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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제1회 열린 포럼 ‘호남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에서 주목할 만한 두 편의 글이 발표됐다. ‘호남과 대한민국’(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그리고 ‘전라도 시스템 부재와 비정상적 과열’(이양승 국립군산대 교수)은 이 방면 문제 제기의 결정판이다.
주 대표가 ‘호남 혐오’의 역사적 연원과 그것이 현대사에서 전개된 양상을 논하며 애정어린 ‘호남 비판’을 촉구했다면, 이 교수는 30년 지방자치를 통해 사실상 독재가 뿌리 내린 호남 현실의 속살을 드러내며 민주(견제·감시)시스템 부재가 모든 문제의 본질임을 지적하고 질타했다. 다음은 개선을 위해 이 교수가 제시한 ‘이것이 발전 전략이다’의 후반부다.
‘빨강’ ‘파랑’ 몰표권보다 ‘보라색’ 동네가 유리?
미국엔 ‘빨간색(공화당)’ ‘파란색(민주당)’ 외 ‘보라색(지지 정당 혼재)’ 주들이 있다. 실익은 이들 ‘퍼플 스테이트(보라색 주)’에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를 오간다 해서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라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미 동부와 서부는 민주당, 남부와 중서부에선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다. 플로리다와 오하이오처럼 선거 때마다 승리 정당이 달라지는 보라색 즉 스윙 스테이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한국에선 충청권이 보라색에 가깝다. 게임이론 시각에서 볼 때 다른 지역들과 달리 ‘혼합전략’을 구사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혼합전략’이란 뭔가 하나를 완전히 선택하지 않고 일정 빈도로 다양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어떤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 예상 못 하도록 ‘헷갈리게’ 하는 셈이다. 그 지역 유권자들 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에 각 정당이 그곳 민심을 얻고자 더 노력할 터라 매우 유용한 투표 전략일 수 있다.
실제 대선은 항상 충청권에서 더 많은 지지를 얻는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됐다. 충청권에서 표를 완전히 몰아주지 않고 ‘조금’ 더 줘서 이긴 것이다. 그렇게 표를 ‘조금’ 더 줬건만 각 정당은 그 지역 민심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 민심이 돌아서면 정권 창출도 유지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지역들은 특정 정당 후보에게 몰표를 주지만 결과적으로 더 낙후된다. 표 몰아주기가 두드러지는 전라도와 경북에서 고령화가 빨라 지방소멸 지수가 전국 최고인 게 우연이 아니다. 전라도가 더 심각하다. 재정자립도 개선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잘못된 투표 전략을 고수한다면 지역 소멸은 더 빨라질 것이다.
지역 발전을 위해 기존 ‘합종책’ 대신 영·호남 ‘연횡책’ 절실
호남의 지역 발전 파트너는 수도권에 사는 출향민이 아니다. 그들은 고향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다르다. 지역발전을 위해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는 쪽은 오히려 영남 ‘지역’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수도권~호남 또는 수도권~영남이 연합해 정권을 창출하는 ‘합종책’의 전략이 대세를 이루어 왔다. 그런데 이것에 가장 타격을 입은 지역이 역설적으로 호남이었다.
이제는 ‘연횡책’이 필요하다. 지역발전을 위해 호남과 영남의 협력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토너먼트에 ‘와일드카드(출전 자격을 따지 못했지만 특별히 출전이 허용되는 선수나 팀)’라는 게 있다. ‘패자부활전’ 즉 2등 경쟁이 이것의 본질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와일드카드 쟁탈전인데 격렬하면서 극단적이다. 일회적·비협력적인 제로섬게임(승자독식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호남 또는 영남 한쪽의 승리는 반드시 다른 한쪽의 패배를 의미하게 된다. 그 사이의 중간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극단적인 2등 경쟁이 갈수록 소모전으로 치달으며 모두 패배자가 돼 왔다. 미래가치를 생각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간 분열은 서울권만 이롭게 한다. 수도권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방 출신이지만 이제 서울 사람이며 서울 입장에서 생각할 뿐이다. 당연히 자신들의 고향보다 수도권의 자산가치가 더 오르길 바란다. 이들은 지방에 대해 서울 토박이들보다 더 심한 편견을 갖기도 한다.
