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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베트남이지만 카인호아성 나트랑과 럼동성 달랏은 대도시인 하노이·호치민에서 느낄 수 없는 푸근한 정서가 있다. 물론 나트랑에는 6km에 달하는 해변과 힌두교사원인 포니가르사원이 있고 달랏에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달랏기차역 등의 볼거리가 있지만 이는 도시를 구성하는 극히 일부분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나트랑과 달랏 최고의 가치는 좋은 날씨에 있다. 연중 기온이 16~24℃인 달랏을 가리켜 베트남 사람들은 ‘낫 콜드 낫 핫(춥지도 덥지도 않다)’으로 표현한다. ‘봄의 도시’ ‘꽃의 도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나트랑 역시 초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기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서 생활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1500~3000원 사이에 존재하는 하루
사람들이 동남아여행을 선호하는 이유는 △가까운 거리 △따뜻한 기후 △저렴한 물가일 것이다. 베트남 나트랑에서는 밥과 커피를 합쳐서 5000원이면 해결할 수 있다. 여행 기간 숙소와 가까운 나트랑 담시장(Dam Market)에서 아침을 먹었는데 노점상 할머니가 파는 간소한 백반이 1500원이었다.
생선·야채·달걀·밥이 한 데 어우러진 이 저렴한 식사는 구매자가 재량껏 반찬을 고를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물론 반찬을 추가할 경우 음식값은 소폭으로 올라간다.
시장을 벗어나 조금 제대로 된 식당에서 먹으면 한 끼에 3000원 안팎이고 커피값은 보통 1500원 정도 한다. 물론 랍스터 등 해산물 요리집의 경우 가격이 1인 5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고가품은 있는 법이니까. 이들 해산물 식당은 나트랑비치 인근에 모여 있다.
나트랑에서 인상 깊었던 게 카페마다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 타임을 갖는 모습이다. 남자들이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어머니들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동네 커피숍에서 비슷한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베트남 여자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여자들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있으며 경제권을 쥐고 있다. 아침이면 거리는 여성들의 통근 오토바이 소리로 꽤 시끄럽다. 여성들은 예쁘게 차려입고 헬멧 끈을 야무지게 묶고 오토바이를 타고 직장에 나간다. 오토바이는 베트남 교통수단의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출근 시간이 지나 거리가 적막해지면 남자들이 등장해 그들만의 하루를 연다.
쇼핑의 천국 나트랑 담 시장
원형의 건축물이 특징인 담 시장은 나트랑의 중심 시장이다. 온갖 과일·채소·해산물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둥그런 시장 건물을 호위하듯 곡선의 저층아파트가 겹으로 세워져 있고 그 사이 만곡을 그리는 빈 공간에 수많은 노점이 자리 잡고 있다.
담 시장은 음식 맛집이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신발이나 잡화를 싸게 구매할 수 있어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 특히 브랜드 샌들 매장과 캐주얼 티셔츠 매장에 사람이 많이 몰린다.
명품이 분명하건만 이곳에서는 요상하게 가격이 저렴하다. 현지 돈으로 10만~25만 동이면 어떤 브랜드 샌들도 다 살 수 있다. 우리돈으로 불과 5000~1만 원 선이다. 정품이라면 불가능한 가격이다. 한국에서 같은 제품을 구매하려면 5만 원 이상을 주어야 한다. 가품이 거의 확실하지만 매장은 샌들을 사려는 한국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캐주얼 브랜드 티셔츠도 비슷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부르는 가격에 30% 이상을 후려친 가격이다. 상인이 일단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손님은 그 가격을 반까지 깎는 게 상례다. 안 깎으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에 한국인은 깎고, 현지인은 깎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가격을 올려 부른다.
시장뿐이 아니다. 심지어 럭셔리한 로드 매장에도 한국 같으면 벌써 단속 대상이 되었을 가품들이 버젓이 진열돼 있다. 길거리 편집숍에서도 버젓이 짝퉁 명품 가방을 팔고 가짜 명품 의류를 판다. 기 십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있다. 물론 제 돈을 주고 사려면 몇백만 원 하는 것들이다.
구름 터널 뚫고 달랏으로
나트랑에서 사흘가량 시간을 보낸 뒤 달랏으로 이동했다. OTA(온라인 여행 에이전시)를 이용하면 9~12인승 벤 차량을 1인 1만4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지정 장소(보통 1층 카페)에 집결해 시원한 냉커피를 시켜놓고 기다리니 승객을 태워갈 벤이 당도했다. 나트랑에서 달랏까지는 2시간30분가량 소요된다.
이동 거리는 길지 않지만 달랏이 해발고도 1500m에 있는 고원도시다 보니 구름도 울고 넘는 구불구불한 산굽이를 지나야 한다. 창밖으로 야자수가 사라지고 침엽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구름을 뚫고 지나는 길이기에 필수적으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지점과 맞닥뜨리게 된다. 짧게 드러나는 차선과 앞서가는 차량의 희미한 후미등에 의지해 차는 달린다. 길 왼쪽은 천길 낭떠러지다. 승객 입장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식은땀이 날 일이지만 기사는 여유롭기만 하다. 늘 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경사로를 달리는 게 벤이나 버스만은 아니다. 오토바이를 탄 현지인도 쉽게 볼 수 있다. 대부분 우비를 걸친 것이 구름비에 단단히 대비를 한 모양새다. 죽은 닭을 매달고 달리는 닭 장수와 목재를 싣고 달리는 트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볼거리가 별건가. 한국에서 보기 힘든 걸 보는 것 그게 볼거리지.
