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 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햇볕은 쨍쨍’이라는 동요의 1절 가사다. 기성세대 귀에는 익숙하게 들릴 이 동요 가사에는 화창한 날씨에 소꿉장난하는 아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2절의 “호미 들고 괭이 메고/ 뻗어 가는 메를 캐어”라는 가사에서는 먹을 것도 제대로 마련하기 어려웠던 혹독한 가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여러 가지 질환 치유의 약재로도 알려진 메꽃
이 가사에 실린 ‘메’는 여름철 흔히 만날 수 있는 메꽃의 땅속줄기를 말한다. 메꽃의 하얀 땅속줄기는 녹말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춘궁기에는 식량이 되기도 했다. 살짝 달콤한 맛을 내는 땅속줄기는 날로도 먹을 수 있다. 또 고구마처럼 찌거나 삶아서 혹은 곡식을 조금 섞어 죽으로 끓여 먹기도 했다.
땅속줄기는 번식력이 왕성해서 줄기를 반으로 갈라 다른 곳에 옮겨 심어도 쉽게 싹이 트는 데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도 있었으니 메꽃은 참 고마운 구황 식물이었던 것이다.
수년 전 동요 가사를 알아맞히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이 노래가 등장한 적도 있었는데 출연자들은 ‘메를 캐어’를 끝내 맞추지 못했다. 먹을 것이 넘쳐나 오히려 영양 과잉을 걱정해야 하는 요즘 시대에 메꽃 땅속줄기를 캐어 먹은 극빈의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메꽃은 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혈압과 혈당치를 낮춰 주는 효능이 있어 고혈압·당뇨병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메꽃의 땅속줄기는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며 방광염·요실금에 효과가 있고 남성 정력 증강을 돕는다는 기록도 있다. 이 외에도 콩팥 기능을 향상시키고 피부 결이 고와지게 하는 등 그 효능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일본에서도 오래전부터 메꽃이 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8세기 제45대 일본 천황 쇼무가 중병에 걸렸을 때 이 식물을 이용한 약을 먹고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설과 함께 메꽃의 치유력은 더욱 유명해졌다.
나라 도다이지를 세운 쇼무 천황
24세에 즉위한 쇼무 천황(聖武天皇·701~756년)은 후지와라 집안에서 황후를 맞이했는데 이 황후가 코묘 황후로 그녀는 황족이 아닌 일반 귀족 집안 출신 최초의 황후였다. 쇼무는 황태자가 요절한 후 장녀 아베 내친왕을 후계자로 삼았다.
코묘 황후 외의 다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었지만 딸을 후계자로 삼은 것은 당시 세력을 떨치고 있던 후지와라 집안의 영향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후지와라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황족이 천황 자리를 이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쇼무 시대에는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난 데다 천연두까지 유행했다. 쇼무는 거듭되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수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결국 헤이죠쿄(平城京·지금의 나라)로 돌아왔다. 이 무렵 불교에 심취한 쇼무는 국가의 위기를 물리치기 위하여 고쿠분지(國分寺)와 도다이지(東大寺) 대불을 건립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1709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대불전을 재건한 뒤 약 2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었던 도다이지 건축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기술자들도 기여했다. 나라현 소개 자료에 따르면 도다이지 건축 총감독은 신라 출신 목수였고 758년에 완공된 거대 청동 불상은 백제 출신 장인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749년 건강이 좋지 않았던 쇼무는 아베 내친왕에게 양위했다. 남성 천황이 여성에게 양위한 것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아버지 뒤를 이은 고켄 천황(아베 내친왕)은 정통성 논란과 황위를 둘러싼 분쟁에 일생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최초의 독신 천황이었기에 다음 황위를 누가 이을 것인가의 문제까지 안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고켄을 대신할 다른 천황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까지도 계속되었다.
비상 시 식량이 되어 주고 약이 되어 준 메꽃
메꽃의 약재로서의 효능은 ‘본초강목’이나 ‘동의보감’ 등 고전 의서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이 시대에 메꽃까지 약으로 써야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게다가 거의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하니 더욱 믿음이 가지 않는다.
또 메꽃이 쇼무 천황 치료에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도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중병’이라고 했을 뿐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으니 메꽃이 어느 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메꽃은 꽃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그 모양이 요란하지도 않아 눈앞에 두고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름철 메꽃이 우리와 가까운 곳에 지천으로 피어 있음은 분명하다.
‘아침에 피어나서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과 달리 제법 긴 시간 소박한 꽃 모양을 보여 주는 메꽃은 배고프고 약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꾸준히 알리는 것 같다. 비상시 식량이 되어 주고 약이 되어 주었기 때문일까? 여름철, 길가에서 메꽃을 만나면 왠지 모를 반가움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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