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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현지시간) 미국·우크라이나의 백악관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 광물협정 서명식도 무산됐다. 피차 속내가 드러난 약 7분간의 날선 광경은 고스란히 매스컴을 탔다. 쫓기듯 백악관을 뒤로 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민을 존경한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으나 수습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젤렌스키가 회담 이후 폭스뉴스 앵커 브렛 베이어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며 “미국 지원 없이 러시아를 막기 어려울 것” “그게 이곳에 온 이유”라고 토로했으나 깨진 판이 복원될지 미지수다.
트럼프는 이날 회담 결렬 후 “(젤렌스키에겐) 평화를 논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며 미국이 빠질 테니 유럽과 알아서 하라는 요지의 SNS 성명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할 것인지 취재진이 묻자 젤렌스키는 “솔직해지자. 우리가 나쁜 짓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으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전시 미·우 연대 관계가 “당연히” 회복 가능하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진정 우리 편이길 바란다”며 “대(對)러시아 태도를 한치도 바꿀 수 없다. 안전보장이 있기 전엔 평화회담에 나서지 못 한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광물협정 서명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던 이날 백악관 회담이 험한 분위기 속에서 ‘노딜’로 끝난 것 또한 바로 이 지점이었다. 우크라이나 측 희망인 ‘미군 주둔’, 그게 어려우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소련 시절 반환한 핵무기 반환’ 모두 트럼프정부 기조에 반하거나 러시아가 수용 불가능한 조건들이다. 전쟁의 승산이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진 지 오래이며 시간은 러시아 편인 가운데, 젤렌스키의 요구에 대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비현실적”이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미국 기업의 투자 자체가 안전핀이라는 트럼프정부의 입장과 정면 배치된 이야기를 이날 젤렌스키가 정상회담 본격 개시 직전에 꺼내면서 설전으로 이어져 판이 깨진 셈이다. JD 밴스 부통령은 무참한 살상과 국토 파괴를 외교로 막아야 한다며,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재차 꺼내든 젤렌스키 태도에 “무례하다. 먼저 미국·미국민에게 감사하라”고 유감을 표했다. 젤렌스키가 “우린 (대러 전쟁에서) 혼자였다. 미국은 아름다운 바다(대서양)가 있어 좋겠지만 미국도 언젠가 이런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렇지 않도록 신의 가호를”이란 대목에선 트럼프가 끼어들었다.
트럼프는 “멍청한 조 바이든정부에서 이미 우크라에 3500억 달러(500조 원 이상)나 지원” 등 팩트 폭격을 가하며 “우크라엔 돈도 병사도 없고 더이상 ‘패가 없다. 우리 미국이 (미래 고통을) 어떻게 느낄지 당신은 말할 형편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통역을 거침으로써 시간을 벌며 이성적 계산을 하는 게 외교 담판의 관행인데 이날 양측이 영어로 맞붙었다. 젤렌스키가 단연 불리하다. 며칠 전 우크라 평화협상 문제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와 달리 트럼프가 직접 현관까지 나와 영접했으나, 젤렌스키는 이날 쫓겨나듯 빈손으로 백악관을 떠나야 했다.
이 사태를 두고 공화당에선 트럼프와 밴스가 ‘젤렌스키에게 (마땅히) 할 말을 했다’는 반응이지만, 민주당에선 ‘독재자와 한 편이 된 트럼프’ 식의 비난을 쏟아내 미 정치권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폭스뉴스·AFP통신에 따르면 회담 결렬 후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엑스(X·옛 트위터)에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할 용기가 없었던 방식으로 미국을 대변해 준 대통령께 감사한다”며 “미국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줘서 고맙다. 미국이 당신과 함께 있다”고 적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우리 최고사령관이 매우 자랑스럽다. 미국에 대한 정치적 게임과 무례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돌아왔다”고 했다.
젤렌스키 태도도 문제시됐다. 루비오 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젤렌스키를 겨냥해 “일이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도록 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거기서 그런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위해 러시아와 외교를 하고 있다”는 밴스 발언에 젤렌스키가 “무슨 외교를 말하냐” 반문한 것을 말꼬리 잡은 것으로 짚었다. “그 이후 대화가 궤도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어 트럼프를 “‘딜메이커’이자 평생 거래를 성사시켜온 인물”로 지칭한 루비오가 젤렌스키에 대해선 “그가 평화협정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다. 말로는 원한다지만 아마 원치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밤에도 우크라이나에선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다. 이 갈등을 끝내려 하며, 지금 전 세계에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기회라도 가진 유일한 지도자가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에게 그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역시 “미국이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던 시대가 트럼프 대통령 덕분에 끝났다”며 “오늘 백악관 집무실에서 목격한 것은 미국을 최우선시한 미국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내 친우크라 인사였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조차 “젤렌스키는 근본적으로 변하거나 (직을) 떠나야 할 것” “오늘 상황을 목격한 미국인 대부분이 젤렌스키와 파트너 되길 원치 않을 것”이라고 봤다. 버니 모레노 상원의원은 엑스에 “마침내 진실을 말하며 워싱턴의 무한 전쟁에 맞설 대통령을 갖게 됐다”, 브랜던 길 하원의원은 “미국우선주의를 행동으로 보여줬다”며 감사와 지지를 표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빅토리아 스파츠 하원의원은 “젤렌스키가 자국 내에서의 저조한 지지율을 높이고 유럽을 달래기 위해 미국 대통령과 미국을 모욕하며 자국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쳤다.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진짜 전쟁”이라고 꼬집었다. 친트럼프 성향의 평론가 찰리 커크는 “대통령과 부통령은 수백만 미국인들이 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말을 젤렌스키 면전에서 정확히 했다. 누군가 해야 할 말이었다”며 옹호했다.
반면 민주당 측에선 미국이 러시아에 굴복했다는 해석을 일제히 쏟아냈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와 밴스는 푸틴이 하기 싫어할 일을 대신해주고 있다. 상원 민주당 의원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했으며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은 “푸틴이 오늘 연극을 매우 기뻐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 리버럴보다 더 왼쪽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러시아 제국주의와 용감하게 싸우는 민주국가 지도자를 비난하면서 80년 만에 가장 피비린내 나는 유럽 전쟁을 시작한 독재자 푸틴 편에 서 있다”며 트럼프때리기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더빈 의원은 트럼프와 밴스가 젤렌스키에게 보인 태도를 “무례하고 부끄러운 일”로 치부하며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하킴 제프리스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가 계속 세계 무대에서 미국을 당혹스럽게 한다. 오늘 끔찍한 회동이었다. 잔인한 독재자 푸틴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의 침략행위에 대해 보상하거나 푸틴의 요구를 계속 들어줘선 안 된다”며 개탄했다.
캐서린 클라크 하원 원내총무도 성명을 통해 비판에 가세했다. “미국 대통령이 민주 동맹국 대신 러시아 독재자를 택할 줄 생각하지 못했다. 러시아에 굴복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애덤 쉬프 상원의원이 엑스에 “영웅과 겁쟁이가 오늘 백악관에서 만났다”고 풍자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지냈던 벤 로즈는 “트럼프가 독재국가와 발맞춰 미국을 극우 독재적 거래적 몰가치한 과두제 국가로 바꾸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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