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View] K주택임대 방식 ‘전세’ 과연 존속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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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형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9-06 00:02:40

‘서울’은 옛날부터 한 나라의 수도를 뜻하는 순우리말 일반명사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그래서 신라의 수도 서라벌(현 경주)도, 고려의 수도 개성(현 북한 개성)도, 조선의 수도 한양 또는 한성(현 서울)도 많은 사람이 서울이라 불렀다고 한다. 발음은 지금과 달랐다.

훈민정음 창제 이후 최초의 한글 간행물 ‘용비어천가’는 한양을 ‘셔ᄫᅳᆯ’로 표기했다. 이에 비춰 신라 고유어 서라벌이 셔ᄫᅳᆯ과 서울 등으로 변했다는 설이 유명하다. 도올 김용옥은 ‘금강경 강해’(통나무·1999년)에서 부처가 설법한 북코살라왕국의 수도 ‘슈라바스띠(Śrāvastī)’의 음역어 ‘室羅伐(실라벌)’을 시작으로 ‘서라벌·서벌→셔월→서울’ 설을 주장했다.

서울이 공식 지명이 된 건 1945년 8월 광복 이후 북위 38도선 이하 한반도를 통치한 미(美)군정이 1946년 8월 ‘서울시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공포하면서부터다. 일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부)을 경기도에 속하는 지방도시 ‘경성부’로 격하했는데 미군정이 서울시헌장을 통해 경기도를 분리한 경성부를 서울시로 바꿨다. 이때 서울시헌장 영문 공포문은 서울시를 ‘지방자치단체(municipal corporation)’로, 한글 공포문은 ‘특별자유시’로 명시했다. 이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서울의 명칭을 ‘서울특별시’로 명명하는 근거가 됐다. 미군정이 왜 서울을 택했는지 모르나 현지인과 일상을 꿰뚫어 본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수도를 뜻하는 영어 ‘캐피탈(capital)’이 로마의 언덕 이름인 라틴어 ‘카피톨리누스(Capitolinus)’와 ‘캄피돌리오(Campidoglio)’에서 유래한 것과 비슷하다. 캐피탈은 고유명사가 일반명사로 변했고 서울은 일반명사가 고유명사로 굳어졌으니까 굳이 따지자면 선후 관계가 정반대다. 어쨌거나 서울이라는 단어의 시작이 무엇이었든 오랜 세월 사람들 입으로 전해져 정착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 역시 짧지 않은 시간에 걸쳐 이 땅에 정착했다. 우리나라 전세 제도의 기원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따르면 당시 부산·인천·원산(북한 강원도) 3개 항구 개항과 일본인 거류지 조성·농촌 인구 이동 등으로 서울에 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그래서 살 집이 부족해졌고 주택임대차 관계가 생겼다. 조선 말기 전셋값은 보통 집값의 절반이거나 비싸면 7~8할(70~80%) 정도였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서울의 주택난이 더욱 심해졌고 이 과정에서 전세 제도가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일각에서는 고려시대에 논밭을 담보로 돈을 빌리던 ‘전당 제도’가 조선시대에 주택을 이용한 ‘가사전당(家舍典當)’으로 발전해 현대에 이르렀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반면 조선시대 가사전당은 주택을 담보로 하는 금전 대차이자 사금융의 한 형태이므로 전세 제도와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주장도 있다. 원문을 확인하진 못했으나 1910년 조선총독부 관습조사보고서에 “전세란 가옥 임차 시 차주로부터 일정 금액을 가옥 소유주에게 기탁해 별도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가옥 반환 시 그 금액을 변환하는 제도”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전세 같은 주택임대 방식을 찾기가 어렵지만 아예 없진 않다. 대표적으로 볼리비아에 ‘안티크레티코’라는 임대차 계약 형태가 있다. 전세금을 내고 2년 동안 월세 없이 거주하다가 계약 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하는 식이다. 큰 틀에서 우리와 똑같다. 다만 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가율)이 25~40%로 우리나라(보통 80% 이상)보다 많이 낮다. 활용 비율(3.5%)도 우리(21.7%)보다 훨씬 적다. 이 밖에 프랑스·스페인·미국 루이지애나주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통적으로 전세가율이 낮아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가깝거나 역전되는 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전국에 걸친 전세사기 사건은 전세 제도의 존폐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전세사기 사건은 금리 급등과 집값 하락 등 거시적 영향에 더해 △세입자가 빌라(다세대·연립 등) 가격을 알기 어려운 ‘정보 비대칭성’ △공인중개사·분양(대행)업체 등의 ‘도덕적 해이’ △법적·금융 리스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원인을 제도적으로 해소할 수 있으면 존치하고 아니라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존치든 폐지든 옳은 방향은 없다. 집(제도)에 자꾸 비가 새고 도둑이 들면 집을 고치는 게 가장(국회)의 역할이다. 여야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합의와 국회 통과에 만족하지 말고 미군정처럼 혜안을 발휘하길 고대한다.

김학형 hh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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