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에 12일 개봉한 ‘시빌워’(Civil War)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 ‘시빌워’ 하면 남북전쟁(1861~65)을 가리키지만 여기선 일반적 의미의 ‘내전(內戰)’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자연히 남북전쟁의 역사적 문맥 속에서 이 영화를 체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영화 ‘시빌워’는 현대 미국을 배경 삼아 가상의 세계를 그린다. 예를 들어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서부군’으로 연합해 미국(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그 외 미국의 50개주 중 19개 주 역시 연방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설정이다. 내전에 이르게 된 경위나 맥락이 거의 생략된 채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같은 편인 서부군으로 묶여 있다.
실제 세계에서 각각 민주당·공화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는 상극이다. 따라서 영화가 애써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려한 셈이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인 11월 대선을 생각할 때 이 영화를 현실과 분리해서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1.6 의사당 사태가 발생해 충격을 줬으며 올해 대선에서도 불복과 그에 따른 심각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CBS의 1월 여론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51%는 ‘대선 패배가 평화적으로 수용될 것’, 49%는 ‘폭력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의 언행에 이목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가 형사 기소를 앞둔 지난해 3월 체포 가능성을 흘리면서 “잘못된 기소로 죽음과 파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하자 이를 ‘지지자들에게 사실상 폭력을 선동한 것’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가열됐다.
또 그해 8월 폭스뉴스 앵커 출신의 보수 논객인 터커 칼슨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미국이 내전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일찍이 본 적 없는 열정과 증오가 있다. 매우 나쁜 조합인 것 같다”고 짚었다. 4건의 형사 기소를 당해 이미 ‘성추문 입막음 돈’ 의혹 재판에 출석 중인 트럼프는 바이든정부의 ‘정적(政敵) 탄압’ ‘마녀사냥’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막대한 법률 관련 비용을 지출함으로써 선거자금이 축나고 시간과 이미지 타격도 예상된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입법부(의회)와 사법부(연방 대법원) 또한 좌·우로 분열돼 있다. 특히 낙태 문제를 둘러싼 연방대법원의 보수적 판결 이후 사회적 갈등이 더욱 선명해졌으며 대선의 향방은 더욱 가늠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가운데 미 영화사 A24가 ‘시빌워’를 개봉한 것은 아무리 흥행수입을 위해서였다 해도 대담한 시도라고 평가된다.
묵직한 주제 의식이 담긴 영화로 보이진 않으나 남북전쟁 당시를 연상시키는 내전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비비안 리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로 잘 알려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대표적인 남북전쟁 배경 작품이다. 사람들은 1935년 개봉돼 여전한 생명력을 가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연상하며 ‘시빌워’를 관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영화사 측 조사를 인용한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단 ‘시빌워’는 정치적 주별(州別) 흥행에 차이가 없으나 관람객이 보수·진보(좌·우)로 양분돼 있다. 현재 영화 ‘시빌워’의 인기는 최악의 상황에 대한 미국인들의 경계심이 반영된 것일 수 있고, 혹은 반대로 미국이 그 정도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 따른 것일지 모른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바버라 월터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샌디에이고) 정치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그런 종류의 일(내전)을 겪기엔 우리가 너무 착하다 여긴다면 순진한 생각”이라면서 “이미 아주 큰 내전을 겪은 바 있다”고 짚었다. 바로 2020 대선을 둘러싼 충돌을 가리킨 대목이다.
한편 트럼프가 영화 ‘시빌워’ 관련해 어떤 구체적 언급을 할지 주목된다. 협상의 달인으로 유명한 그는 자신의 관록을 과시하듯 1월 아이오와주 뉴턴 유세장에서 “남북전쟁도 협상을 통해 피할 수 있었다”며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유혈 참사를 피할 수 있도록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역설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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