수도권에서 ‘분위기’만 깔아 주면 지방은 무조건 ‘묻지 마’ 지지를 해 줄 것을 피차 안다. 그런 ‘묻지 마’ 지지가 바로 지역 정책을 실종시키고 인구 유출이 일어나게 만들었다. 이제 호남과 영남이 반목을 끝내고 연맹해야 한다. 지금까지 인구 및 자원 이동은 물론 선거전략도 세로축에 따른 합종책 일색이었지만 연횡책이 절실하다. 가로축 교통인프라를 구축하고 영·호남 연맹을 긴밀히 할 때다. 그게 진정한 균형발전 전략이다.
호남은 ‘전략의 순차성’을 이해해야 한다. 수도권 쏠림 방지를 위해 영남과 협력한 다음 순차적으로 호남 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서울권·호남·영남이 동시 경쟁을 해 자원을 배분할 경우와, 서울과 지역 연맹체가 먼저 경쟁한 후 그 연맹 내에서 지역 간 자원을 배분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동시 경쟁일 경우 매번 서울권이 승리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것으로 귀결되게 되어 있다. 순차 전략을 쓰면 호남과 영남이 주기적으로 한 번씩 승리하게 되므로 자원배분의 형태가 달라진다. 호남과 영남은 후자일 때가 항상 유리하다. 지역발전을 위해 영·호남 연횡책이 필요한 이유다.
새만금사업… 오디세우스 전략이 필요하다!
새만금사업은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에 가깝다. 오로지 선거용이었던 셈이다. 사업이 시작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역대 정부가 계획을 여러 차례 수정 내지 변경해 전북 도민들마저 새만금의 사업 목적을 잘 모른다. 관심도 줄어든 가운데 새만금은 목적과 가치를 잃어 가고 있다.
선거 때마다 온갖 정치 세력들이 몰려와 사진 찍고 요란을 떨지만 끝나면 깡그리 잊혔다가 다음 선거 국면에서 다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그렇게 30년 지난 지금 제대로 이뤄진 건 방조제가 완공돼 선유도까지 차로 갈 수 있다는 것뿐이다. 환경단체들은 지금도 ‘새만금사업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몇 년을 주기로 새만금은 그 목표와 용도가 재조정되곤 했다. 이런 불확실성이 민간투자 유치엔 최악의 조건으로 작용한다.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사업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변경되면 누가 투자하려 하겠나. 원래 새만금은 천혜의 갯벌이었다. 호남평야를 일군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로 흘러들어 장구한 세월을 거치며 갯벌을 빚어냈다. 백합과 농게 등 어패류가 풍성했고 수많은 어민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거대한 갯벌이 막장 정치의 불쏘시개가 된 것은 1987년 대선 때부터다. 득표력이 취약했던 여당 노태우 후보가 전주 유세에서 만경강 하구 갯벌을 메워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렇게 시작된 새만금 간척사업이 선거 후 예산조차 배정받지 못한 채 묻히는 듯했다. 득표를 위해 공약은 했지만 천연 갯벌이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쯤 정부에서도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차라리 그 시점에서 백지화되었다면 희대의 국민사기극은 막을 수도 있었다.
새만금을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끌고 들어간 사람은 야당 총재 시절의 김대중(DJ)이었다. ‘중간평가 유보 및 사업 추진’과 ‘지방자치제 시행’을 노태우와 DJ가 각각의 필요에 의해 합의했다. 새만금 사업비 200억 원이 추경 예산에 편성됐고 그해 새만금 방조제 축조가 시작됐다. 이후 새만금은 전북 도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숙원사업이 됐다.
이 사업은 군산~부안을 잇는 방조제를 축조해 간척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1991년 11월 첫 삽을 떴다. 1992년 대선 때 여당 후보 김영삼(YS) 역시 새만금 사업 적극 추진을 공약으로 내밀었다. 그러나 1996년 시화호 오염 문제가 불거지자 새만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역설적이게도 새만금사업이 처음 중단된 것은 DJ 집권 이후다. 1998년 감사원 특별감사가 시작돼 1999년 4월 공사는 중단됐다.
