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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앞에 중국도 ‘성장 우선’을 내세우며 정책 기조의 반전을 시사하고 있다. 이것이 5일 개막한 이번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메시지의 골자가 될 전망이다. 저비용·고효율 인공지능(AI) 딥시크 돌풍과 함께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미국에 본격 도전장을 내민 중국은 ‘트럼프 관세 폭탄’ 등 여러 악재에도 올해까지 경제성장률 목표를 3년 연속 ‘5% 안팎’으로 잡았다.
아울러 미국에 맞선 ‘기술 자립 공고화’를 위해 민간 기업들에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태도가 국내외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달 17일 민영기업좌담회에서 “먼저 부유해진 뒤 공동 부유를 촉진하자”(先富促共富)면서 알리바바·화웨이·BYD·웨이얼반도체·딥시크·유니트리 등 민간 부문 거물급 기업인들을 독려해 변화 의지를 천명했다. 사라졌던 덩샤오핑의 ‘먼저 부유해지자’ 구호가 시 주석의 입에서 다시 나오자 국제사회는 반신반의의 분위기다.
공산당 주도 개발독재형 고도성장기를 넘어서며 내부 모순이 가시화됐다. 황금만능주의와 빈부격차의 고통을 웬만큼 자체 조정할 수 있는 종교적 영성의 전통이 말살된 중국에서 대안은 ‘공동부유론’과 ‘애국주의’였다. 2012년 처음 제출될 당시 모호하던 ‘중국몽’ 개념이 기본 의식주 해결을 뜻하는 ‘샤오캉’(小康)에서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구체화되면서 ‘외부의 적’을 부각시키고 중국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형태의 ‘애국주의’가 강조됐다.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당시 과거사 관련 ‘국가 배상’을 스스로 사양한 중국이었으나, 시진핑정부 들어 근현대사 전반을 ‘(공산당 중심) 항일’로 재구성하며 반일 정서가 강화됐다. 무수한 항일 드라마·영화들이 인기를 끌었고 애국주의는 ‘전랑(늑대) 외교’로 표현된 공격적 대외 기조와 맞물려 대중을 열광시켰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외국 자본 및 기업의 대거 이탈 등, 덩샤오핑이 당부한 ‘최소 70년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이나 야심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다)를 약 40년 만에 포기한 결과가 혹독했다.
공동부유 기조 아래 추진되던 강경한 규제 부작용도 컸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2020년 10월 정부의 금융시스템 규제를 공개 비판했다가 행방불명된 후 돌아와 4년간 은둔생활을 해야 했으며 기업의 미국 상장도 무산됐다. 그랬던 마윈이 이번 좌담회에 참석해 주목받자 외신들 역시 시 주석의 유화 제스처와 자신감에 주목했다. 르몽드 영문판은 “딥시크의 부상과 지난달 좌담회에서 보여준 시 주석의 달라진 태도가 (중국의) 매우 중요한 순간에 찾아왔다”고 짚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정치적 바람이 얼마나 순식간에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놀라워했다.
시 주석의 변화에서 지난 몇 년간 중국이 첨단과학 분야가 보여준 급속 발전의 자신감을 읽기도 한다. 전기차·AI·로봇·양자컴퓨터 등 다양한 첨단 분야에 국가 차원의 전폭 지원을 해 온 중국이 마침내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저비용 고성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 테슬라 자리를 빼앗은 BYD, 화려한 군무의 휴머노이드 로봇 군단을 만들어낸 유니트리 등이 당장 괄목할 만한 성과다.
특히 반도체 연구에서 중국이 미국을 월등히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3일(현지시간) 미 조지타운대 ‘신흥기술관찰프로젝트’(ETO)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3년 전 세계 약 47만5000 편의 반도체 설계·제조 관련 논문 중 34%에 중국 기관 소속 저자가 참여했다. 미국 저자를 포함한 논문은 15%, 유럽 연구자가 들어간 논문은 18%로 집계됐다. 양자 컴퓨터 분야 성과도 주목된다. 중국 과학기술대 연구팀은 기존의 최강 슈퍼컴퓨터보다 1000조 배 빠른 105큐비트 초전도 양자컴퓨터 시제품 ‘쭈충즈(祖沖之) 3호’를 최근 공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토종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해외로 나갔던 인재들이 돌아오는 추세다. 딥시크 개발 주역들이 해외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이며, 창업자 량원펑은 베이징·칭화대 등 자국 내 최고 명문 출신도 아닌 점이 중국인들을 고무시켰다. 취업하기 위해 귀국한 중국인 유학생 증가, 해외에서 졸업하자마자 귀국을 선택한 경우가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중국의 구인·구직 플랫폼 즈롄자오핀에서 발표한 ‘2024 중국 귀국유학생 취업조사보고서’엔 2018년 때와 비교해 작년 귀국 유학생이 1.44배 늘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분야의 잇단 대성공 또한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지난 음력설 기간 개봉한 중국산 애니메이션 ‘너자(哪吒)2’는 역대 세계 애니메이션 가운데 박스오피스 수익 1위의 쾌거를 이뤘다. 고전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로 친숙한 신화 속 영웅신 ‘너자’ 이야기를 각색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후속편 ‘너자2’가 전 세계 영화 박스오피스 역대 6위에 오르기도 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가 장펑 난징사범대 교수를 인용해 “너자2는 전 세계에 중국 영화산업의 부상과 문화적 소프트파워 성장을 보여주는 창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게임 히트작인 액션 역할수행게임(RPG) ‘검은 신화: 오공(悟空)’은 ‘서유기’가 모티브다.
그러나 반(反)간첩법과 강력한 검열정책을 유지 중인 중국 정부의 유화 제스처에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하다. 얼마 전 중공 사상·이론지 추스(求是)에서 ‘시 주석이 항상 민간기업을 지원해왔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자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반박한 주장을 소개했다. 해외망명 중인 민영 기업가들 단체 연맹은 “감옥에 갇힌 기업인들이 존재한다. 실질적 변화 없는 화해의 제스처란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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