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지금과 다른 삶을 탐색하지만 현실을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지 않고 다른 삶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일탈이다.
주어진 시간에, 기억에 남는 여행으로 만들려면 나만의 여행법을 개발하는 게 좋다. 홍콩은 좁은 공간 안에 다양한 즐길거리·볼거리·먹거리를 품고 있어 테마여행으로 즐기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는 시장투어·야경투어·건축투어·아트투어·트래킹 등 다양한 여행법이 존재하지만 조금 특이하게 숫자를 기반으로 여행 계획을 짜 보면 어떨까. 여행가이드북 ‘리얼홍콩’(임요희·정의진 지음, 한빛라이프)은 숫자로 떠나는 여행법을 소개하고 있다.
숫자 1로 만나는 홍콩
홍콩은 한국과의 시차가 1시간이다. 한국에서 오전 8시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각이지만 동시간 홍콩은 슬슬 잠에서 깨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오전 7시다.
홍콩인은 부지런한 것으로 세계 1등이다. 몇 년 전 미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네이처’ 지에 한 가지 재미난 보고를 실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각국의 국민이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홍콩인이 하루 평균 6880보를 걸어 1등을 차지했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5755걸음으로 8위에 등극했다.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줄 알았는데 홍콩인을 따라잡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대부분 공영화되어 요금이 저렴한 데도 많이 걷는 것을 보면 홍콩인은 확실히 부지런하다. 홍콩사람의 발로 일컬어지는 트램의 1회 탑승 요금은 HK$3. 우리 돈 500원밖에 안 한다.
한국의 아침이 은은한 커피향으로 열린다면 홍콩의 아침은 구수한 향신료 냄새로 시작된다. 홍콩인은 정향이 들어간 고깃국 냄새가 가득한 거리를 걸어 일터로 향한다. 한국인이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것에 비해 부지런한 홍콩인은 출근 전 차찬텡이나 국숫집에 들러 죽·토스트·국수·라면으로 든든하게 요기를 한다.
홍콩 차찬텡에서 오전 7~11시에 판매되는 조식세트 메뉴는 국수+달걀+햄+빵+밀크티로 구성되며 다른 시간대에 비해 20%가량 저렴하다.
2로 만나는 홍콩
홍콩 여행은 혼자 가는 것보다 2명이 가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교통비 면에서 특히 그렇다. 매일 오전 5시54분에서 새벽 12시48분까지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공항고속철도(AEL·Airport Express Line)는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공항철도에는 아시아월드엑스포역·공항역·칭이역·구룡역·홍콩역의 총 5개 역이 있다. 어느 역에 내리든 1회 탑승 요금은 HK$115(옥토퍼스 결재는 HK$110)로 우리 돈 2만 원가량 한다. 결코 싸지 않지만 2명이 이용할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항철도 티켓 2인 권이 HK$75로 우리 돈 1만3000원이다. 3인 권은 HK$70로 조금 더 내려간다. 단 복수 티켓을 끊을 때는 옥토퍼스 카드가 아닌 발권기에서 따로 할인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1997로 만나는 홍콩
1997은 홍콩인에게 아픈 상처 같은 숫자다. 1997년 7월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날이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홍콩은 1841년부터 1997년까지 긴 세월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살았다.
홍콩이 대영제국의 속령이 된 것은 1841년 영국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제1차 아편전쟁 때문이다. 청나라는 영국령 인도에서 수출되는 아편이 자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히므로 아편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이에 양국 간 전쟁이 벌어졌고 승리를 거머쥔 영국은 홍콩섬을 양도받게 되었다.
양도가 이루어진 19세기부터 홍콩은 대영제국의 주요 무역항이자 물산 집산지로 기능했고 영국은 자국의 교육·행정 시스템을 홍콩에 이식했다. 홍콩은 이를 발판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을 뿐 아니라 동·서가 융합된 고유의 문화를 갖게 되었다. 1997년 이후 형식적으로 한 나라가 되었지만 중국과 홍콩은 여권 코드가 달라 사실상 다른 나라로 봐도 무방하다.
또한 홍콩은 선거 및 입법과 관련해 매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중국 정부에 반감을 품고 있다. 이는 2014년의 우산혁명과 2019년의 민주화 시위로 표면화되었다. 서구식 매너가 몸에 익은 홍콩인으로서는 돈을 제일로 여기고 무례하기까지 한 본토 관광객 역시 곱게 보일 없었을 것이다. 실수로라도 현지에서 홍콩을 중국이라고 말하는 일은 삼가자.
홍콩에는 높이 100m 이상의 고층빌딩이 4000여 개에 달하며 식당은 4만여 개에 이른다. 홍콩의 수많은 고층빌딩이 뿜어내는 조명은 ‘별들이 반짝이는 홍콩의 밤거리’라는 노래를 탄생시켰고 홍콩의 거리를 가득 메운 식당은 홍콩을 미식의 도시로 발돋움하게 했다. 홍콩에는 7개의 3스타 식당을 비롯해 79개의 미슐랭 스타 식당이 있다. 미슐랭가이드에 등재된 식당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홍콩의 수많은 쇼핑몰과 식당 그리고 영국령 시기를 오래 거치면서 서구에서 이식된 다양한 문화는 홍콩을 이채로운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숫자는 때로 굉장히 좋은 여행 정보가 되기도 한다.
◆ 취재 협조: 리얼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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