형·권력 분립·감시 같은 기능이 전혀 없다. 중앙정부와 싸워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호남에선 부지런한 사람들·게으른 사람들·정직한 사람들·비열한 사람들 모두 비슷한 행동 패턴을 갖고 있다. 불이익이 두려워 홀로 올바를 수 없는 것이다.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지방정부가 나서 자발적·적극적으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 사실이 아닌 것·부풀려진 것을 밝혀 그 지역의 가치가 더 추락하지 않게 해야 한다. 호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부패‧비효율과 도덕적 해이에서 온다. 투명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정보를 감출수록 유리한 사람들은 투명성을 싫어한다. 따라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주민에겐 알 권리가 있다. 모든 정책은 형성 단계를 비롯해 결정·집행·사후관리에 이르는 전 과정이 공개돼야 하고 주민이 그 공공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정보공개제도는 범위가 제한돼 있고 예외 규정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 정보공개의 범위를 대폭 확대해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도록 제도를 고안하자. 잘못된 행정을 고발하고 지역의 각종 비리를 척결할 수 있도록 주민 옴브즈맨 제도의 도입도 필요하다.
지방자치 본질에서 멀어져 온 호남 지방자치 30여 년
지방자치란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성 확보에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단체장이 감시와 견제에서조차 자유로워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같은 정당 공천제하에선 지자체장에 대한 감시가 어렵다. 그래서 감시 기능이 꼭 있어야 하며 지역 주민이 그런 기능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지방자치는 폐쇄적‧수직적 권력구조를 개방적‧수평적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인구 이동성이 낮고 지역 연고가 강한 지자체들의 경우 해당 지역 토호들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지방자치제로 오히려 지역사회 폐쇄성과 각종 부조리가 늘어난다는 지적이 많아졌다.
주민의 무관심, 지역 정치인‧토호들의 결탁 등으로 호남의 지방자치는 본질에서 멀어져 왔다. 또한 특정 정당 소속 정치인들에게 권력이 집중됐다. 권력 집중은 반드시 지역을 망하게 한다. 주민의 정치 참여를 제한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 기능을 무력화시키기 십상이다.
지역 주민에게 정책 결정권이 이양될 필요도 있다. 정책 입안 단계부터 주민 참여제를 도입해 대안이 마련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열린 정책 네트워크다. 그러한 정책 네트워크에 주민이 참여함으로써 행정이 투명해지고 신뢰가 쌓일 수 있다.
지방 재정 개혁 또한 절실하다. 지자체에선 예산을 공돈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지자체장에겐 자기가 직접 벌지 않은 이 공돈을 마구 쓸 유인이 발생한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선 재정 정보공개가 시급하다.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주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받아야 한다.
지자체장의 공무원 인사권 장악으로 ‘줄서기’ 내지 충성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 역시 개탄스럽다.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인사 중립성 확보를 위해 담당 공무원에 대한 정보도 공개돼야 마땅하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계속 거론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지역 정치인들의 무능과 부패다. 무능한 정치인일수록 금권선거 유혹에 더 쉽게 빠져든다.
과거 한국인은 선거 때 모든 게 ‘대목’이었다고 한다. 표를 얻고자 대접하고 인심 쓰듯 나눠 주며 그런 과정에서 정을 느끼곤 했다. 그런 ‘고무신 선거’ 체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선거 출마자라면 돈을 많이 쓰면서 향응을 제공해야 지역민에게 성의를 보이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아직도 시골엔 그러한 향응을 정치로 오해하는 유권자가 많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진심을 가지고 정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회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뜻을 접게 된다. 이렇게 정치를 해야 할 사람들이 정치 시장에서 빠져나가고 절대로 해선 안 될 사람들이 꼭 정치를 하려 든다. 정치 시장엔 불량품들이 넘쳐나 지방자치체가 오래될수록 훌륭한 인물 대신 수준 미달인 존재만 나서게 된다. 전형적인 역선택 현상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지방은 이런 역선택으로 스스로 망해 가고 있다.
조선왕조 유습이 강한 호남… 개방성·유연성 부족이 근본 문제
중앙정부를 향해 지방 인프라 투자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도시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대 글레이저 교수는 거대한 건물을 짓기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야 도시가 발전한다고 역설한다. 도시에선 사람들이 모임으로써 혁신적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단순한 물적 조건에만 달려 있지 않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 흡인력이 필수다. 흡인력이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와 ‘편의로움(amenity)’이다.
사람들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는 게 단순히 좋은 일자리 때문이라면 일자리를 이전하면 된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실패했다. 지방에 혁신도시를 건설한다 해도 인적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허사다. 주중에만 머물다가 주말이면 썰물처럼 서울권으로 빠져나간다. 서구엔 중세에조차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상당한 양성평등 국가 대한민국이지만 지방엔 전통적 관습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여성들을 더 불편하게 할 측면이다. 특히 여성들이 호남을 가장 회피할지 모른다. 호남 발전을 위해선 물적 인프라 구축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적 합리주의’ ‘다양성’이다. 정당 지지에 있어서도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한 환경이 절실하다.
지방은 한국 평균에 비해 더 폐쇄적이며 수직 서열화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은 지방정치를 더욱 폐쇄적이게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면 중앙에 물어 ‘허락’을 구해야 한다. 폐쇄적인 환경에선 연고주의가 심화될 수밖에 없고 부정부패도 더 많아진다.
연고주의는 ‘줄·빽’ 시스템을 구성하기에 결코 개방적인 지방정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이것은 도덕심의 문제가 아니라 유인 체계의 문제다. 피라미드 같은 조직을 만들어 놓고 구성원들에게 서열을 부여한다면 구성원들로선 그 수직적인 조직의 공고한 유지가 최선의 전략이 돼 버린다.
지역 정치인들의 성찰을 촉구하는 바이다. 줄을 대기 위해 서울을 드나들며 중앙 정치인들에게서 서열을 부여받아 피라미드로 들어가려고만 해선 안 된다. 먼저 자기 지역에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 그런 식으로 지역민과 호흡을 같이 하며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해 달라고 호소하는 게 옳다.
비판을 수용하며 실패 요인들을 찾아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지자체의 현실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고 지자체장 본인도 훌륭한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자체장이 지역에서 인정받고 업적을 남겼을 때 자연스럽게 중앙에 진출할 기회가 열려야 한다. 지방정치가 패권 경쟁으로 전락할 때 이 나라 정치는 당쟁과 사화의 조선시대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 속에선 모든 것이 서열화된다. 서열은 차별을 낳으며 폐쇄성으로 이어진다. 폐쇄적인 나라는 외부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망한다. 조선왕조는 폐쇄적 시스템 때문에 망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폐쇄적인 지역이 호남이다. 몰아주기 투표 행태가 그 증거 아닌가.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조선시대 유습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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