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풍경 낯선 여행] 거제도 두 개의 요새 ‘매미성’ ‘지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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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한 사람이 쌓고 있는 매미성
바다의 요새·원시 동백나무 숲 지심도

거제=임유이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1-27 12:03:16

당장 ‘반지의 제왕’을 찍어도 괜찮을 것 같다. 중세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매미성’은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현재 가장 핫한 여행지로 꼽힌다. 이 거대한 성을 짓고 있는 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백순삼 씨다.

2003년부터 한 땀 한 땀 손으로 쌓은 성이 9m 높이에 길이가 130m에 이른다. 첫 삽을 뜬 지 20년이 지났지만 작업이 현재진행형이므로 얼마나 더 규모가 커질지 알 수 없다.

그는 왜 홀로 성을 짓고 있는 걸까. 이야기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매미에는 매미로 맞선다

그해 9월 태풍 매미가 경남지역을 강타했다. 무서운 파괴력이었다. 4조2000억 원의 재산 피해가 나고 사망·실종자도 132명에 이르렀다. 매미는 1959년 사라 이후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꼽힌다.

당시 백 씨는 복항마을에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은퇴 후를 대비해 2000년 사둔 것이었다. 그런데 그해 매미로 인해 공들여 키운 농작물이 모두 쓸려가 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 올지 모르는 태풍에 대비해 성을 쌓기 시작했다. 따로 건축 공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주변과 어우러지도록 미적인 것을 고려했고, 조경에 신경 썼으며, 상층부 움푹 파인 곳에는 연못을 조성했다.

매미성은 외관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생활 편의를 위해 상수도·하수도 시설도 마련했고 지하 공간에는 패트병을 이용한 자연 친화적 조명시설까지 갖추었다.

보통 성곽은 군사적 목적에서 짓는다. 한양도성만 해도 수도 방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매미성은 사람의 침입이 아닌 자연재해에 대비한 성곽이다.

한해 40만 명이 찾는 관광지

매미성이 방송을 타면서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몰려들더니 지금은 한 해 40만 명이 찾을 만큼 거제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됐다.

매미성 자체도 큰 볼거리지만 주변 경관도 빼어나게 아름답다. 성채 아래에는 드넓은 몽돌해변이 펼쳐져 있으며 푸른 바다 저편에는 가거대교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부쩍 늘어난 관광객으로 매미성 부근에는 카페와 기념품점이 들어섯다. 거제시에서도 부랴부랴 도로를 정비하고 버스 정류장과 공영 주차장 시설을 마련했다.

매미성이 인기를 끌면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장목면 흥남해수욕장도 방문객이 늘었으며 바로 옆 작은 섬 이수도 역시 매미성 덕에 관광객이 증가했다.

▲ 매미성에 오르면 푸른 바다 저편 가거대교를 볼 수 있다. 임유이 기자

매미성이 순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2020년 말 공유수면 무단 점용 논란이 불거졌다. 성을 쌓을 때 제대로 측량을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매미성이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자연재해 방지에도 기여를 한 건 사실이지만 행정적으로는 엄연히 불법 시설물인 것이다.

일반적인 해결법은 원상복구였으나 워낙 튼튼하게 지은 건축물이라 해체가 쉽지 않을뿐더러 성을 부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백 씨가 거제시에 매미성을 무상으로 기증하고 500만 원의 변상금을 무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백 씨는 운영자 역할을 맡았다. 서류 내용은 변경되었지만 실질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그는 여전히 성을 쌓고 있다. 성은 느리지만 순탄하게 규모가 확장되는 중이다.

성곽도시 거제 그리고 지심도

거제는 매미성이 지어지기 전부터 성곽도시로 불렸다. 삼국시대부터 쌓은 성곽의 흔적이 20여 곳에 이른다. 조선 시대에는 5개의 수군진성이 있었고 임진왜란 시기에는 일본이 4개의 왜성을 축성했다. 거제는 남해안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현재 확인된 성은 왜성을 포함해 24곳이나 되지만 조선 시대 산성인 중금산성 외에는 사료가 부족해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지심도는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원시 동백나무숲이 잘 보존된 아름다운 섬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1개 중대가 주둔하면서 요새화됐다. 지금도 섬 곳곳에는 일제가 남긴 군사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헌병대 본부·전등소장 관사·해안포대·포대 관측소 등은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광복 후 지심도는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는 해군의 요새로 활용되었다. 거제시로 소유권이 이전된 게 불과 2017년의 일이다. 소유권 이전 과정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70년간 섬을 지켜온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무단 점유자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