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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대한민국 [9] 좌절의 극복
조국을 사랑한 마이클 이의 美CIA 40년 생생한 증언
마이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6 06:30:10
  
▲ 마이클 이(Michael P. Yi) 박사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대한민국과 CIA’를 지면에 연재한다.
 
 
 
잊지 못할 은사들
 
나는 국민학교(초등학교) 6년 내내 반에서 일등을 했다. 가림국민학교 제1회 졸업생 학적부 제1권 첫 페이지 첫 줄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 1949년 졸업식 날 재학생 송사에 이어서 내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읽었다. 그날 형은 내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나는 졸업 후 중학교에 간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지역에 중학교가 있지도 않았고 타 도시로 나갈 만한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후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가림학교 황용운 교장 선생님이 가난한 농촌 아이들을 위해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고 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이었다. 이 학교는 정식으로 중학교 인가를 받지 못하고 중학교 과정의 교육을 실시하는 간이학교였는데 나중에 정식인가를 받고 임천중학교(林川中學校)가 되었다. 그러나 형은 나를 이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6학년 때 담임이었던 김상기 선생님이 형을 찾아와서 나를 입학시험을 보게 하라고 설득했지만 형은 끝내 거부했다. 사립문 밖에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했지만 형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상기 선생님은 떠나면서 내게 형이 승낙하건 말건 무조건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시험장에 나오라고 했다.
 
입학시험장에는 임천면·양화면·세도면·충화면·장암면·구룡면 등 6개 면에서 모인 약 400명의 수험생이 이미 와 있었다. 학교 시설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중에서 우선 60명만 선발하는 입시였다. 김상기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가 연필 두 자루와 지우개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주고 시험장에 밀어 넣었다. 몇 개 교실에 나누어서 시험을 보는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수험번호가 맨 끝 번호였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김상기 선생님께 감사한다.
 
다음 날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갔다. 나를 보더니 김상기 선생님과 나를 아는 여러 사람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했는데 내가 수석합격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입학금을 면제받는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으나 마을 사람들의 이목도 있고 해서 내가 중학교에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고마운 박종학 선생님
 
19509.28 서울 수복 후 전방에서는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남쪽에서는 폐허가 된 시설을 복구하는 등 민생을 정비했다. 교회도 다시 문을 열어 주일 아침이면 이웃 마을에서 교회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중학교 동창생 양태영을 따라 이웃 마을 칠산침례교회에 나갔다. 집에서 정신적 안정을 찾지 못하던 나는 교회에 가서 마음을 달랬다. 얼마 후엔 성가대원이 되어 교회 생활에 마음의 닻을 내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어떠한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죽지 말고 오직 나만의 세계, 나만의 꿈과 목표를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나를 외면했다. 월사금과 기성회비 4개월분을 미납해서 퇴학 처분이 내려져 중학교 2학년 학년말 시험장에서 퇴장을 당했다. 그래도 나는 집에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계속 등교를 하면서 운동장 끝 나무 그늘 밑에서 독서를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담임 박종학 선생님이 교직원 회의에서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못 낸다고 전교 우등생을 퇴학시켜서야 되겠느냐며 구제할 것을 제안했으나 기성회의 규정이 엄해서 어쩔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그때 박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셨다. 이 일은 소문이 나서 기성회 임원들까지 알게 되었다. 다음 날 기성회 임원과 교직원 합동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박 선생님을 다시 불러들였으며 만장일치로 내가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참으로 특이한 사건이었다. 훗날 박 선생님은 서울 홍익대학교 교무과장을 끝으로 퇴직하셨는데 외동딸이 이대 약대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서 입학을 포기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등록금을 대납한 일이 있다.
 
특등 졸업
 
그렇게 해서 나는 학비를 내지 않고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특이한 일이 생겼다. 학교 사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우리 반에 공부도 잘하고 심성이 착한 윤상희라는 학생이 있었다. 학과 성적이 나와 비슷했지만 예능 과목에서 내게 밀려 1등을 못하고 그 친구는 항상 2등을 했다. 그런데 교직원 가운데 한 분이 내가 학비 면제 학생이니 성적 서열에서도 제외시켜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1등으로 졸업을 못 하고 윤상희가 1등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그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1952,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분명히 윤상희가 1등 성적표를 받았다. 나는 성적표를 받은 다음 바로 열어 보지 않고 화장실에 가서 열어 보았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성적표 좌측 상단에 빨간 글씨로 특등(特等)’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형은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도 기다렸고 선생님들도 기다렸지만 끝내 오지 않았다. 졸업식에서는 내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읽었고 교직원들과 학부모들과 재학생들이 모두 울었다. 내 가슴속에서는 가난에 대한 한()의 응어리가 자라기 시작했다. 그때 형편으로는 중학교 졸업이 내 학업의 종착역이었다. 다른 대책이 없었다. 졸업생 중 10여 명이 군산·강경· 부여·공주·대전 등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형이 장날 술 한잔을 하고 내가 앞으로 사용해야 할 농기구를 사 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내게도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밤에는 석유 등잔불 밑에서 늦도록 독서에 매진했다. 졸업 후 두 달쯤 되었을 때 그도 역시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 한 동창생 유병웅이 찾아왔다. 가출을 하자는 것이었다.
 
어정쩡한 고아원 생활
 
어느 날 밭에서 풀을 매다가 호미를 땅에 콱 박아 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길로 유병웅을 찾아갔다. 유병웅과 나는 30리를 걸어서 강경에 가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갔다. 평생 처음 타 보는 기차였고 처음 와 보는 대도시였다. 우리는 밤 9시쯤에 도착해 캄캄한 역전에서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묻고 물어서 인동 남쪽 산 밑에 있는 고아원 화림원을 찾아갔다. 중학교 2학년 때 지리 과목을 가르치던 유정식 선생님의 형님이 이 고아원의 원장이셨다. 그는 유병웅의 작은아버지이셨다. 원장님은 우리 둘을 반갑게 맞아 주고는 보모에게 인계했다.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보모 한 분이 와서 젖은 옷을 갈아입게 하고 따뜻한 밀가루 수제비 두 그릇을 가져왔다. 그날 밤 우리는 퀴퀴한 냄새를 맡으며 원아들이 지내는 넓은 방 한구석에서 선잠을 잤다.
 
그때 우리는 19살이었으니까 고아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나이였다. 우리는 50명이 넘는 원아들의 형님오빠 노릇을 하면서 학교 공부를 도와주기도 하고 원장님의 일을 거들기도 하면서 어색한 고아원 생활을 시작했다. 전쟁 중이라 보급이 불충분했고 무엇보다힘든 것이 식량 부족이었다. 우리들은 늘 배가 고팠다. 이삼 주가 지나서 원장님이 우리들을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깨진 유리창을 종이로 바르고 주변에 잡초가 무성한 대전 보문고등학교였다. 원장님은 우리 둘을 이 학교에 입학시켜 주셨다.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면서 나는 어정쩡한 고아원 생활을 했고 전쟁 고아들의 실태를 보면서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두르고 있는 푸른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을 지었다. 보문고등학교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날이 갈수록 이 고아원에서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배가 고파서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필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CIA(중앙정보국) 24)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CIA ·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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