달랏에서는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비닐하우스가 많이 눈에 띈다. 달랏의 비닐하우스 지대를 일컬어 ‘비닐하우스의 바다’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온대 기후를 이용한 특용작물 재배가 성행한다. 특히 달랏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꽃 산지로 전체 꽃의 30%를 생산한다. 비닐하우스는 전깃불로 꽃의 개화기를 조절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침엽수·호수·집이 아름다운 도시
달랏 한복판에는 둘레가 7km에 달하는 쑤언흐엉(春香) 호수가 있다.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 시대에 홍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호수 변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고 보트 선착장도 있어 현지 데이트 코스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호수 주변을 돌아보는 올드카 투어와 호수 서쪽 편에 형성된 맛집은 관광객의 단골 아이템이다.
쑤언흐엉 호수의 경관은 매우 이국적이다. 뾰족뾰족한 침엽수와 프랑스풍 건물 그리고 건축미가 돋보이는 유명 럭셔리 호텔들이 수변을 따라 폭넓게 펼쳐져 있다.
달랏은 ‘봄의 도시’ ‘꽃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12월에도 철쭉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매년 봄이면 호수를 무대로 성대한 꽃축제가 펼쳐져 호수 변 전체가 꽃 정원으로 변신한다. 반짝이는 호수와 그림같은 건축물 여기에 향기로운 꽃이 더해져 도시는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곳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은 꽃구경도 올드카 투어도 아니다. 바로 호숫가 언덕에 자리한 대형마트 ‘고 달랏’에서의 쇼핑이다. 세련된 인테리어가 한국의 마트를 연상시키는 이곳에서 꼭 사야 할 제품은 달랏 특산품인 달랏와인·아티소 차·스테비아 차 등이다. 특히 아티소 차와 스테비아 차는 인슐린 분비를 자극해 혈당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인근 야시장에서는 즉석에서 손질해 봉지에 담아 주는 망고와 특산품 딸기 맛을 볼 일이다.
커피로 여는 아침
달랏에서의 아침은 커피로 열린다. 베트남에서 손꼽히는 커피 산지인 만큼 달랏 어딜 가나 신선한 원두로 만든 질 좋은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따뜻한 차 한 잔과 진한 커피 한 잔이 세트로 나온다. 동네 커피숍에서는 한화로 1500원, 세련된 카페에서는 2000원이면 좋은 품질의 달랏 커피를 음미할 수 있다. 맛은 업소 간 큰 차이가 없다.
달랏 주택가에는 베트남 풀빵집과 카페가 한 집 건너 자리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메추리알과 고기가 들어간 베트남 풀빵을 구입해 커피와 함께 먹는 게 달랏 여행자의 루틴이다. 인심 좋은 카페 주인은 풀빵이 아니라 국수를 들고 와도 어서 오라고 환영한다. 달랏은 동네 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다.
달랏 골목에서는 매일 아침 장이 열린다. 대규모 장터는 아니고 아낙들이 야채와 생선·고기를 노점에 오종종 펼쳐 놓고 파는 수준이다. 양은 적지만 아침에 받아 온 물건들이라 신선도가 최상급이다. 파는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재고 걱정도 없다. 이런 작은 노점은 골목 어디서나 만날 수 있어 주민들은 그때그때 신선한 식품을 구매해서 먹는다. 달랏에서는 굳이 냉장고가 필요 없는 이유다.
굳이 명소를 찾지 않아도 좋은 달랏이지만 그래도 관광지는 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인 달랏기차역은 베트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손꼽힌다. 주말이면 세 개의 뾰족한 지붕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관광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짜이맛(Trai Mat) 역까지 7km 구간을 달리는 관광열차는 주말에는 하루 5회를, 평일에는 하루 2회를 운행한다. 이곳에서는 커피 전시장 겸 카페를 두어 달랏커피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했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갤러리 겸 게스트하우스로 베트남의 가우디로 불리는 건축가 당 비엣 응아의 작품이다. 거대한 나무 덩굴을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디자인이 특징으로 복잡하게 놓인 공중다리를 지나며 건물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달랏은 폭포와 정원이 많기로 유명하다. △죽림선원까지 운행하는 달랏 케이블카 △숲과 바위·폭포가 어우러진 동화의 나라 △도자기와 병을 재활용해 지은 린푸옥 사원 △XQ 자수 박물관도 빼먹으면 서운한 곳이다.
너무 볼 게 많아 열흘 묵는 것으로는 택도 없는 나트랑·달랏 여행이었지만 이런 멋진 곳을 누락하는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이므로 단 며칠이라도 경험해 볼 것을 추천한다.
나트랑과 달랏에 없는 세 가지
나트랑·달랏으로 출발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게 있다. 이곳에는 세 가지가 없다. 먼저 디카페인 커피가 없다. 어떤 카페에서도 팔지 않는 한편 마트나 편의점·슈퍼마켓에서도 구경하기 어렵다. 카페인에 취약한 나는 오전에만 달랏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둘째 비누가 없다. 호텔 등 어떤 숙소에서도 바 형태의 비누를 발견할 수 없었다. 손 씻는 데 사용하는 물비누 정도만 있다. 딱딱한 비누로 씻어야 씻은 것 같은 나는 마트에서 비누를 구입해 사용했다. 다행히 가게에서 팔기는 한다.
셋째 신호등이 없다. 사실 베트남은 신호등이 필요 없는 나라다. 몇 군데서 신호등을 보긴 했지만 그냥 장식품이다. 아무도 신호를 안 지키기 때문이다. 신호등이 없으니 엄청 위험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 안에서 다들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단 차나 오토바이나 과속을 하지 않는다. 방어 운전이 생활화되다 보니 상대 차와 사람을 잘 피해서 다닌다. 때문에 베트남 차도를 건널 때는 섣불리 뛰면 안 된다. 서두르다간 도리어 사고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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