그런데 DJ정부는 민·관공동조사단을 만들어 사업타당성 재검토에 들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2001년 5월 새만금사업이 재개됐다. 당시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은 DJ에게 농지보다 갯벌인 게 더 가치가 있다며 매립공사 중단을 조언했다는데 대선후보 경선에서 태도를 바꿨다. 새만금사업에 찬성 뜻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대통령이 되자 재검토를 언급해 새만금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착실하게 진행되던 방조제 건설사업마저 여러 단체의 소송에 밀려 수차례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방향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참으로 황당한 게 환경단체 의 행보였다. 그들은 최종 물막이 공사를 남겨 놓고 ‘새만금 살리기 국민운동’을 벌였으며 이를 둘러싸고 국론 분열이 일어났다.
환경단체에 따르면 하구 갯벌인 새만금은 세계적으로 2%밖에 안 되는 희귀 자연이다. 생태관광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를 보자면 새만금 갯벌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환경단체는 새만금 갯벌의 생태·경제적 가능성을 제고하고 그 세계적 자연 자원을 지키는 것이 전북에도 유리하다는 주장을 폈다. 새만금 갯벌이 그토록 소중했다면 왜 진즉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지 않았을까?
최종 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국민 운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거기 동참했던 사람들에게 정말 새만금 갯벌에 관심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다 만들어 놓은 세계 최장 방조제를 다시 없애자니 터무니없는 주장이었다. 매몰비용이 너무 컸다. 결국 ‘새만금 사업을 계속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방조제가 준공된 이듬해 비로소 정부는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제 그 내부를 어떻게 채우느냐를 놓고 논쟁이 시작되었다. 새만금 내부 매립토지 활용 방안을 놓고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노무현정부에선 ‘7대 3’ 즉 여의도 약 140배인 내부 토지의 72%를 농지로, 나머지 28%를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구상이었다.
실용성을 강조한 이명박(MB)정부가 ‘7대 3’을 ‘3대 7’로 바꿨다. 농지를 대폭 줄이고 산업 용도의 비율을 높인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대(對)중국 교역에서 새만금 의 역할을 강조했다. 중국과 함께 ‘한·중 경협단지’를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내부 토지를 산업과 관광·레저·배후도시·생태환경 등 6개 지구로 분할해 국제도시로 개발하자는 다른 안도 제시됐다.
갈팡질팡 하는 사이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새만금의 용도가 재생에너지 중심지로 또 바뀌었다. 30년을 이어 온 새만금의 역사는 한마디로 ‘양치기 소년’의 그것이었다. 노태우정부에서 출발한 새만금사업은 방조제 하나 건설하는 데 약 20년을 허비했다. 당초 계획상 2004년 완공됐어야 할 새만금사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민족 유사 이래의 최대 국책사업이고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면서 정작 국제공항이 없다. 해외에서 인천까지 비행기로 오는 것보다 인천에서 새만금까지 오는 길이 훨씬 힘들다고 한다.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려 했다가 상대가 항공편을 알아보다가 취소되는 경우도 있다. 인천공항에서 차로 4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하면 대개 난색을 표한다. 돈을 주고 오라 해도 안 오는 판에 누가 돈을 쓰러 오겠나.
그래서 공항부터 짓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몇 년 전 새만금공항 건설 결정 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및 예산 확보가 이뤄졌다는데 아직 착공도 안 됐다. 새만금 국책사업이 표몰이 수단으로 이용돼 온 것 같다. 이제라도 정부가 사업 목적을 분명히 해서 사업이 정략적으로 활용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새만금 사업은 항해 중인 배와 같다. 가장 큰 난관은 세이렌의 유혹이다.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자신을 기둥에 묶었다. 새만금도 목적을 분명히 정하고 다시는 목적 변경이 없도록 스스로를 묶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만금 사업은 계속 표류할 수밖에 없다.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묶어 유리함을 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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